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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가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아낄 수 있을까

분류: 책, 글쓴이: OneTiger, 18년 8월, 댓글56, 읽음: 167

여기 브릿G는 소설 사이트입니다. 소설을 쓰거나 읽기 위해 수많은 회원들은 여기에 모였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왜 우리가 소설을 쓰기 원할까요? 왜 우리가 소설을 읽기 원할까요? 소설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기 원할까요? 누군가는 재미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재미? 네, 좋습니다. 그건 아주 교과서적인 대답일 겁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재미를 느낄까요? 무엇 때문에 우리가 재미를 느끼죠? 여기에서 여러 대답들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소설이 이상과 로망을 보여주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등장인물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 그런 로망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등장인물 때문에 우리는 소설을 쓰고 읽는지 모릅니다. 누구나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물 유형이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차분하고 분석적인 인물 유형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저돌적이고 활달한 인물 유형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른바 4차원 인물 유형이나 비일상적인 인물 유형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소설이 그런 인물 유형들을 보여준다면, 독자들은 거기에 매료될 겁니다. 그런 인물 유형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상을 투영하기 위해, 작가들은 소설을 쓰는지 모릅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조건들에 부딪혀야 합니다. 그런 조건들은 우리를 가로막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인물 유형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인물 유형을 꿈꾸나, 현실의 여러 장벽들은 그걸 제한할 겁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작가는 그런 제한들을 풀고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인물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인물을 표현할 때, 작가는 정말 기쁨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인물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에 작가는 마음 속에 열정적인 기력을 채울지 모릅니다. 그런 작가는 다른 사람들의 비평에 상관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마음 속에서 이상과 로망이 들끓는다면, 그런 작가가 구태여 다른 사람들의 비평에 상관하겠어요. 이상과 로망을 소설에 쏟아붓기 위해, 그런 작가들은 혹평이나 악평에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 유형을 찾아냈을 때, 독자들은 기뻐하고 만족할 겁니다. 그런 인물 유형이 멋지게 활약하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때, 독자들은 계속 소설을 읽고 싶어할 겁니다. 이런 인물 유형은 이른바 최애캐(최고로 애정을 쏟는 캐릭터)가 될 수 있겠죠. 이는 일부 동인계 팬들에게서 비롯한 용어이나, 주류적인 소설들에 이걸 적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죠. 여기 브릿G에서 여러 작가들과 독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최애캐들이 있을 겁니다. 적어도 다들 애정 캐릭터들이 있겠죠. (아, 물론 저에게도 브릿G 소설에 나오는 애정 캐릭터가 있어요.)

 

동인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는 한 가지 더 물어볼 수 있겠죠. 왜 우리가 소설을 읽을까요? 왜 우리가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소설을 골랐을까요? 소설에 무슨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저는 텍스트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는 추상적인 영역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는 철학과 사유와 심리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설은 등장인물의 철학과 사유와 심리를 깊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은 그렇게 파고들지 못합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에게 텍스트가 부차적인 표현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소설에게 텍스트는 주된 표현 방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등장인물의 철학과 사유와 심리를 보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매체들보다 소설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여기가 소설 연재 플랫폼이기 때문에 저는 이런 논의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다른 매체들이 소설보다 뒤쳐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매체들은 그림이나 영상이나 연기나 의상 세트 같은 방법으로 등장인물을 조명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영화 <박열>에서 관객들은 최희서의 연기와 외모를 통해 가네코 후미코라는 등장인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최희서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박열>은 그렇게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가네코 후미코를 묘사하지 못했을지 모르죠.

 

이렇게 여러 매체들은 서로 다른 방법들을 이용합니다. 저는 그것들 중 소설이 등장인물의 사상과 심리를 가장 잘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소설을 쓰고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까요? 만약 우리가 어떤 특정한 인물 유형을 선호한다면, 왜 우리가 그런 인물 유형을 선호할까요?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우리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지 모릅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인물 유형은 사실 우리가 진짜 선호하는 인물 유형이 아닐지 모릅니다. 만약 그런 인물 유형을 소설 속에 집어넣는다면, 작가는 그런 소설에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그런 인물 유형이 등장한다면,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독자는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작가와 독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죠. 아무리 작가가 열심히 쓴다고 해도, 그런 인물 유형에는 영혼이 실리지 않을 테고, 작가는 그런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물론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는 다른 방법들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인물 유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어떤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크게 실망할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작가들이나 독자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기 브릿G에도 그런 작가들이나 독자들이 있을지 몰라요.

