[티르의 이야기]
제 할아버지는 개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것도 큰 개를요.
아주 어릴 때 집에는 셰퍼드와 진돗개 두마리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셰퍼드는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하셔서 자주 경치좋은 산으로 낚시를 가셨는데, 그럴 때마다 개들도 데리고 가셨습니다.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미끄러져 절벽 중간쯤 나무에 걸려 기절하셨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셰퍼드가 할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더랩니다. 자기 목줄을 절벽 아래로 내려뜨리고요. 다행히 셰퍼드의 긴 목줄이 거기까지 닿아서 할아버지는 줄을 잡았고, 셰퍼드는 뒷걸음질을 쳐서 할아버지를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큰 개들은 똑똑합니다. 순박하구요. 펜리르도 그랬을 겁니다.
[캠퍼스 여신이 기습키스를 해왔다]
대학 졸업 후 동네 속셈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남자 쌍둥이가 있었는데, 항상 함께 다니고 사이도 좋은 편이었죠. 쌍둥이를 처음 본 것도 신기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동생이 형을 꼬박꼬박 ‘형’이라고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좋아보일 수도 있지만… ‘고작 몇 분 차이인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꼭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 그러니…?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솔직히 굳이… 그래야 했나, 싶었습니다.
제 경우는 두 살 차이 남동생과 하루가 멀다 하고 멱살을 잡고 싸웠고, 서로 ‘야, 너’라고 불렀거든요. 심지어 다 커서 체급 차이가 나는데도 절대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둘 다 생존과 자존심을 걸고) 전력으로 싸우던 경험과 대비되어, 엄마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곧이곧대로 그렇게 하는 거 자체가 더욱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쌍둥이라고 해도 둘은 달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 쌍둥이는 쌍둥이구나’ 싶을 만큼 똑같았지만, 형은 약간 무심한 편이고 동생은 사소한 부분에 상처를 잘 받는 편이었죠.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둘이 드물게 크게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형은 그냥 화를 냈지만, 동생은 울면서 “야 이 녀석아!”라며(그 둘이 쓸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이었습니다. 이놈의 가정교육…. 나 같으면 개씨발새끼야 부터 시작해서 별별 욕지거리가 다 튀어나오는 편이라 이것도 신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북유럽 신화는 특이합니다. 기독교인이 정리하고 편찬한 신화이기에, ‘진짜’ 원전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특히 라그나로크를 읽어보면 요한계시록과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뒤섞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호드르와 발드르의 이야기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호드르는 존재감이 거의 없고, 그저 빛을 없애버리고 세계 멸망의 트리거를 당긴 역할로만 나옵니다. 대부분의 고대 신화에서 빛과 어둠이 거의 동등한 힘으로 나오는 것과 대조적이죠. 물론 세계가 재형성된 이후에는 둘이 함께 새로운 세상을 걷는다고 하지만요. 어쨌든 이 역시 형제 사이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카인과 아벨, 호드르와 발드르뿐만 아니라 형제간의 차이, 차별, 열등감, 혹은 억울한 희생을 다루는 작품은 클리셰하면서도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특히 형제가 있고, 그 사이에서 다툼이나 알력, 편애를 경험한 사람-특히 둘째-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끗 차이로 밀려나는 억울함, 미묘한 열등감 말이죠.
마리 퀴리의 두 딸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언니는 노벨상을 받는데 차녀 에브 퀴리는 자기만 노벨상을 못 받았다며 “졸지에 가문의 수치가 됐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녀는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찬사받았고, 피아니스트 겸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활동했으며 폴란드 부활기사십자훈장까지 받았습니다. 형제자매 사이에서의 비교와 차별, 미묘한 감정은 이렇듯 보편적이고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이 무게감은 ‘호드르’만이 아니라 ‘발드르’나 ‘프레이야’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짊어지고 있습니다. ‘편애’를 받는 쪽도 마음은 불편합니다. 바로 옆에서 질투에 휩싸인 눈빛으로 동생이 쳐다보는데, 이게 그다지 공평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편할 수는 없죠.
