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혐오표현, 그리고 대화를 계속하는 일

분류: 수다, 글쓴이: 영원한밤, 9시간 전, 댓글7, 읽음: 136

오전 일과 중 잠시 시간을 내어 브릿G에 들렸다가, 멍하니 모니터만 보다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품보다 날 것의 의견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뜨거운 자유게시판이라 활기가 돈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어제의 흐름을 보면 논쟁과 의견 교환과는 별개로 우려되는 부분도 있어, 감히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게시판을 읽으니 블라인드된 글이 있었고, 다른 글을 통해 신고의 이유도 알 수 있었네요.

화두는 ‘혐오 발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문제의 소재는 밝혀졌고 오해도 풀린 듯 하지만, 사실 ‘혐오 발언’의 판단은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리포트」(2019)는 ‘혐오 표현’을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하여 ① 모욕·비하·멸시·위협하거나, ② 차별·폭력을 선전·선동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정 표현에 대해 위 정의에 부합하는가를 물었을 때, 사회구성원 전체의 견해가 늘 일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 객관적으로 ‘혐오 표현’ 여부가 가려지더라도, 일부 혐오 표현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어디까지 제한할지는 또 다른 층위의 문제입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이 글은 오히려 이쪽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미 블라인드된 글 중 특정 표현이 왜 혐오 표현인지 논리적으로 설명된 글이 있었고, 해당 표현을 하신 작성자도 수긍하는 입장을 표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이후의 논의는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가’가 주된 논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혐오 표현을 어디까지 수용할지 여부까지 논의를 확장하면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 개개인이 중요하게 보는 판단 요소의 차이, 집단 내부자/외부자 여부, 발언자와의 관계, 세대 차이를 포함한 사회문화적 배경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개인의 가치관이 상당히 작용하는데,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여 직접적인 폭력이나 차별 선동이 없는 한 불쾌한 의견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평등권과 차별 방지를 중시하는 입장은 특정 표현이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특정 집단의 참여를 위축시키는 효과까지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표현의 수용은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공통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 기준점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제가 전공하였거나 전문 분야는 아니고, 이 또한 제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지만 업무 처리 과정에서 제가 알게 된 내용을 토대로 가급적 객관적으로 소개해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2012년 10월 모로코 라바트에서 회의를 열어 전문가들이 채택한 ‘라바트 행동계획’이 있습니다. 유엔 조약이나 유엔 인권이사회의 구속력 있는 결의가 아니지만 유엔 인권최고대표 보고서의 부록으로 첨부되어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것으로, 권위있는 해석 지침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입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통상 ‘자유권규약’으로 불리는 규약의 두 조항 사이의 긴장에서 그 출발점을 두고 있습니다.

자유권규약 제19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법률에 규정되고 타인의 권리·명예 보호 등에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도록 합니다. 반면, 제20조 제2항은 ‘국가적·인종적·종교적 증오의 고취로서 차별·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에 해당하는 표현’을 법률로 금지하도록 요구합니다. 증오를 조장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차별적·적대적·폭력적 행동을 유발하는 선동 수준의 표현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역설적으로 양쪽 문제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실제로 폭력이나 차별을 촉발할 정도의 선동이 방치되면서, 동시에 모호한 혐오표현의 일괄 금지나 신성모독 금지법이 비판자, 언론인, 종교적 소수자 등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이 두 위험을 모두 피하기 위해, 자유권규약 제19조의 표현의 자유와 제20조의 선동 금지 사이의 경계를 정교하게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연구하여 도출된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라바트 행동계획은 ‘특정 표현이 혐오적이거나 부적절한가’를 일반적으로 판정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특정 표현이 자유권규약 제20조 제2항에 따라 형사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차별·적의·폭력의 선동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즉, 아래의 각 요소를 결여했다고 해서 혐오 표현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라바트 행동계획을 소개를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일부 혐오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표현까지 수용할지에 대한 견해와 입장은 천차만별이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어느 지점에서 충돌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6가지 요소를 설명합니다.

 

첫번째로 사회적, 정치적 맥락입니다.

