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 뭐해요?” “숨셔” – 숨만 쉬는 것으로 세계를 구하는 용사님이 있는 소설
전투 장면을 기대하고 클릭하신다면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마법 대결도, 긴박한 액션도 없습니다. 심지어 용사에게 반한 마왕이 용사를 구하러 가는 로맨스(…) 같은 것도 아닙니다.
이 소설은 검 대신 흐려진 벽화를, 마법 대신 찢어진 탁본을 무기로 삼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이 소설이 프롤로그부터 언급한 단 한 존재가 있습니다.
어차피 세계는 멸망합니다. 마왕이 죽든, 용사가 죽고 인간이 멸망하든(사실 마족이 멸망해도 세계는 끝나지만).
그래도 이 소설 내에서 멸망하진 않습니다 ^^;; 그거 막으러 가는 중이라…
[이 소설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읽다 보면 이상한 패턴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이 소설엔 유난히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기록의 공백 — 어디를 가더라도 모든 부분이 온전하게 보존된 신화는 없습니다. 사원의 벽화는 흐려서 절반만 읽히고, 신전의 두루마리는 습기에 젖어 짓무르고, 오두막의 책들은 손을 대는 순간 부서질 지경입니다. 완전한 이야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모든 기록은 어딘가 이가 빠진 채로만 발견됩니다.
기록되지 않은 이유의 공백 — 왜 ‘다른 하나’가 뛰어들었는지, 왜 인간과 마족이 적이 되었는지, “이유는 기록에 없다. 찾을 수가 없다”는 문장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용사의 공백 — 이 소설은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용사를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용사는 숨 쉬는 것으로 세계를 지키는 중이죠 ㅋㅋㅋㅋ 그의 빈자리는 다른 이들의 기억으로만 메꿔집니다.
마왕의 기억의 공백 — 마왕은 자신이 마왕이 되기 이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마왕과 마족에 대한 기록 자체의 공백 — 심지어 신들의 신전에도, 인간의 사원에도, 마왕이나 마족을 서술한 글자는 거의 없습니다.
전투와 전쟁의 공백 — 전쟁은 마왕이 벌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이라는 배경 자체가 이 소설에서는 ‘서술되지 않은 사실’로만 존재하고, 그 대신 전쟁이 남긴 흔적만 보여줍니다. 피난행렬, 부서진 사원. 제대로 된 전투는 나오지 않습니다.
전쟁이 만든 다음 세대의 공백 — 그 어느 마을에도, 자비의 여신 신전에도, 피난행렬에도, 젊은이가 없습니다.
지도 위의 공백 — ‘근원의 공백’은 실제로 지도 위에 표시가 없습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캐릭터 이름의 공백 — 사제, 마법사, 치유사, 여검사, 용사, 마왕, 부하들. 그들은 단 한 번도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모든 ‘공백’이라는 화살표가 단 하나를 가리키는 소설]
이 목록을 늘어놓고 보면 뭔가 이상한 낌새가 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공백”들이 우연히 나열된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의 원인—’근원의 공백’—에서 뻗어 나온 증상이라는 확신.
이 소설은 그 증상들을 하나씩 진찰해가며, 결국 병의 근원, 즉 사라진 그 ‘다른 하나’에게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 ‘다른 하나’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파티와 함께 길을 걸어가는 중이죠.
그리고 이 소설은, 사실 불교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고, 존재론적 삶의 긍정 메시지도 담고 있으며, 게임을 놓지 못하고 수많은 엔딩을 보고 싶어하는 게이머의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어떻게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재미있게만 봐 주신다면.
마왕과 용사가 나오는 판타지 좋아하는 분
뭔가 다른 소재의 추리소설 좋아하는 분
그 추리의 단서를 고고학 풍으로 조사해 나가는 걸 보고 싶은 분
다양한 관점의 메시지 해석을 좋아하는 분
무거운 작품 싫고 간간히 나오는 명랑개그 좋아하는 분
전체연령가
이면 봐 주세요.
…아니 안 그래도 좀 봐주세요. 제발… 덧글… 도파민…. ㅎ…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