장남, 장녀, 맏이, 1인자라는 타이틀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무겁습니다. 왠지 항상 어른스러워야 하고, 앞에 나설 줄 알아야 하고, 동생들과 아랫사람들을 챙겨야 하죠. 울기라도 하는 날엔 ‘다 큰 녀석이 뭐 그깟 걸 가지고 울기까지 하느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1인자도 2인자도 눈치만 늘어갑니다.
‘나도 좀 풀어지고 싶은데, 나도 책임감 같은 거 모르는데, 나도 내 동생처럼 어리광 부리고 싶은데. 나도 그냥 아이인데.’
난 어른이 아닌데.
나도 동생이고 싶다. 나도 누나나 언니나 오빠나 형이 있으면 좋겠다. 누가 내 가림막이 되어주면 좋겠다.
나도 차라리 누군가의 그늘에 들어가버리고 싶다.
장남이나 장녀라면 언젠가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네, 제 얘깁니다).
1인자도, 2인자도, 그 나름대로 억울하고 힘듭니다.
(사실 호드르도 발드르가 다 알아서 해주니까 굳이 앞에 나서지 않게 된걸수도 있어요 ㅋㅋㅋㅋ)
제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도 바로 그 지점에 닿아 있었습니다. 장남·장녀라는 무게, 동생과의 미묘한 갈등, ‘나도 그냥 아이인데’, ‘나도 사랑받고 싶은데’ ‘우리는 비교당하고 싶지 않은데’ 라는 고백 같은 것들. 이런 심정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뭘 쓸까 고민하다가, 그때 학원에서 만났던 쌍둥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호드르와 발드르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겹쳐졌죠. 형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호탕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동생이 신경쓰이는 존재, 동생은 형에게 외모나 능력은 뒤지지 않지만, 위치와 역할 때문에 늘 가려지는 존재.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하는 상상이 이어졌습니다.
신화에서 발드르는 1인자지만 호드르는 2인자도 아니고 아예 왕따입니다(…). 하지만 둘이 쌍둥이라면, 호드르도 외모나 능력은 충분히 발드르에 밀리지 않았을 거라는 발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이들에게 누가 어울릴까 생각하다가, 여주인공이면 제일 예뻐야 하지 않나 싶어서 프레이야도 데려왔습니다. (물론 신화에서는 결혼했지만, 그쪽 남편은 호드르보다도 존재감이 없어서…)
처음에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판타지 로맨스로 써볼까 했는데, 어째 점점 스케일이 너무 커져버리더라구요…(개연성 와장창, 이름따위 의미없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재미가 없었습니다. 쓰는 재미도, 읽는 재미도요.
결국 방향을 바꿔 스케일을 확 줄이고 신화를 느슨한 모티프와 캐릭터성만 남기고, 로맨스와 성장에 집중하는 캠퍼스물로 전환했더니 술술 써졌습니다(?). 대학교 때 축제 준비 돕느라 정신없던 시절도 생각나고요.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전 물풍선만 수백개 만들어서…;
이 에피소드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2인자가 1인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1인자의 복사판이 아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 1인자는 1인자라는 무게에서 벗어나 2인자를 끌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사실. 클리셰한 만큼, 읽는 분들도 가볍고 편안하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형제와 관계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느껴주시면 충분합니다.
ps. ‘로카센나’에서, 로키의 비난이 신화기록에 기반한 신들은, 그 비난에 아무런 반박도 못합니다. 하지만 ‘너 아무하고나 잤잖아. 나랑도 잤잖아.’ 라는 비난에 화를 내며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는 여신은 프레이야 뿐입니다. 정말로 아니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설산의 신부]
왜 제목이 스카디에게 집중되어 있냐면… 라그나로크 바로 전에 로키를 (로키의 아들의 내장으로) 묶어버리는 게 스카디이기 때문입니다.
