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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기

분류: 수다, 글쓴이: stelo, 18년 3월, 댓글3, 읽음: 48

안녕하세요. [짝사랑 문제]를 쓰는 Stelo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오늘의 문장과 상관 없이 털어놓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1.

[짝사랑 문제]를 쓰면서 많은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 두 개로 요약하기에는 하나하나 중요한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굳이 요약한다면 “힘겨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그 생각들이 하나하나 아픈 기억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은이에게도 세영이에게도 상처가 있고, 지금도 많이 아픕니다. 고통도 결국 익숙해지고 무뎌지지만, 때때로 너무 거대해서 무력한듯 느껴질 때도 있어요. 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힘들어도 참을 수 있어요. 참으라고 배워왔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아픔일지도 몰라요.

그 아픔들을 혼자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가장 친하고 소중한 사람에게조차 말하지 못하죠.

이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네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거라고. 내게 말해보라고 다 들어준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2.

저는 사랑을 다룬 이야기를 보면서 이해가 안되는 게 있었어요. 상처를 가진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치유하고 구원한다는 류의 서사가 있죠. 그 반대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들에서는… 우리를 상처입히는 건 세상이에요. 구원자들은 좋은 사람들이죠. 주인공을 상처입히더라도 보통 ‘오해’나 ‘라이벌의 계략’같은 식이에요.

하지만 제가 겪은 현실은 좀 달랐어요. 가장 믿고 좋아했던 사람이 나를 상처입혔거든요. 제가 그 상처를 말했을 때… 항상 모두를 잃었어요. 저를 이해하지 못했죠.

배신이라고 할 것도 없었어요. 제가 섣불리 누군가를 좋아하고 기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백마 탄 왕자는 없었다는 말이죠. 나를 이해해주고 구원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3.

[12회 필담]에서 세영이는 예은이에게 상처를 줘요.

 

4.

신병교육대에 있을 때 소대장님과 상담을 하다가 운 적이 있어요.

“너는 계속 강한 척 한다. 힘든데 힘들다고 말을 안 한다. 너 아픈 거다. 내가 보기에 전혀 안 괜찮다.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시더니 “자기가 잘 알고 존경하는 분”이라면서 병영 상담관님에게 데려가셨어요.

저는 사실 두려웠어요. 저는 상담을 싫어해요. 고등학교 때 ‘자살 위험군’이라면서 위클래스에 갔었어요. 집단 상담이라 다른 애들도 있었는데, 자꾸 개인적인 질문을 했어요. 남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시켜서 거부감을 느꼈어요.

고등학교 때 그 상담사님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랑 [꿈꾸는 다락방]을 읽히면서 네가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게 문제라고 하셨어요. 긍정적으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요.

다시 군대로 돌아와서, 그 상담관님은 좋은 분이었어요.

저는 여러 이야기를 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신이야기.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 채식주의자가 된 이야기. 중3때 죽고 싶었는데, 왜 지금은 살아가려 하는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이야기했어요.

저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서 살기로 했어요. 제가 죽으면 아무도 구할 수 없으니까.

상담관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그렇게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고 어려움들도 이겨나가는 용기가 대단한 거라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히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죠. 군대에서 신념 때문에 힘들 일이 많겠지만, 자살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하셨어요.

“삶에 확실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 후로 그 분을 다시 본 적은 없어요. 저는 신교대를 떠나 통신병이 되었고 300일도 넘게 지났죠.

 

5.

저는 채식주의자인데 군대에서 고기를 먹고 있어요. 처음 군대에 들어왔을 때는 고기를 안 먹고 1주일을 버텼어요. 그랬더니 상담을 받게 되었죠. 소대장님, 중대장님, 상담관 세 분을 만나면서요. 방금 이야기했던 한 분을 제외하고는 다들 채식주의에 부정적이셨어요.

소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 이상한 채식주의자들 책 읽었구나?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래.” 고기를 안 먹으면 훈련을 버티지 못할 거라 했죠. 군대는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고 너에게만 채식 급식을 해줄 수는 없다.

저는 고기를 먹겠다고 말했어요.

제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아는 동기나 선임이 몇몇 있어요. “채식주의자라면서 고기를 왜 먹어? 신념이면 안 먹어야지.” 위선이라는 거죠.

저는 급식을 먹다가 고기가 나오면 반만 먹어요. 양념을 잘 씻어서 짬타이거라 부르는 고양이에게 갖다주죠.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인간이 닭을 죽여서 고양이에게 주는 건 위선일까요? 귀여운 고양이만 불쌍하고 닭은 안 불쌍하다는 걸까요?

군대에서도 티비를 봐요. 하루는 요즘 유행하는 ‘먹방’이 나왔어요. 백종원씨가 고기를 굽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역겹다는 채식주의자들도 있지만, 저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 날은 특수부위 편이었던 모양이에요. 백종원씨가 어떤 부위를 가리키면서 이게 뭔지 아시냐고 했어요. “암뽕”이라고 돼지의 자궁이라고 했어요.

저는 돼지가 자궁이 있고 새끼를 낳는다는 걸 생각했어요. 그 새끼들이 어른이 되고 고기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백종원씨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방송에 나온 연예인듯이 맛있겠다면서 탄성을 지르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생활관에서 같이 티비를 보고 있던 애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숨겨왔죠.

