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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풀이법]을 읽는 4가지 방법 +a

분류: 수다, 글쓴이: stelo, 18년 5월, 읽음: 70

안녕하세요. 오늘만큼은 리뷰를 쓰고 의뢰도 받는 Stelo입니다.

 

저는 최근에 soha님이 쓰신 ‘또 다른 풀이법’을 리뷰했는데요. 리뷰 공모가 걸린 만큼 많은 분들이 리뷰를 써주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그 리뷰들을 어떻게 읽었는지 -하나는 제가 썻지만요.- 이야기해보려고 왔습니다.

 

아, 당연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오셨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해볼 게요.

 

하나 이해

삶을 풀어가는 방법의 미묘함

저는 또 다른 풀이법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화자가 평범하게 공감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수학이 소설에 나오는 순간 독자가 뚝뚝 떨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노말시티님의 리뷰를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어떤 소설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짚어주시거든요. 익숙한 모차르트 살리에리 비유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나오는 ‘올바름’에 대한 비유도 탁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꿈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화자의 말을 빌리자면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보통의 존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김지훈이라는 천재가 나타나 “나도 할 수 있으니 너도 할 수 있어”하고 부추기면서 희망을 줍니다.

물론 꿈을 꿔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죠.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희망이 그렇듯 공기는 인간과 새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물고기가 익숙한 물 밖으로 나온다면… 공기는 독일 뿐입니다. 그래서 노말시티님의 리뷰는 이런 인용문으로 끝납니다.

“폐를 가득 채우며 입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희망에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주인공과 김지훈을 이해하려고 해봅니다

제오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연민’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안타까움이라고 해도 되겠죠. 리뷰어 자신은 어떠했었는지도 이야기하시면서 주인공에게 수학말고 다른 연인을 찾아보는 건 어떤지도 이야기합니다. 꿈은 거대할지언정 삶의 일부일 뿐, 삶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심지어 무난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까지 하세요.

김지훈도 이해해보려 하셨지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맞겠네요. 우선 받아들이고 일하게 시키는 마이페이스 교수님은 어쨌든 나쁜 것 같습니다.

 

둘 정신?분석

김지훈이라는 알리바이와 거울과 자기연민

이제 갓 올라온 주렁주렁님의 리뷰입니다. 주렁주렁님은 솔직하면서도 예리하게 이 소설을 해부해버리셨습니다. 제목만 봐도 어떤 말을 하실지 알 것만 같습니다.

저는 여러 리뷰에서 ‘작가가 만든 서술트릭’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생각해보면 작가도 화자도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에 따라 세상을 그리고 알리바이를 만들고… 결론을 내리죠.

주렁주렁님은 돌직구를 날리십니다. “김지훈 얘기가 아니라 자기얘기만 한참을 한다.”고요. 세상에 김지훈처럼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역시 자기연민이라는 분석도 납득이 갑니다.

주렁주렁님은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심리 상담사 이야기도 하십니다. 환자들은 “더 이상 삶이 굴러가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삶을 굴리고 싶어”서 상담사를 찾아온다고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건 그저 화자가 늘어놓은 핑계이며 물 속에 안주하고 싶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재능을 탓하고 현실을 탓하는 거죠. 그걸 직시하게 하는 말은… 어쩌면 그로테스크하고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셋 해독제

당신의 풀이도 아름답다

마지막은 제 리뷰인데요. 실제로 리뷰가 올라온 순서는 이렇지 않습니다. 주렁주렁님의 리뷰가 마지막이었죠. 그럼에도 제 리뷰를 마지막에 놓은 이유는… 리뷰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주렁주렁님의 리뷰를 읽고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주인공과 김지훈을 이해하려고 저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울증을 앓았고, 상담실에 갔었기 때문입니다.

 

(1) 상담실을 뛰쳐나오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행동이 줄어듭니다. 도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되겠죠. 안전한 방 안에 자신을 가두고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상담실에 갔습니다. 상담사들은 저한테 할 수 있다고 변하라고 이야기했어요.

10년 뒤 꿈을 써보고 인생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 날도 상담실에서 다 같이 ‘꿈꾸는 다락방’을 읽었습니다. 긍정적 마음으로 생생하게 꿈꾸면 성공할 수 있다는 책이죠. 돌아가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한 문장씩 말해보는 시간이었어요. 한 명 한 명 순서는 돌아갔고요. 결국 제 순서가 왔습니다.

저는 “없다”고 답했죠. 한 문장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다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독서치료사 선생님이 너는 너무 부정적이고 네 생각만 옳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던가… 사실 잘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제가 그 날 상담실을 왜 뛰쳐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그 후로 상담실이 싫어졌다는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모순을 느꼈습니다. 분명 현실은 힘든 곳이었어요.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죠. 굴러가질 않았어요.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방’ 안에서 나가고도 싶었습니다. 우물 밖으로 나가서 푸른 하늘을 날아보고도 싶었어요. 저는 새가 아니라 물고기인데도 말이죠.

 

(2) 새와 물고기, 그 사이… 개구리가 되자.

하지만 저는 soha님의 또 다른 풀이법을 읽으면서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장했다고, 아니 진화했다고 느꼈어요. 물고기도 새도 아닌… 개구리, 그러니까 양서류로 진화한 거죠.

제가 어제 임춘성 교수님이 쓴 [거리두기]를 읽었는데요.

그 분은 무력하기만 한 ‘나’도 아니고, 무섭기만 한 ‘세상’도 아닌

그 ‘사이’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꿈꾸면 된다는 환상으로 도피하면 크게 배신당할 겁니다.

물론 세상 탓을 해도 됩니다. 시스템은 우리를 휘두릅니다. 학교는 우리를 줄 세우고, 유전자와 환경은 내 IQ를 결정하고 성적을 결정해버리지 않습니까. 수학자도 예술가도 몇몇 성공한 천재를 제외하면 먹고 살기 힘들고요.

하지만 거기에 안주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천재나 영웅은 아닐지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테니까요. 꿈을 잃은 회사원이냐, 꿈꾸지만 가난한 전업작가냐… 흑과 백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야근에 시달리면서 글을 쓰는 작가님들도 있으니까요.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3) 나는 어떻게 야근을 줄이고 글을 쓰게 되었나.

저는 통신병이지만, 행정병일도 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와서 소설을 쓰지 못했죠. 저 역시 초과근로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엑셀 달인도 되어보고, 타자수도 늘려보고, 체크리스트랑 메뉴얼도 만들어봤는데요. 확실히 야근이 줄긴 했습니다만… 글 쓸 시간은 늘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는 한 방에 해결되었는데요. 새 대대장님이 오셨거든요. 여러 병사들이 고충을 토로했고 결국 ‘야근 금지’령을 선포하셨습니다. “야근을 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며 강경하게 개혁을 추진하셨죠. 제가 하던 일을 간부님들이 나눠서 해주시기 시작했고요. 저에게 일을 떠넘기던 선임이 가고, 후임이 들어오기도 했고요…

시간이 여유로워진 저는 [짝사랑 문제]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야근을 하면 휴가를 줬었는데, 이제 휴가도 사라져서 병장들은 불만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늘 그런 거죠.)

 

그런 식으로 시스템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 역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힘들면 물 속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용기 내서 물 밖으로 나와보기도 하고요. 개구리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리뷰에서 하고 싶었던 말도 그런 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신 soha님께도 감사를 드리죠.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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