스카디와 뇨르드는 ‘신화 최초의 합의 이혼’으로서 기념비적입니다 ㅎㅎㅎ
그리고 전승에 따라서는(헤임스크링글라) 스카디가 뇨르드와 이혼하고 나중에 오딘과 결혼한 걸로 되어있기도 합니다.
사실 스카디와 뇨르드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어요. 그저 환경적 취향이 극과 극이었을 뿐…
그래서, ‘발만 보고 남편을 고른다’는 게 현대적으로는 어떻게 적용되어야 가장 납득 가능할까… 를 궁리하고 궁리한 끝에… and, 나중에 오딘과 결혼하는 내용까지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 계약서 내용만 보고 고르면 되겠다! – 기업 스릴러… 가 되었습니다.
[민간조사사 문해인]
그리스 신화의 거인 아르고스는 눈이 100개였습니다. 헤라 여신이 이오를 감시하도록 만든 괴물이었죠.
북유럽 신화의 헤임달은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듣고, 단 한 번도 잠들지 않는 신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끝을 알리는 나팔을 갖고 있죠.
근데 누가봐도 이건… 감시카메라 아닌가요? 얘는 잠을 자지 않아. 얘는 눈이 엄청 많아. 얘는 모든 걸 보고 있어. 그리고 경보음도 나와.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신화는 미래의 기술을 미리 본 사람들의 ‘오역(誤譯)’이 아닐까.
그들이 본 건 신이 아니라, 아주 멀리 앞선 문명의 잔상, 혹은 그에 대한 예언적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감시카메라를 본 게 아닐까? 예언이든 환상이든, 미래의 cctv를 보고 그리스 사람들은 괴물이라 생각했고, 북유럽 사람들은 신이라 생각한 게 아닐까?
(실제로, 아주 어릴 때 무당에게 가서 ‘얘가 뭘 해먹고 살까요?’ 라는 걸 물어보셨던 분의 경우… ‘책상에 앉아서 뭔가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라는 말만 듣고, 소설가 같은게 되어서 타자를 치나? 했는데… 그당시에는 없던 ‘컴퓨터’를 써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셨다고 합니다 ㅋㅋㅋ)
예언자나 사제가 어떤 형태로든 ‘보았다’면, 그들이 그것을 이해할 언어는 신화뿐이었을 것입니다.
동일한 존재를 바라보며 한쪽은 신의 눈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괴물의 눈이라 부르고.
같은 것에 대한 다른 생각.
그래서 주로 CCTV를 이용해 조사를 하는 탐정, 즉 ‘민간 조사사’로 만들어 봤습니다.
ps. 실제로도 고대 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세상이 끝나고 시작되는 게 같았을 거에요.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
[토르 형사의 마지막 협상]
토르는 이미 마블영화 때문에 유명하지만, 대부분 힘이 세고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신으로만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토르 신도 머리를 써야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부각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왕자님의 상사병]
프레이르와 게르드의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습니다.
프레이르는 단지 하인 스키르니르에게 자신의 검을 ‘빌려준’ 것 뿐이었는데, 훗날 라그나로크에 이르러서는 검이 없어서 싸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히 돌려받지 못한 도구의 문제로 보기에는, 그 상징이 너무 크고 불합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프레이르가 정말로 검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게르드를 얻기 위해 검을 교환한 것은 아닐까?’
학자들 중에는 이 해석을 실제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로카센나’에서는 로키가 프레이르를 보고 넌 최악의 악당이라고 하면서, 금을 주고 신부를 사왔다며 비난하니까요(잘한다 잘한다 로키 잘한다).
즉, 프레이르가 요툰헤임의 게르드와의 결합을 위해 자신의 검을 신부와의 맞교환 형태로 줘버렸고, 그 검은 결국 수르트의 손에 들어가 라그나로크에서 세상을 불태우는 ‘불의 검’이 되었다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프레이르는 결국 자신의 검에 의해 죽은 신이 됩니다.
그가 사랑을 얻는 순간, 세상과 자신의 멸망이 정해진 셈이죠.
