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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엄마아빠 재판소

분류: 책, 글쓴이: 달바라기, 18년 1월, 읽음: 106

두 달 전에 쓰고 자게에 올리려다 깜빡 잊고 있었네요. 쓴 직후에 한 달 동안 단절의 요새에 들어갔다보니 그만..

조제 님이 쓰신 동화 ‘엄마아빠 재판소’의 리뷰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싸움을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는 곳에서는요. 물론 가끔 목소리가 높이질 때도 있었지만, 싸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저희 부부는 연애시절부터 아이가 하나 있는 지금까지 싸움을 한 적이 없습니다. 가끔 삐지거나 짜증낼 때는 있지만, 역시 싸우지는 않아요.

그래서 읽기 전에 조금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엄마아빠의 싸움을 지켜보는 은수의 감정에는 쉽게 다가서지 못했어요. 이해는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니까요. 부모의 싸움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겐 매우 격렬한 경험일 수 있는 만큼, 그런 경험이 없다면 아무래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바로 은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며, 엄마 아빠가 딴소리를 할 때 단상을 흔들어주는 재판소의 사람들의 존재입니다.

전 어릴 때 관심사가 또래들과는 좀 달랐어요. 스포츠나 연예인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고, 특정 분야의 책이나 영화 같은 취미에만 몰입했어요. 그래서 친구도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친구가 없는 건 전혀 아쉽지 않았는데, 집에서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건 언제나 섭섭했어요. 용돈을 모아 책을 사고 초딩이 알바를 해서 망원경을 사서 별을 봤지만, 가족 아무도 같이 해주지 않았어요. 체스에 빠졌을 땐 혼자 흑백을 바꿔가며 며칠이나 게임을 이어가는 짓을 했을 정도죠. 같이 하자고 해도, 다들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았어요. 가족 중 누구도 제가 어떤 책과 영화를 읽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느 별을 보고 왔는지 묻지 않았죠. 가족식탁에서 듣는 이야기라고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사정 뿐이었고요. 전 그렇게 시간을 혼자 담아두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지금, 저는 제 부모님과 형제에게 사생활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비밀도 많은 편입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저를 볼 때마다 대화 좀 하자고 하시지만, 전 이미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심지어 제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이나, 그 중엔 출판된 것이 있다든가 공모전에 입상한게 있다는 것도 부모님껜 얘기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래요.

그래서 은수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엄마아빠가 은수를 보지 않고 자기들만 얘기만 할 때 단상을 흔들어주는 존재들가 많이 정겹게 느껴졌어요. 사실 부모와 자식사이에 만들어지는 벽과 상처는 부부싸움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거고, 벽을 허물고 상처를 아물게하는 건 재판소 사람들 같은 행동과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게 이 이야기에서 전달하고자한 무언가는 아니겠죠. 부모의 싸움으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었던 어른들), 또는 그렇게 아이에게 상처를 준 부모들을 위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란 건 주사위처럼 다른 면이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글을 읽고 쓰는 재미가 있는거고요.

잘 읽었습니다.

달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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