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올리는 「호프」 리뷰 ㅠㅡㅠ — SF는 어디로 갔나
영화 세 편을 하루에 몰아서 보는 건 꽤 힘든 일입니다.
「호프」가 심야 상영이기도 했으니 제 감상이 아주 공정했다고 자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날 처음 본 「오디세이」가 압도적이었고, 이어서 본 「스파이더맨」도 정말 좋았습니다. 두 편에서 기분 좋게 얻어맞고 마지막 영화관에 들어간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나홍진 감독의 팬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호프」를 응원하면서 봤습니다. 놓치는 게 있으면 제가 피곤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이상한 장면이 나와도 ‘나홍진 감독인데, 뒤에서 뭔가 하겠지’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추격자」와 특히 「곡성」을 보고 나면 이 감독은 자기가 들어간 장르를 대충 만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오컬트는 정체를 보여주는 순간 유치해지거나 힘이 빠지기 쉬운데, 「곡성」은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러니까 숙련된 셰프가 새 재료를 잡았을 때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이번에는 SF구나. 그럼 또 얼마나 공부해서 이상한 걸 만들어놓았을까.
이 글에서 내용을 가지고 채점표를 들 생각은 없습니다. 좋아하던 셰프의 새 요리를 잔뜩 기대하고 먹었다가, 식당을 나와서도 대체 내가 뭘 먹은 건지 계속 생각하게 된 손님의 하소연으로 들어주세요.
처음 보고 바로 싫었던 영화는 아닙니다. 잘 만든 장면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며칠 동안 판단이 안 섰습니다. 그런데 장면을 걷어내고 남은 설정들을 하나씩 다시 생각하니, 그 설정들이 영화의 장점을 너무 많이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지 4일이 지난 지금
그런데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저는 「호프」를 좋게 보지 못했습니다.
많이 지적받는 이상한 대사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 대사들이 좋았습니다. 호포 사람들은 말이 자꾸 새고, 필요한 답은 안 하고, 중요한 순간에도 엉뚱한 말을 끼워 넣습니다. 감정이 앞서면 말까지 흐트러집니다.
실제 사람도 그렇습니다. 위험한 일이 터졌다고 갑자기 모두가 잘 쓴 영화 대사처럼 말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이상한 대사들이 세팅된 극의 냄새를 걷어내고 현장을 살린다고 봤습니다.
호포 사람들의 행동도 비슷하게 봤습니다. 괴물을 만나도 침착하게 상황을 계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이 당하면 눈이 돌아가고, 분노하면 승산도 따지지 않은 채 덤벼듭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머리를 굴려 살아남은 사람은 임현식 배우가 맡은 인물 정도였습니다.
좋습니다.
나홍진 감독 눈에 우리의 이전 세대가 그렇게 보였다면 그것도 이 영화의 얼굴입니다. 말도 행동도 이상하고 나사도 몇 개 빠져 있는데, 이상하게 펄펄 살아 있습니다. 저는 그 활력이 좋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따라갔습니다.
제가 정말 못 따라간 건 괴물이었습니다.
영화 대부분에서 외계인은 사람을 사냥하고 죽입니다.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말하지만 관객에게는 그 말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외계인이 왜 인간을 사냥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지구에 왔는지, 무슨 문명에서 왔는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꼭 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괴물은 괴물인 채로 있어도 됩니다.
호포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눈앞에서 가족과 이웃을 죽이는 존재가 왜 그러는지 알아낼 여유도 없고,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살아남고, 도망치고, 잡히면 싸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보고 있었습니다.
외계인들은 자기들끼리 계속 뭔가를 주고받습니다. 저는 그게 그대로 끝까지 갔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영영 모른 채로.
