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면목이 없습니다.’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비티, 16시간 전, 읽음: 108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등장인물은 저를 찾아온 손님인만큼, 빈 방구석에 홀로 서있기만 하는, 그런 처사가 받아선 안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삶이 바쁘면 체력이 없기 마련이고, 삶이 바쁘니 시간이 없으면 죽창 글은 복고만하고 정작 적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런 난점은 누구나 겪어보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제게 있어서 <현대 마녀학 입문>같은, 제 마음 한켠에 이미 하나의 삶을 구축해놓은 글은, 방치하는 것 자체로 적잖은 죄책감이 들게 합니다.

<현대 마녀학 입문>은 혼혈이란 이유로 차별받는, 혼혈이란 이유로 알 수 없는 배려만 받는, 이방인이란 이유로 미움받는, 우리와 닮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고통받는, 더불어 때로는 빈곤하고, 외롭고, 아프고, 용도가 아니고서야 호명받지 않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둥지를 만들어나가는 그런 글입니다.

홀로 둘러보고, 이주자 분들과 대화하고, 옷을 바꿔입어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을 직접 찾아가보며 깨우친 것들을 적는 글입니다.

하지만 첫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지금은 소위 리메이크를 해야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글을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도통 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휴재 작품이 되었습니다.

고로 저는 면목이 없습니다. 내 평생을 담아보자 마음 먹은 과거의 나에게, 정체되어있는 등장인물에게, 변변찮은 글에 기대해주시는 독자님들께, 제게 가르침이 되어주신 장소와 시간, 정취께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마녀의 낙서장이나 다름없는 글을 한번 읽어주시기를, 적어도 지금만큼은 제 책임을 필사적으로 회피하며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비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