표현이 이루어진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봅니다. 예컨대 대상 집단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이 이미 빈발하고 있는지, 종교분쟁·인종갈등과 같은 긴장이 고조된 상황인지, 유사한 표현이 실제 공격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평온한 사적 토론에서 나온 경우와, 특정 집단에 대한 집단폭력이 발생한 직후 군중 앞에서 나온 경우는 위험성이 전혀 다릅니다.

둘째, 발언자의 지위와 영향력입니다.

발언자가 청중에게 미치는 권위와 영향력을 봅니다.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 군 지휘관이나 유명 언론인처럼 청중을 실제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한 발언은 일반 개인의 사적 발언보다 위험성이 클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사회적 직함이라기보다 해당 청중과의 관계에서 실제로 영향력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의도입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기존적으로 특정 표현을 형사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이기에 가장 중시하고 있는 요소입니다. 자유권규약 제20조의 ‘선동’이 성립하려면 단순한 부주의나 경솔함만으로는 부족하고, 대상 집단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고 청중에게 차별·적의·폭력의 행동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요구됩니다. 문제 있는 자료를 생각 없이 공유했다는 것과, 청중을 자극해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가하도록 의도적으로 배포했다는 것은 엄격하게 구별하려는 시도를 할 것을 촉구합니다.

 

넷째, 발언의 내용과 형식입니다.

발언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도발적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해 인간 이하 또는 위험한 존재로 묘사하는지 차별과 축출, 공격을 직접 요구하는지, 명령이나 행동 촉구의 형식인지, 반복적 구호, 영상, 상징, 암호화된 표현을 사용했는지, 반론이나 논증 없이 감정만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지 등을 검토합니다. 단순한 비판이나 학술적 논쟁인지, 청중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선동인지도 이 항목에서 구분됩니다.

다섯째, 발언의 전파 범위입니다.

발언이 얼마나 널리, 반복적으로 퍼졌는지를 봅니다. 사적인 대화인지 공개집회 발언인지, 소규모 전단인지 전국 방송인지, 일회성인지 반복적인 캠페인인지, 청중이 실제로 선동된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집단인지 등이 포함됩니다. 인터넷 게시물이라도 실제 도달 범위, 반복성, 공개성, 대상 청중의 규모가 함께 고려됩니다.

마지막으로 위해 발생의 개연성과 긴박성입니다.

발언 때문에 실제 차별·적의·폭력적 행동이 발생할 합리적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선동’을 가려내는 것이고 선동은 위험범적 성격을 가지므로 실제 폭력이나 차별이 발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발언이 청중의 실제 행동을 유발할 합리적인 개연성과 비교적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위 요소들은 ‘특정 표현이 자유권규약 제20조 제2항에 따라 형사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차별·적의·폭력의 선동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입니다. 

 

라바트 행동계획은 문제되는 표현을 그 성격과 가능한 대응 방식에 따라 세 범주로 구분합니다.

1) 형사범죄가 되는 표현

2) 형사처벌되지는 않지만 민사소송이나 행정제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표현

3) 형사·민사·행정제재의 대상은 아니지만 관용, 시민적 예의, 타인의 권리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우려되는 표현