물론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의 말과 사정을 조금씩 열어줍니다. 인간에게 붙어 있던 관객의 시선을 외계인에게 옮기려는 장치였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문이 열릴수록 외계인에게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설명을 못 들어서가 아닙니다. 애초에 그 설명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러닝타임 대부분에서 인간을 사냥하던 괴물에게 마지막 몇 분이 되자 가족과 죽은 아이와 신과 희망이 한꺼번에 실립니다.
그리고 ‘호프’가 나옵니다.
여기서 저는 벙쪘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을 이제야 설명해줘서 벙찐 게 아닙니다.
애초에 저는 그 설명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러닝타임 대부분을 침묵한 채 인간을 사냥하던 괴물이 마지막 몇 분에 자기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고, 영화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슬픔과 믿음과 희망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저 같은 초보가 자주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작품 안에 충분히 심지 못한 말을 마지막 몇 페이지에 등장인물을 세워놓고 몰아서 시키는 겁니다. 작가 머릿속에서는 처음부터 있었으니 모든 것이 연결됩니다. 읽는 사람 입에서는 한마디가 나옵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호프」에서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갓 졸업한 신인 감독이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입니다. 「추격자」에서 추적 스릴러를 그렇게 만들고, 「곡성」에서 오컬트를 그렇게 물고 뜯었던 사람이 SF를 들고 왔습니다.
그래서 더 당황했습니다.
이번에는 공부한 흔적이 안 보였습니다.
과학 고증을 얼마나 했느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외계 생명과 문명의 차이가 사건을 어떻게 뒤틀고, 압도적인 기술 격차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인간과의 충돌을 어떻게 바꾸는지, 저는 이 셰프가 그런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접시 위에는 외계인과 우주선이 올라와 있는데, 먹어보니 굳이 둘 다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외계인이어야 했나?
외계인을 숲이나 동굴에 사는 정체불명의 괴물로 바꿔도 이야기는 거의 그대로 돌아갑니다. 인간이 괴물의 아이를 죽이고, 괴물이 복수하고, 양쪽이 가족을 잃고, 괴물에게도 숭배하는 존재가 있으며, 마지막에 그 존재가 죽고 아이에게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생기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우주를 걷어냈는데도 이야기가 멀쩡히 서 있습니다.
그러면 우주선은 왜 띄웠습니까.
저는 「호프」가 대충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괴할 정도로 공이 많이 들어간 영화입니다. 사람도, 호포라는 공간도, 이상한 대사도, 폭력도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SF만 게으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함선이 떨어집니다.
외계인에게는 중요한 함선이고, 그 안의 존재가 신이라면 더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그건 외계인 사정입니다.
인간인 저는 알 바가 없습니다.
인간이 먼저 외계인의 아이를 죽였고, 그들도 슬퍼하고 복수했다는 것까지는 이해합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한 순간부터 그들의 희망까지 제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함선이 왜 떨어지는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명이 없어서 답답했던 게 아닙니다.
떨어지든 말든 인간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제가 그 함선을 걱정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함선이 떨어지고, 거기에 외계인의 신과 죽은 아이와 ‘호프’가 한꺼번에 실립니다.
저는 왜 함선이 떨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왜 제가 그 함선이 떨어지는 것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번엔 첫 번째보다 더 크게 벙쪘습니다.
묘하게도 저는 그날 「오디세이」를 먼저 봤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입니다. 원전이라면 신이 내려와 인간의 일에 직접 손을 대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의 서사입니다.
그런데 그날 「오디세이」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몇 시간 뒤 「호프」에서 만났습니다.
엄밀한 극작술 용어로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호프」의 신이 갑자기 내려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 눈에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대신 의미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신과 같은 존재를 태운 거대한 기계가 정말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Deus ex machina.
진짜 신이 기계에서 떨어졌습니다.
하필 그날 본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오디세이」였습니다.
그리고 미래와 우주와 외계 문명을 들고 온 「호프」를 보면서 저는 기원전까지 돌아갔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SF를 만든다고 해서 우주까지 따라갔는데, 한국영화의 SF를 기원전으로 돌려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