 

가령, 어떤 작가는 억압적인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인물 유형을 좋아합니다. 이 작가는 그런 인물 유형을 소설 속에 집어넣기 원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레즈비언이 소설 주인공이라고 설정했습니다. 작가는 레즈비언이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편견과 맞서 싸우는 내용을 썼습니다. 작가는 이런 소설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저 성 소수자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작가는 이런 소설에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가 보다 거시적인 억압을 고찰하기 원한다면, 이런 소설에 만족하지 못하겠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억압과 편견은 그저 성 소수자 문제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성 폭행, 환경 오염, 인종 차별, 이주 난민, 외국인 노동자, 동물 권리 역시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런 문제들을 훨씬 깊게 고찰하고 싶다면, 지배적인 관념을 깨뜨려야 할 겁니다. 동물 권리 문제는 영리 기업들이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동물 권리 문제를 고찰하고 싶다면, 작가는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작가가 쉽게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작가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문제라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할 겁니다. 어떻게 이런 작가가 편견과 억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성 소수자들이 정체성을 드러낼 때, 그들은 직장에서 단체 따돌림을 당하거나 쫓겨날지 모릅니다. 취직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성 소수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되고 죽음을 당할지 모르죠. 이런 문제를 고찰하고 싶다면, 작가는 성 차별을 비판하는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비판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비판하고 싶다면, 작가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작가는 성 차별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인물 유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생각조차 못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작가는 반쪽짜리 인물을 만들지 모르죠. 작가는 왜 자신이 그런 인물을 만들었는지 자각하지 못할 테고, 그런 인물은 최애캐가 되지 못하겠죠. 그런 인물은 차애캐나 삼애캐나 심지어 N애캐조차 되지 못할지 모르죠. 작가는 자신이 만든 등장인물을 버리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자유 무역 협정이 가난한 여자들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해도,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열정적으로 자유 무역 협정을 지지합니다. 만약 그런 자칭 페미니스트가 소설을 쓴다면, 소설 주인공 역시 여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모르죠. 어쩌면 소설을 쓰는 동안, 그런 작가는 자칭 페미니즘에서 벗어나고 소설이 뭔가 이상하게 굴러간다고 느낄지 모르죠. 하지만 자본주의가 옳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작가는 그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막연하게 감을 잡을 뿐입니다. 뭐가 이상한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작가는 소설에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쓰고 읽는지 모를지 모릅니다.

 

이는 그저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는 수많은 편견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저도 모르게 그런 편견들을 따라가는 중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소설을 쓰고 읽는다면, 우리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죠. 이 게시글에서 저는 여러 사회 문제들과 자본주의를 언급했으나, 이런 편견들은 꽤나 다양할 겁니다. 여자 아이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거기에 예쁜 디즈니 공주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자 아이들이 스스로 디즈니 공주들을 좋아할까요? 여자 아이들이 공주가 뭔지 알까요? 여자 아이들이 군주 제도가 뭔지 알까요? 어떤 여자 아이는 왜 자신이 공주를 좋아해야 하고 왜 공주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부려먹는지 이상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이모, 왜 안나 공주가 다른 하인들을 부려먹어? 안나가 나쁜 사람이지?”)

흔히 괴수물 매니아들은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고 말합니다. 왜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일까요? 왜 여자가 거대 괴수를 좋아하면 안 될까요? 어쩌면 어떤 여자들은 거대 괴수 소설을 쓰기 원할지 모릅니다. (거대 괴수 만세!) 하지만 거대 괴수가 남자의 로망이라는 편견은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그런 여자들은 자신이 거대 괴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런 여자들은 거대 괴수가 오직 가부장적인 욕망만을 드러낸다고 여길지 몰라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서던 리치 시리즈’는 이런 편견에 저항할 수 있어요. <빛의 세계>에는 거대 괴수가 나옵니다. 이 소설이 가부장적인 욕망을 드러내나요? 그렇지 않죠. 하지만 편견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다소 우스꽝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대 괴수를 좋아함에도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이런 문제는 우스꽝스럽지 않겠죠.

 

이는 모든 작가와 독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닙니다. 어떤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이상적인 인물 유형보다 배경이나 사건이나 이야기 구조에 훨씬 많이 초점을 맞출지 모릅니다. 어떤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편견이나 고정 관념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배경이나 사건이나 이야기 구조 역시 고정 관념에게 휘둘릴지 모릅니다. 작가들과 독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쓰고 읽는지 모를지 모릅니다. 설사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희미하게 눈치챈다고 해도, 그들은 고정 관념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힐지 모르죠. 소설은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거나 해방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통로를 통과했을 때, 어떤 작가들과 독자들은 크나큰 만족을 느낄 겁니다.

아직 그런 통로를 지나지 못한 작가들과 독자들이 있다면, 저는 이 게시글이 그런 작가들과 독자들을 자극했으면 좋겠습니다. “왜 내가 이런 소설을 좋아하지? 왜 이 소설이 재미있음에도, 내가 등장인물에게 공감하지 못할까? 왜 이 등장인물이 나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지? 왜?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 자신을 정리하거나 해방하지 못하겠죠. 그런 사람들은 소설의 여러 장점들 중 하나를 잃을 겁니다.

 

여기 브릿G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소설을 쓰기 원함에도 마음 속에서 열정이 끓지 않나요? 자신이 원하는 인물 유형을 집어넣고 싶으나, 그게 누구인지 헛갈리나요? 좋은 소설을 읽었음에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거나 채워지지 않나요? 최애캐를 고르고 싶다고 해도, 자신이 무슨 인물 유형을 좋아하는지 애매한가요? 소설의 등장인물을 이용한 심리학 검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편견과 고정 관념을 깨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쉽지 않다고 해도, 장벽을 부술 때, 그런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 사람들은 진정한 애정 캐릭터를 고르고, 거기에서 열정적인 창작과 비평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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