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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SF 소설에서 인간을 찾으십니까?

분류: 책, 글쓴이: OneTiger, 18년 7월, 댓글2, 읽음: 176

많은 사람들은 SF 소설이 인간을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SF 소설이 이질적이라고 해도, 그것들이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사이언스 픽션의 인기 요인을 보편성으로 꼽습니다. 이는 아무리 사이언스 픽션이 외계인과 우주와 낯선 시대를 묘사한다고 해도 그 안에 인간들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주장은 틀리지 않으나,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간과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보편적인 관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트 SF 같은 웹진이 지적하는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인간 이외의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는 수많은 외계인들, 인공 지능들, 돌연변이들이 등장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비단 지구만 아니라 다른 항성계의 행성들을 둘러보고, 비단 자본주의 세상만 아니라 사회주의 세상이나 페미니즘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사이언스 픽션의 인기 요인이 보편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보편성을 깨뜨리기 때문에 사이언스 픽션은 높은 인기를 끕니다. SF 작가가 비인간적인 존재를 바라보라고 말한다면, 그게 보편적일까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여자들이 생태 페미니즘 혁명을 외친다면, 그 여자들은 보편적이지 않고 아주 전복적일 겁니다.

 

그렇게 보편적인 이야기가 읽고 싶다면, 이 세상에는 훌륭한 세계 고전 문학들이 널렸습니다. 그것들은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독자들은 그것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SF 독자들이 많고 많은 고전 문학들을 놔두고 구태여 SF 소설들을 읽는 이유는 외계인이나 다른 항성계나 대안 문명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SF 소설들만이 그런 전복적인 것들을 논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SF 소설들이 보편성을 강조한다면, 결국 인간의 이야기만 강조한다면, SF 소설들은 주류 소설들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SF 소설들이 주류 소설들과 다르지 않다면, SF 독자들은 구태여 SF 소설들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SF 작가들은 고정 관념을 깨고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느라 애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가 그런 노력들을 무시하고 보편성에 주목해야 할까요? “결국 사이언스 픽션 역시 인간의 이야기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들은 많습니다. 물론 모든 문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당연히 사이언스 픽션 역시 인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모든 문학은 인간을 이야기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저 그것만으로 귀결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을 특정한 장르로 구분할 이유는 없어요. SF 소설들은 오직 보편적인 인간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SF 소설들은 차이, 변혁, 단절을 논의합니다. 결국 SF 소설들이 인간을 논의한다고 해도, 차이, 변혁, 단절은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하드 SF 독자들은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꽤나 싫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작가들이 세상을 뒤집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위험한 사건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결국 그들은 보편적이고 주류적인 질서 속으로 회귀합니다. 하지만 유명한 SF 소설들은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부정하고 뒤집습니다. <대수학자>, <유년기의 끝>, <해변에서>, <블라인드 사이트>, <쿼런틴>, <아크투르스로의 여행>, <타임십>, <사기꾼 로봇>, <영원한 전쟁> 같은 소설들에서 보편적인 인간 군상과 주류적인 관념은 소멸합니다. 어떤 SF 소설들은 훨씬 덜 전복적이고 훨씬 더 순응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SF 소설들조차 주저하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과 주류적인 관념을 파헤칩니다. SF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이 인식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는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설사 SF 소설이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독자들이 거기에 너무 주목한다면,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지 못할 겁니다. 주류적인 관념에 주목한다면, 작가가 <타임 머신> 같은 소설을 쓸 수 있겠어요?

 

SF 소설들에 외계인이나 인공 지능이나 돌연변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차이와 변혁과 단절은 중요합니다. <에코토피아 뉴스>나 <붉은 별>, <안드로메다 성운>, <빼앗긴 자들>, <푸른 화성> 같은 소설들은 대안 문명을 보여주고,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소멸시킵니다. 현대 인류 문명에서 보편적인 인간 군상은 자본주의를 추종합니다. 비자본주의적인 사람들 역시 많으나, 대세는 자본주의를 추종하죠. 하지만 저런 대안 문명들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 군상은 발을 딛지 못합니다. 대안 문명 속의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가 엉뚱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왕처럼 신처럼 우리는 대기업들을 숭배합니다. 대기업들에게 생산 수단을 독차지할 아무 이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대기업들이 그래야 한다고 여깁니다. 자본주의가 기후 변화라는 전대미문의 행성적인 환경 재앙을 불렀음에도, 우리는 자본주의를 의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소비에트 연방이 폭력적이라고 호들갑을 떱니다. 분명히 소비에트 연방은 끔찍한 비극이고, 거대한 학살이고, 다시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군사 독재입니다. 분명히 소비에트 연방은 강렬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비에트 연방이 잘못이라고 크게 지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소비에트 연방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파괴적인 폭력이 존재합니다. 서구적인 근대화와 자본주의는 훨씬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훨씬 많은 자연 환경들을 오염시켰습니다. 기후 변화라는 행성적인 환경 재앙 앞에서 군사 독재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력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폭력을 비판하고 싶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이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시적인 폭력을 무시합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는 임금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중세 사람들이 왕권신수설을 믿는 것처럼, 우리는 자본주의가 당연하다고 믿고 임금 노예가 되고 싶어합니다. <빼앗긴 자들>의 등장인물에게 이런 사회는 뚱딴지로 보일 겁니다. 이렇게 외계인들이 중요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SF 소설은 차이, 변혁, 단절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차이, 변혁, 단절 때문에 SF 소설들은 재미있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SF 소설에서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찾고 싶다면, 저는 그걸 말리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은 그저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게다가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찾는 행위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가치를 무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핵심적인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SF 소설들은 존재합니다. 중세와 근대와 현대가 바뀐 것처럼, 앞으로 인류 문명은 계속 달라질 겁니다. 어떻게 인류 문명이 바뀔지 아무도 알지 못하나, 인류 문명은 꾸준히 달라질 겁니다. (심지어 인류 문명은 사라질지 모릅니다.) 인류 문명이 바뀔 때, 주류적인 관념 역시 사라질 겁니다. 불과 100년 전에 여자들은 투표하지 못했습니다. 주류적인 관념은 여자들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관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주류적인 관념은 소멸했고, 여성 참정권은 (적어도 강대국 여자들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계속 바뀝니다. SF 소설들이 이야기하는 차이, 변혁, 단절은 그런 것입니다.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의 비평문을 편집 및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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