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해설 (+ 읽는 방법론에 대하여)

9월 3일

비문학으로 구성된 기록물에서 서사를 읽어내고 마음껏 상상하시고 마음껏 느끼시라는 것이 기획의도였지만, 정보과잉과 과도하게 어지러운 설계로 의도한 재미는 드리지 못 했습니다. 특히 Chapter 1은 ‘이 정도는 헤집어놔야 읽는 분들도 찾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서 퍼즐을 만들다 못해 미로로 만들어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 선에서, Chapter 1에 대한 해설을 작성해봅니다.

이미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실패한 것이지만, 제 실험적인 글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작은 즐거움이 되길 바랍니다.

 

1. 편지 (2032. 5. 12.)

: 2032. 5. 12. 지현은 선배 도훈이 요청한 연구보고서를 보내는 편지를 씁니다. 보안 때문에 전자적 통신도 불가하고 직원이 자료를 직접 받으러 왔기에 지현은 손편지를 썼습니다. 국립생물연구소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연구보고서 전문은 보낼 수 없고 요약본을 보낸다고 합니다. 옛날 번호 안 바뀌었다는 플러팅은 덤입니다.

 

2. 보고서 (2032. 5. 12. 편지에 첨부)

: 지현이 도훈에게 보내는 편지에 첨부될 요약보고서입니다. 2029. 4. 9. 최초 보고된 루세온 바이러스는 개를 절멸시키는 가축병이었습니다. 박쥐의 유전자는 바이러스와 공존함으로써 바이러스 발현을 막는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지현은 개의 유전자를 박쥐의 유전자로 바꾸는 방식으로 루세온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렇게 개의 유전자를 박쥐의 것으로 치환하는 연구를 했었습니다.

 

3. 간호경과기록 (2035. 8. 10.)

: 강도훈의 간호경과기록입니다. 2035. 8. 8. 입원한 강도훈은 2035. 8. 10. 02:45 사망합니다. 루세온 인체감염증 바이러스(CR42) 의심 소견입니다.

 

4. 연구계획서 (2035. 2. 10.)

: 어느 기관의 감염병유전자연구실 소속 수석연구원 주지현의 연구계획서입니다. 가축전염병인 루세온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루세온 바이러스 자체를 유전자 편집을 통해 변형시키고 약화시키는 연구를 계획했습니다.

 

5. 공소장 (2035. 9. 15.)

: 주지현에 대한 검사의 공소장입니다. 주지현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고위험병원체인 루세온 인체감염증 바이러스(CR42)를 옮기려면 질병관리청에 신고를 해야하는데, 국립생물연구소에서 바이러스를 몰래 가지고 나가 집에 들고갔다가 피해자 강ㅇ훈에게 노출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입니다.

 

6. 변호인의견서 (2035. 9. 26.)

: 주지현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진정 소속 이도현 변호사의 변호인의견서입니다. 주지현은 연구때문에 루세온 인체감염증 바이러스(CR42)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연구소 밖으로 반출한 적이 없고, 주지현이 정당하게 신고하고 반출한 바이러스는 루세온 인체감염증 바이러스가 아니라 가축전염병인 루세온 원형 바이러스(C6R3)라는 것입니다. 그마저도 주지현의 연구와 실험에 따라 유전자 변형을 시켜 약화시켰기 때문에 위험한 바이러스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7. 신고서 (2035. 8. 6.)

: 주지현이 바이러스를 반출할 때 작성한 신고서입니다. 이도현 변호사가 주장한 것처럼 주지현은 루세온 원형 바이러스의 변형 2종류를 반출했고 루세온 인체감염증 바이러스(CR42)를 반출하는 신고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변형은 2종류인데 R4.b 단백질이 없는 버전의 변형과, R4.b 단백질이 있는 버전의 변형입니다. 주지현은 R4.b 단백질이 없는 버전을 직접 수송했고, R4.b 단백질이 있는 버전은 국가바이오안전운영센터에서 수거해서 질병관리청으로 옮기기로 합니다.

 

8. 실험경과보고서 (2035. 8. 2.)

: 주지현의 주 연구였던 루세온 원형 바이러스(C6R3)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약화시키는 실험에 대한 경과 보고서입니다. 유전자조작을 통해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낮아졌는데, 특정 실험군에서 특이한 계통의 변이체가 발생하였습니다. 특이한 변이 바이러스는 R4.b라고 이름붙인 단백질이 있습니다. 주지현은 R4.b 단백실이 있는 루세온변이 바이러스의 내부 코드명을 ‘루세온 베타’로 지정하였습니다.

 

9.  결정문 (2035. 10. 2.)

: 주지현에 대한 보석결정입니다. 이도현 변호사의 변론이 잘 먹혔나 봅니다.

 

10. 증언녹취록 (2035. 11. 2.)

: 주지현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정관혁’이라는 의사(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하였습니다. 검사는 정관혁이 강도훈을 ‘루세온 인체감염증 감염 의심’으로 진단한 것에 대해 의학적 근거가 있다는 답변을 유도합니다. 이도현 변호사는 정관혁 교수가 강도훈에게 루세온 감염 테스트도 하지 않았고 유사한 증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정관혁 교수를 포함해서 강도훈을 진료한 의료진들도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텐데 경미한 증상만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강도훈에게 특이한 점이 없었냐고 묻는 질문에 정관혁 교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11. 분석보고서 (2035. 8. 12.)