 

저는 군대에 오고나서부터 언젠가부터 육식에 또 익숙해져가고 있어요. 급식을 먹다가 고기가 맛있다고 생각해요. 동물이 죽어야 이 고기가 만들어진 사실을 잊어버리죠. 이따금씩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제가 끔찍하게 느껴져요.

 

저는 휴가를 나오면 채식을 해요. 어제 지인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일관성을 좀 지키시라”고요. 군대에서 고기를 먹으니까, 여기서도 먹어도 되지 않냐고요.

휴가를 나왔는데 아버지가 닭갈비집에 데려가셨던 적이 있어요. 제가 당황하니까 “너 아직도 고기 안 먹냐?”고 하셨죠. 저는 그냥 먹었어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면서요.

오늘은 두부 볶음밥을 먹을 거에요. 채식이 맛 없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요리만 할 줄 알면 맛있는 게 많아요. 채식을 하면서 저는 맛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동생이 오빠는 채식주의자면서 왜 깻잎을 싫어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고기를 안 먹는 거지 채식은 아니지 않냐고요. 생각해보면 저는 채소를 좋아하지 않아요. 두부 볶음밥은 좋아해요. 카레도 좋아하고요.

제 동생은 당연하지만 고기를 먹어요. 저는 동생을 경멸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무리 기억을 찾아봐도 없어요. 제 동생은 좋은 사람이거든요.

 

6.

생각해보면 처음 채식주의자가 된 건 동물이 불쌍해서가 아니었어요. 저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책도 읽었고,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고기를 먹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냥 고기를 먹고 살았어요. 고기는 맛있으니까.

어느 날 동생이 설거지 당번인데 설거지를 안 했어요. 그때 동생은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시기였죠. 도저히 집안일을 못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건 핑계라고 사람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동생이 형도 채식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안 하지 않느냐고 했죠. 저희는 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거든요. 저는 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음 날부터 채식을 시작했어요.

 

 

7.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예전에는 트위터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채식주의자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 후로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8.

[짝사랑 문제]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소설은 아니에요. 세영이도 예은이도 고기를 먹는 장면이 나오죠. 쓰면서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하지만 두 사람 다 좋은 사람이고,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어쨌든 [짝사랑 문제]도 결국 진심을 숨기고 사느라 힘들어 하는 사람들 이야기에요. 수학을 좋아하는 것도, 시를 읽는 것도 제 한 면모에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민감한 것도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 해야할까요?

 

9.

전에 황현산 평론가의 책 [밤이 선생이다]에 나오는 ‘현재의 두께’라는 말을 이야기했었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몇 년 전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도 현재에요.

하지만 현재의 고통조차 ‘남의 일’인 사람들도 있어요.

10.

사실 모르는 게 당연해요. 예은이는 자기의 아픔을 숨기고 있으니까요.

11.

추리는 비밀을 숨기는 사람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어요. [짝사랑 문제]가 추리 소설인 이유는 그래서에요. 하지만 슬픈 진실을 밝혀내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결국 사랑 이야기거든요. 힘겨운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에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12.

갑자기 왜 이런 글을 썼을까요. 힘들어서 그랬어요. 옛날 기억들이 떠올랐거든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브릿G 말고는 쓸 때가 없었어요.

왜 이 긴 글을 다 읽어주셨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의 상처에 대해 듣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나를 힘들게 하죠. 예은이가 아픔을 숨기는 이유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에요.

저도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라요.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도 하고 싶네요.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13.

종현 [Lonely (Feat. 태연)] 2017. 4. 24.

나는 혼자 있는 것만 같아요
지친 널 볼 때면 내가 너에게
혹시 짐이 될까 많이 버거울까
Baby I’m so lonely, so lonely
나도 혼자 있는 것만 같아요
그래도 너에게 티 내기 싫어
나는 혼자 참는 게 더 익숙해
날 이해해줘

14.

그게 너고 또 다른 그 또한 너라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어.

널 무지 좋아하고 사랑하고 토닥여 주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었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렇게 기회를 잃고 후회하고 있는 내가 너무 밉다. 너무 안타깝고 아깝고 소중한 우리 종현이.

전화해서 이름 부르면 당장이라도 하이톤으로 으응! 할 것 같은 우리 종현이 많이 보고 싶어. 누나가 많이 못 안아줘서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lonely’ 누나 생각하며 썼다는 그 과정을 다 기억해. 우린 비슷하잖아. 닮았고. 그 느낌들을 알잖아. 내 인생에 제일 특이하고 멋지고 훌륭한 아티스트 김종현 너무 많이 보고 싶고 손잡아 주고 싶다. 종현아 넌 최고야. 너무 수고했어. 외롭지 않게 해줄게.

15.

태연 ‘겨울나무 (I’m all ears)’ 2018. 1. 12.

어제보다 많이 지쳐 보이는 그대의 표정

만져 보곤 알죠 바람이 또 아프게 했나요

왜 아무 말 못해요 좀 솔직해져도 돼요

내게 전부 말해봐요 밤을 새도 괜찮아요

차갑던 그대 하루가 나로 인해 녹을 수 있게요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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