으로 구분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혐오표현은 보다 활발하고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특정 표현이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해당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더하여 혐오표현에 해당하므로 제한되어야 하는지 여부까지 논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 중 하나이고 국가가 표현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려면 법률상 근거와 필요성·비례성이 요구됩니다. 사적 커뮤니티 역시 자체 운영규칙에 따라 게시물을 관리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고 일관되며 충분히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3)번 범주의 경우 대개는 직접적인 제재보다는 반박·비판·교육 등의 대응이 적절한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위 라바트 행동계획에서 나눈 범주는 고정된 것도 아닙니다. 같은 표현이라 하더라도, 위 각 요소를 고려하여 전혀 다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가령 “저 집단은 사회에 해롭다.”라는 표현이 사적 대화에서 일회적으로 나온 경우에는 제3범주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이 학교의 교장이고, 같은 발언을 반복하며 그로 인해 특정 집단의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교육기회가 배제될 우려가 있다면 제2범주의 차별 또는 인격권 침해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집단폭력이 임박한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군중에게 해당 표현으로 특정 집단을 낙인찍어 사실상 추방이나 공격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면 제1범주의 선동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형사적/행정적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혐오 표현에 대하여 비형벌적 대응에 대해서도 단계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반박과 설명을 하고 사실관계를 교정하며 표현 수정 권유와 함께 당사자의 의견 제시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표현이 왜 혐오표현에 해당하는지 설명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외의 지점은 차별을 받는 소수 집단이나 심지어 이들을 대변하는 전문가조차 해당 표현이 왜 혐오 표현인지 설명과 설득을 포기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차별을 받고 있는 집단은 직감에 가깝게 특정 표현에서 혐오를 인지하지만, 그에 대한 논리적 설명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대응은 역설적으로 차별 받는 소수 집단을 더 고립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 그런 경우는 이미 수차례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무관심과 여전한 차별적 표현에 지쳤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기에 오히려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차단은 당장의 피해는 멈추지만 인식을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혐오적 인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발언자가 스스로를 검열의 피해자로 인식하면서 반감이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차단 기준을 사회가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면, 같은 표현을 두고도 자의성 논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사용하지 않게 되는 가장 안정적인 이유는 단지 처벌이나 삭제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표현이 왜 타인을 부당하게 낮추고 차별을 재생산하는지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설득할 때까지 피해자가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혐오발언이고 어떤 피해를 만드는지를 설명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고 멈춰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위와 같은 말이 소수집단의 의무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수집단에서 소수집단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차별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는 특정 표현에 담긴 혐오와 배제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을 매번 논리적으로 해설하고 다수를 설득할 책임까지 당사자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수차례 문제를 설명했음에도 같은 표현이 반복되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설명과 공감대 형성의 책임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공동체 운영자와 전문가, 문제를 인식한 구성원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다수에 대한 설득의 부담을 약자의 지위에 있는 소수에게 다시 돌리는 일 역시 경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아래의 조딘 님이 10777번 글을 작성해주신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블라인드된 글에서 “게임 업계가 지나친 PC주의로 인해 멀쩡한 사람들을 동성애자로 만들었다.”라는 표현은 ‘퀴어’를 ‘멀쩡한 사람들’의 바깥으로 묶었다는 설명으로 표현의 잘못됨을 정확하게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댓글 등에 비추어 보아 원글의 작성자이신 더블킹님이 의도하셨던 내용은 아마도

“게임 업계가 다양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일부 캐릭터의 성적 지향을 서사적 개연성 없이 설정하고 있다”

정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블킹 님도 곧바로 비판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여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조딘 님이 위 글을 작성해주지 않았다면 자유게시판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아찔하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적습니다.

 

 

여기까지만 작성하고 글을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호불호를 감수하고 저를 드러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것을 굳이 밝히는 것은 제가 제 입장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아무런 가치관이나 개인적 감정도 개입되지 않은 중립적 입장만 제시된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영역과는 별개로, 저는 현실적인 동성애 ‘행위’는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동성애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가톨릭의 동성애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도 오해하는데, 가톨릭 교리는 동성애 행위의 실천은 무거운 죄로 바라보지만,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과 동성 간 성행위를 구별하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태여 제 종교와 그로 인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을 드러낸 이유는 제가 수용할 수 있는 표현과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의 수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 행위를 지지할 수 없다는 제 의견이 불편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실망하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제게 동성애 행위를 지지하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아쉽다고 직접 표현하실 수도 있고, 그러한 표현 또한 제 마음은 다소 쓰릴지언정 제가 제 종교를 드러낸 이상 감내해야할 표현입니다.

가톨릭의 성윤리는 잘못되었다는 종교 교리에 대한 비판 또한 제가 들어야 할 표현입니다. 제가 그 표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제가 그런 비판을 들었다는 이유로 종교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동성애 행위를 지지하지 않는 종교를 믿는 자이므로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종적·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특히 엄격하게 금지되는 영역이고, 한국 가톨릭은 박해를 받은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게시판의 흐름이 염려되어 평소보다 다소 강한 톤으로 썼지만,

이러한 논쟁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쓰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논쟁이 없는 죽은 게시판이 더 경계되어야 합니다.

요즘 제 사회적, 종교적인 주된 관심사는 ‘단절’입니다.

이미 실생활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단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유일한 커뮤니티에서, 서로에 대한 단절의 우려가 보이니 마음이 편치 않고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믿습니다.

 

어느 일방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영원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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