: 질병관리청의 바이러스 분석보고서입니다. 주지현을 통해 국립생물연구소에서 분석을 의뢰한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를 분석합니다. R4.b 단백질에 대해 분석해보지만, 특별한 기능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12. 사실조회회신 (2035. 11. 10.)

: 주지현의 형사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원에서 질병관리청으로 사실조회를 요청했고, 질병관리청이 회신했습니다. 주지현의 집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R4.b 단백질이 없는 버전의 루세온 변형 바이러스였습니다. 강도훈의 검체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R4.b 단백질이 있는 버전의 루세온 변형 바이러스, 즉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였습니다. 강도훈은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강도훈으로 인해 의료진도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에 노출되었고 감염되었지만 경미한 증상밖에 없었습니다.

 

13. 공판조서 (2035. 11. 30.)

: 주지현의 형사재판 4번째 공판기일의 조서입니다. 판사는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사실조회회신이 도착했음을 고지합니다. 검사는 질병관리청의 사실조회회신을 근거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합니다. 주지현의 죄를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로 예비적으로 추가합니다. 다음 재판은 2035 . 12. 21.입니다.

 

14. 녹취록 (2035. 8. 6.)

: 주지현과 강도훈 사이의 통화 녹음을 녹취한 기록입니다. 주지현은 강도훈에게 국립생물연구소에서 바이러스 반출 신고를 했고 유전자 실험을 통해 전염성이 억제된 루세온 바이러스 샘플을 직접 가지고 나온다는 얘기를 합니다. 주지현은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를 밀봉하다가 노출된 것 같은데 괜찮겠지-하고 말합니다. 강도훈은 다음에 보자고 농담을 하고 주지현은 옮길거라고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둘은 조금있다가 만나기로 했습니다.

 

15. 통화자동기록 (2035. 11. 30.)

: 4번째 형사재판 이후 주지현과 이도현 변호사 사이의 통화기록입니다. 주지현은 자신을 통해 강도훈이 루세온 베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자책합니다. 이도현은 사건에 도움이 안 된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합니다.

 

16. 기사 (2035. 12. 4.)

: 2035. 12. 2. 루세온 바이러스의 유전자 편집을 이용한 전염성 억제 연구를 하던 국립생물연구소 소속 주 모(34세)가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주 모 연구원은 바이러스 노출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자살사건 보도지침에 따라 기사에 자살은 언급되지 않고 우울증이 있을 경우 상담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문구만 주 모 연구원의 자살을 암시합니다.

 

17. 문자메시지 (2035. 8. 6. )

: 경조사 알림문자입니다. 주지현과 강도훈은 2035. 8. 12. 결혼 예정이었습니다.

 

18. 메신저 메시지 (2035. 8. 14.)

: 어느 회사의 김세환 백신개발본부장이 프로젝트 헬릭스 팀원들에게 전파한 메신저 메시지입니다. 강도훈 팀장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강도훈의 사망으로 잠정 중단합니다. 강도훈은 MG3012 백신을 자신에게 접종했었습니다. 김세환 본부장은 강도훈 팀장은 루세온 변이 바이러스가 MG3012 백신으로 삽입한 면역 유전자를 자극하여 폭주하는 바람에 염증 증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프로젝트는 중단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메시지는 곧 자동 소거됩니다.

 

19. 비공개 임상관찰 보고서 (2035. 8.10.)

: 주지현의 형사사건에 증인으로도 출석하였던 정관혁 교수가 작성한 강도훈에 대한 임상관찰보고서입니다. 이미 사망선고를 받아 안치실에 안치되어 있었던 강도훈이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강도훈은 손, 발 등으로 타격 움직임을 보입니다. 의료진은 강도훈을 살려보려고 포도당도 투입해보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반응이 전혀 아닙니다. 일단 결박해놓고 그저 지켜봅니다. 비정상적인 반사반응이 계속되다가 천천히 반응이 사라집니다. 정관혁 교수는 잔존 에너지 소모 현상이라고 규정하고, 철저히 비밀리에 부치도록 합니다.

 

 

반전을 주고 싶어 시간순대로 기록을 배치하지 않고 뒤섞어버렸다가, 혼란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전문가가 보기에도 그럴듯해야 리얼하게 보일 것이라는 강박으로 연구논문까지 찾아보고 썼지만 과했습니다. 시간순대로 재배치하자니 서사적 재미가 밋밋해서 순서는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챕터 2는 조금 더 낫고, 챕터 3는 좀 더 보기 편하게 덜 복잡하게 설계해서 진행중입니다.

챕터 2 후반부터 단편 이야기들을 써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에(@user:난네코 님 조언 덕분입니다), 챕터 2까지는 등장인물의 개인적 서사가 진행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챕터 3부터는 본격적으로 설정집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도록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설정집을 읽는 기분으로 접근해주시면 좀 더 읽기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챕터 1만큼은 아니지만 챕터 2도 과거와 현재의 교차 배열로 약간 정신없을 수 있습니다. 챕터 2는 변호사 이도현의 개인 서사이자, 바이러스와 백신과의 관계가 좀 더 드러나는 챕터입니다.

 

서사를 보시려면 기록물의 작성 시간을 체크하시면서, 키워드만 보시면 되겠습니다.

약관 잘 안 읽게 되고, 논문도 결론만 보게 되고, 경고문 같은 것조차 핵심 문구만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픽션이라 생각하고 기획했습니다.

 

고정적으로 좋아해주시는 작가님들 외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은데도 의외로 조회수가 나와서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실험적인 모습에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글이 감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