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ㅡ응 그딴거 없어. 그러니까 또 다시 해보자. 하는 소설
완결 기념 홍보 갑니다…
마왕: “나는 세계를 지배할 위대한—!”
자존심 덩어리, 자존심의 화신. 그리고… 길치.
매번 하는 배려와 선의를 “우연이다”, “핑계다”, “입막음용이다”로 포장해왔지만, 그 포장지가 한 겹씩 벗겨질수록 드러나는 건 의외로 무심하게 다정하고 책임감 있는 얼굴.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마법사를 잡아채서 구하고 나서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앞으로 걸어간다.
마왕이 된 이유는 그냥 ‘우연히 마족이 발생한 지역 쪽으로 걸어가서’.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서.’
그리고 그의 진짜 정체는…
형상: “근원의 공백으로 와라.”
창세 신화 속 ‘하나’. 심고 거두는 반복을 수억 번 지켜보며 항상 이겨온 존재이자, 이 소설 전체의 숨은 설계자.
압도적인 힘과 정보량을 가진 채로 등장하지만, 정작 그 모든 설계의 동기는…
용사: “이게 협력이라는 건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 기사들 중 강제 차출된 파티의 리더. 대사도, 얼굴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증언 속에서만 조각조각 그려지다가, 그 조각들이 결국 “겁먹고 도망쳤었지만 다시 돌아왔고 물러서지 않았다”는 하나의 진실로 수렴한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정확히는 할 수 없는 채) 형상에게 보존되어 있을 뿐인데, 그 “숨만 쉬고 있음”이 세계 존속의 유일한 기둥인, 그 어느 용사보다 가장 평화롭고 꾸준한 방법으로 세계를 지키는 역할.
사제: “어차피 ‘신’이라는 건 그냥 상징이에요. 존재하지 않아요.”
‘신을 믿지 않는 사제’이자, 이 소설의 실질적인 탐정 역할. “학자”라는 마왕의 무신경한 호칭을 처음엔 정정하려 애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변화 자체가 이 캐릭터의 성장 곡선을 보여준다. 일반적 클리셰에서 ‘사제’는 나이가 많거나 뭔가 현자이거나 성녀급 여사제지만, 이 사제는 그저 파티 최연소 나이로 전쟁통에 잘 살아남아 있다는 이유로 강제 발탁된 사제.
그리고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던 신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여검사: “이거 놔! 저 놈은 지금 죽여야 된다고!”
다혈질. 단순무식. 이 여정에서 가장 ‘인간’의 자리를 지키며 ‘인간’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 마왕에게 마을을 잃고 복수를 위해 이 파티원들 중 유일하게 ‘자원’했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거절당하고 겨우 들어온다. 정작 첫 야영날 기습에 실패한 뒤로 계속 “원래 서 있어야 할 자리”와 지금 서 있는 자리 사이에서 흔들린다.
치유사: “남을 치유하려면 내가 먼저 지치거나 다치지 않아야 하니까.”
근육질 힐러. 덩치는 파티에서 가장 크지만 태도는 가장 안정적인, 사실상 이 파티의 정서적 지주. 마왕의 부하와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결국 먼저 손을 내밀고, 아픈 마법사를 업고, 쓰러진 사람들의 상태를 가장 먼저 살핀다. 겉보기엔 그냥 힘만 세 보이지만 “무서울 것 같아, 나중에 깨어나서 시간이 이만큼 지났다는 걸 알게 되면” 같은 대사에서 드러나듯, 직업적 통찰이 몸에 밴 섬세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마법사: “사실 난 그 녀석이랑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
파티의 유용한 생활 아이템(?)이자,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매번 핵심을 찌르거나 폭탄발언인 캐릭터. “그 정도 힘이 있었으면 내가 세계 정복을 했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부터, 마왕의 정체를 처음으로 언어화하는 결정적 추론까지, 마법사의 가벼운 말투는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날카로운 관찰력의 위장이다. 용사와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무렇지 않게 밝히면서도 “뭐, 말 안 했으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태도 안에는, 정작 누구보다 깊은 이해와 배려가 숨어 있다.
눈치 빠른 부하: “저는 아직 아무 말도—”
하고 싶은 말은 늘 많지만 마왕이 먼저 끊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삼키게 되는 캐릭터. 그러나 그 잘린 문장들 속에 이 소설의 가장 예리한 통찰(형상의 설계 가능성, 마왕의 변화,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담겨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우직한 부하: “…마족은 인간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평소엔 눈치 없이 정면충돌하고, 실수로 탁본을 밟아 찢기도 하는 다소 어리숙한 인물. 그러나 그 실수가 오히려 지도를 완성시키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무심코 던진 고향 이야기가 인간과 마족의 공통 기원이라는 이 소설 최대의 (독자는 아는) 반전을 여는 열쇠가 된다.
나도 없고 이유도 없다는 걸 다 알아버렸는데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냥 웃으면서 한 번 더 해보겠다는 소설.
모든 ‘공백’이 단 하나의 존재를 가리키는 소설.
읽으면서 계속 0번 프롤로그로 돌아가게 만드는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