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뼈 요람

  • 장르: 판타지 | 태그: #황금드래곤문학상 #연작
  • 평점×406 | 분량: 25회, 652매
  • 가격: 20 5화 무료
  • 소개: 존재를 잃어버린 자들의 세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파고드는 작품 크리스티안은 마을에서 일손이 필요한 사람들을 거들며 살고 있는 열다섯 살 백발의 소년이다. 술을 마시며 사고를 치는 ... 더보기

『고래뼈 요람』 김유정 작가 인터뷰

16년 12월

“오히려 익명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수상 작가 김유정 인터뷰


Q. 『고래뼈 요람』은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대상 수상작 『영혼의 물고기』 이후, 황금가지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가님의 소설선입니다. 그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A. 면목 없습니다.(웃음) 별것 없이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것저것 쓰다 보니 벌써 십 년이 지났네요. 강산이 한 번은 변했을 텐데 미숙한 떫은 내가 좀 가셨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Q. 첫 번째 작품 「진저와 시나몬」은 세계를 부유하는 두 남녀의 우연하고도 운명적인 이야기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들의 먹먹한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단편이었습니다. 이런 질감의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고 집필하게 되셨는지요?

A. 진저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케이트는 친한 벗이 만든 캐릭터를 허락 하에 빌려왔습니다.(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런 인물이라면 어떤 시간대에서 어떤 땅을 딛고 어떤 풍경을 보며 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한 친절하지 않은 도시가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한 낯선 여자의 모습을 빌어 그에게 접촉해 왔습니다. 한순간씩만 감당할 수 있는 온기를 주면서.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Q. 작품 속 주인공 ‘시나몬’과 ‘케이트’는 ‘진저와 시나몬’이라는 그럴 듯한 팀명을 이루는 것처럼 어울리기도 하지만, 끝내 예명과 같은 이름으로만 서로에게 떠도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익명성이 넘쳐나는 시대에 주인공들이 이름을 숨기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어떤 것을 의도하고 싶으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A.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 세계관에서는 본명이 사람의 본질을 결정짓고 드러내는 열쇠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쩌면 현대에서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내재된 힘만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명, 진정한 자신에게서 더는 마법 같은 힘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그래서 가명 뒤에 숨는 일도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타인이 발견해 주는 자신의 모습, 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모습, 오로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내는 위명(僞名) 등.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위명은 즉각적이고 대리충족적인 자아가 될 수 있겠죠. 마치 잠시 머물다 미련 없이 떠나는 호텔 방처럼. 그러나 그 호텔 방에 풀어두는 하룻밤 짐 가방에도 개성이 묻어나듯 그 임시의 익명도 분명히 자아의 한 부분일 겁니다. 본명이 사라진 가벼운 관계이면서도 오히려 익명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는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때로 불투명한 타인은 자신의 거울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가짜를 통해 진짜를 회복할 수 있는.

Q. 「진저와 시나몬」은 작가님 홈페이지에서 월드리스(Worldless)라는 시리즈 타이틀로 연재되었는데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연작 계획이 있으신지, 월드리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신다면요.

A. 처음에는 「진저와 시나몬」 한 편으로 끝날 이야기였지만 만약 이 세계가 허락해 준다면 더 넓혀가고 해답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익명이기 때문에 풀어야 할 암호처럼 말이죠. 그래서 ‘월드리스’라는 장편으로 시도를 해보았는데 제대로 암호를 풀고 있는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올바른 문을 두드린다면 좀 더 다듬어서 케이트와 이안이 등장하는 긴 이야기로 개작해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진저와 시나몬」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일 듯합니다만.

 

 

Q. 두 번째 작품으로 실린 중편 「고래뼈 요람」은 거대한 두 세계와 그 사이에 중첩된 모든 인물들의 관계를 넘나드는 감정이 더 애잔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진저와 시나몬」에서도 그랬지만 고독이나 부재, 상실 등의 감각들이 날카롭게 살아 있고, 그 비어 있는 감정들이 작품의 여백을 스스로 만들어 아름답게 완성되는 느낌입니다. 이처럼 작품에서 중요하게 의식하는 특정한 감정들이 있는지요?

A. 제가 감정을 다룬다기보다는, 되도록 많이 들어주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가 하필 제게 온 것도 인연. 재주라고는 들어주는 것밖에 없으니 살풀이나 하고 가라고 내어 줍니다.

Q. 「진저와 시나몬」이 서로에게 끝없이 떠도는 인물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면, 「고래뼈 요람」은 발붙이고 선 현실의 세계에서 누군가는 다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로 보다 고차원의 의지나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두 작품을 특별히 고르고, 선보이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A.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관계의 수명이 믿음보다 견고하지 못하다 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괜찮지 않은 것들의 연속이다 보니 상실이나 실패도 살아갈 근원이 될 수 있다고.

Q. 두 작품을 관통하는 또 하나는 ‘관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연인도 아닌 남녀(진저와 시나몬), 사랑하지만 연인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고래뼈 요람)의 관계는 특별하게 규정되거나 매듭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거나, 어딘가에 남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제대로 매듭지지도 않고 분류될 수도 없는 관계가 때로는 남은 날들을 지탱할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굳이 사람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어떤 우연, 사물, 말, 파도에 쓸려 해안에 밀려온 잔해들처럼 그런 것들로 자신을 이루어도 괜찮겠죠.

Q. 흔히들 상상력이 부재하다고 손쉽게 말하는 시대입니다. 상상력이란 게 상업적으로 기민하거나 어떤 주류적 감수성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어쩌면 갈수록 더 환상 문학이 읽혀져야 하는 당위에 대해 조심스레 여쭤 봐도 될는지요.

A. 일종의 숨통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문제없다고 틔워주는 한줄기 숨통. 상상력이란 현실에 뿌리내린 거울상이기 때문에 현실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만큼 마비와 도피만을 위한 환상이 움트겠지요. 양자는 서로를 반영할 뿐 아니라 질시하고 다투고 서로의 태생적인 결손과 어두운 면도 끄집어내 낱낱이 드러내는 역할도 맡을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환상은 터무니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현실의 모태이자 동반자, 함께 태어나거나 괴사하는 쌍둥이. 참혹하고 끔찍한 상황에서는 상처를 봉합해 주는 위로의 힘이 되고, 번영과 자만 속에서는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가장 작은 것들을 비추는 빛이 되기를. 그렇게 흠결 있는 쌍둥이로 태어난 현실과 환상은 서로의 안에서 균형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두 작품 「진저와 시나몬」과 「고래뼈 요람」을 어떻게 읽어 주셨으면 하는지, 전자책으로 다시 이 작품을 만나게 될 독자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감사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모쪼록 즐거운 꿈꾸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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