저는 그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비극적인 구조가 오히려 북유럽 신화가 가진 모순(맹세의 신 티르는 맹세할 오른손이 없고, 지혜와 전쟁의 신 오딘은 모든 걸 알아도 막을 수 없고, 프레이르는 검이 없어서 못 싸우고 죽고, 완벽한 신 발드르는 그 완벽함 때문에…)과 냉정한 세계관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신화 속 게르드의 시선에서 보면, 프레이르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얼굴을 띱니다.
낯선 남자의 하인이 불쑥 찾아와 “우리 주인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며 말을 전하고, 거절하자 협박과 저주를 퍼붓는 장면은, 누가 보더라도 낭만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로키의 말대로 프레이르는 진짜 악당 오브 악당인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게르드가 왜 차갑게 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왜 결국 그 사랑을 받아들였는지.
그 내면의 이유를 상상해 보는 것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었습니다.
tmi긴 하지만, 저희 아빠는 키도 크고 잘생겼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와는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외아들도 아니었고, 집이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연애때는 항상 싸웠다고 합니다. 속인 것도 너무 많았고. 우리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제대로 직장을 구하지도 않아서 외할머니가 대부분의 생활비를 대주셨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이혼하셨죠.
그럼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니, ‘헤어지고나서 다른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어서.’ 였습니다. 엄마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프랑스 유학을 가고 싶어했지만, 할머니가 반대하셨고, 그 와중에 아빠를 만났었다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겠죠.
솔직히 그래서 전 키크고 잘생긴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1차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면에서는, 이 소설은 우리 엄마의 속풀이이기도 합니다. 잘생긴 놈이 막무가내이니, 마음고생 좀 하고 좀 더 굴러봐라, 라는거죠. ㅋ….
[미스터리 쇼퍼 회장님]
시적 에다(고 에다)에서 가장 처음 나오는 내용은, ‘높으신 분이 말하기를(하바말Havamal)’입니다. 그리고 그 맨 첫번째는 ‘손님을 대하는 방법’이죠. 그래서 오딘의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방문한 오딘을 홀대한 게이로트(게이로드)의 이야기를 가져와봤습니다. 손님 응대니까 호텔로 해 봤구요.
[로키의 이야기]
로키는 ‘다시 쓰는 라그나로크’에서 언급했듯이, 완벽해서 죽어가는 모든 것에 빈틈을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그럼 현대에는 뭘 하고 있을까? 하다가 해커나 크랙커를 할 거 같다… 에 도달했고, 작가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자기 자랑(?)겸 해명을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해봤습니다. 근데 정말 마치 로키가 직접 알려주는 것처럼 ‘로키의 해명’은 술술 써지더라구요(…)
‘로키의 도박’ 에피소드는, 거의 원전 그대로입니다. 로키가 토르의 아내 시프의 머리칼을 장난으로 잘라버렸다가 토르에게 뼈를 다 부숴놓겠다는 협박을 받고는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이야기. 마지막에 입을 꿰매는 대신 책상을 다 꿰매버렸죠 ㅎㅎ 메신저를 쓰지 못하게 ‘입’을 닫아버렸구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원래는 25년 초에 이 스토리를 제일 먼저 썼습니다(…)
사실 제 꿈 이야기였습니다(…) 거진 일주일… 열흘 내내 같은 꿈이 점점 구체화되면… 안 쓸 수가 없어요. 머리속에 대사가 글로 지나가는데 이걸 ‘기록’을 안해? (…) 어르신들 아니랄까봐 취향 올드하기는…;;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걸 다 쓰고 나니까 갑자기 이 <네오 에다>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거죠.
참고로… 여기에서의 헬의 모티프는 이 캐릭터입니다. 목소리 톤이나 빠르기도 그렇고… 군체라는 외계인종족을 향한 복수심 같은것이라든지… 반은 군체, 반은 인간인 것도…

데스티니2 게임의 ‘에리스 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