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역겨운 글을 한 편 올렸습니다.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도련, 18년 4월, 댓글2, 읽음: 156

 

* 주의사항: 위 영상에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수다 카테고리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다가, 아무리 수다라고 하여도 그 내용이 결국…

“내가! 이런 글을! 올렸는데 말이야! 엉?! 내가! 이래서 이래서 결국 이런 글을! 올리는 짓까지 했다고!!”

…로 시작해 끝나면 그것은 이미 수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글홍보 카테고리로 올립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새벽 4시 37분은 자고로 사람이 헛소리를 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주옥과 같은 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도련아. 남자들은 피부가 더러우면 몸에 나쁜 병이 있는 줄 안단다.”

“도련아. 네가 좋은 남자를 만나 몸을 의탁하기 전까지는 내가 너를 책임지고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

“한국 민족이 왜 결과적으로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났는지 아느냐. 그건 말이다, 우리 민족 여자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줘서 그런 거란다. 아무리 씨를 말리고 또 말리려고 해도 아이를 워낙 많이 낳아버리니까 방법이 없는 거지! (잠시 호탕한 웃음소리) 요새 여자들은 아이를 많이 안 낳는다고 하던데, 그게 다 애국과 연결된다는 것을 도련이 너는 잘 알아야 한다.”

 

숨쉬듯 들어온 더 많은 헛소리가 있습니다만 속이 메슥거리니 생략하도록 하지요.

그나마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여성혐오적인 소리를 덜 들어온 편임에도 이러합니다.

내가 왜 이 땅에서 여성의 성기가 달려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끓던 차에 SNS상에서 쏟아지는 각종 혐오 발언을 끝없이 접하다보면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기관총을 들고 “으아아아! 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하며 분노를 발사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혐오를 마음속에 깊이 내재화하며 차별에 동조할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은, 참다 참다 분노와 모멸감이 임계치에 뻥 하고 이르렀을 때 역겨운 소설을 한 편 써서 “제가 느낀 역겨움으을~ 당신네도 느껴보는 편이 좋을 터입니다아~.” 뭐 이러한 기분으로 던져 던져 휙 던져 사람들 속에 투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쓸 때는 역겨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쓴 글을 어떻게 하면 잘 다듬을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었고, 크게 역겨움을 느낄 만한 내용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제 올린 이 글은 다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글을 쓰면서 고통과 역겨움과 분노와 괴로움을 호소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불행하게도 저는 역겨움을 상쇄해보겠다고 오히려 더 역겨움을 증폭시키는 다음과 같은 장치를 넣어 버렸습니다.

1. 우웅, 나와 비슷한 부분을 좀 집어넣으면 역겨움이 상쇄되지 않을까?

저는 실제로 모 시민 단체에서 보조 간사로 일한 적이 있으며 (미리 말해두지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닙니다.) 상기 서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그 기억을 집어넣어보았습니다. 글쓰는 과정이 그 순간 두 배로 더 역겨워지더라고요.

2. 우웅, 곤란하네. 기념일을 집어넣으면 그래도 나름대로 뜻깊어지지 않을까?

비실재 청소년이라지만 한 사람의 운명이 비참해지는 날에 자기 생일 따위를 집어넣어봤자 기분만 묘해질 따름입니다.

3. 우웅, 정말 역겨워졌네. 어떻게 초고만 써서 빨리 올리고 나면 기분이 그나마 상큼해지지 않을까?

절대 저런 짓을 하지 마십시오. 퇴고를 안 했다는 사실만으로 새벽에 잠이 깨서 이런 뻘글을 올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하여, 저는 새벽에 일어나 Caravan Palace의 Lone  Digger를 배경으로 깔고는 홍보를 하려는 글인지 읽으려는 사람도 쫓아내려는 글인지 모를 글을 적으며 혼자 수다를 떠는 것입니다!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뭉개지고 장기가 있어서는 안 될 곳으로 튀어나와 산소를 직접 호흡하고 햇빛을 맞이하는…….

뭐, 그러한 글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쓴 글 중 가장 역겹고 가장 공포스럽네요.

 

PS.

https://www.rainbowconnection.kr/

쓸데없는 정보입니다만, 글의 기원은 위의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는 논문과 읽을거리였습니다.

 

이 영상도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편견이란 참으로 가혹합니다.

여담이지만 그 어떤 대의나 신념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실재하는 개인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관철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이든 국가든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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