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목적성에 관하여
기존 본문은 개인적으로 쓴 거라 반말로 적었기에 제미나이를 통해 존댓말로 일괄 수정을 거쳤습니다.
제가 소설 쓰는 이야기를 할 때나 아마추어분들의 글을 리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합목적성’입니다. 합목적성은 말 그대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글을 쓸 때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그 목적에 부합하는 마땅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합목적성을 추구할 때 몇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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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적에 대한 오해
우선 합목적성은 어떤 절대적인 목적을 상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합목적성에서 말하는 목적이란 창작자가 의도한 바를 뜻합니다. 따라서 그 의도는 서사, 구조, 인물, 사건, 배경, 설정, 연출, 혹은 문단과 문장 단위 등 글의 어느 요소에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은 집필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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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단에 대한 오해
수단에 대해서도 몇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합목적성은 목적에 맞는 수단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목적에 맞는 수단’이란 개념은 어디까지나 ‘적절함’이나 ‘가장 잘 들어맞음’에 가깝지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인물 A의 과거를 회상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일단 목적이 ‘과거 회상’이라면 취할 수 있는 수단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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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식 대사로 한 번에 설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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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장면 전환을 두고 과거 시점부터 글로 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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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과거 속 인물인 B를 등장시켜 대화나 갈등을 통해 과거를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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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과거를 떠올릴 만한 키워드를 언급하며 스스로 털어놓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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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이나 문단으로 암시만 하고 넘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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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없는 상황에서 A의 과거를 아는 제3자의 입을 빌려 전달하기
이 여섯 가지 방법 중 고민해야 할 때,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 당장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저에게 있어 ‘과거를 회상해야 한다’는 하나의 문제 상황일 뿐이고, 이를 해결할 수단이 여섯 가지 존재하는 셈입니다. 아직 명확한 목적이 설정되지 않은 것이죠. 그렇다면 저는 어떤 목적을 설정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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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적 설정과 작가의 역량
합목적성에서는 이 목적 설정 자체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내가 어떤 목적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각 수단의 우열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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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의 극한 압축이 목적이라면: 드래곤볼식 설명이나 한두 줄의 암시로 끝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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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B의 자연스러운 등장이 목적이라면: B를 활용해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B의 비중을 확보할 것입니다.
즉, 글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와 작가의 추구점, 취향 등이 목적 설정에 큰 영향을 미치며, 작가는 이에 기반해 목적을 설정한 뒤 가장 잘 부합하는 수단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수단이란 결국 ‘작가의 능력 범위 안’에서 결정됩니다. 아무리 이론상 적절해 보이는 수단일지라도 작가가 다루지 못한다면 합목적성에 따라 부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단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미궁사변》 14화는 에피소드 제목이 ‘미궁 출현(4)’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궨트 에피소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4화가 독립시켜 보아도 좋을 만큼 독자적인 이야기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집필 당시부터 “한 회차 호흡 안에 끝나는 독립적인 에피소드” 자체를 넣을 목적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33화에 들어간 ‘영화적 연출’ 역시 마찬가지로, 제가 구상한 연출을 넣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다른 요소들을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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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목적성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덕목
따라서 합목적성을 제대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덕목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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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메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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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다양화
첫째, 폭넓은 메타인지
합목적성의 추구 범위를 넓게 가짐으로써 소설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유기적 통일성을 끌어올리는 데 필요합니다. 유기적 통일성이란 소설의 각 요소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도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환원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소설에서 버릴 요소가 사라지는 것”이자, “빌드업조차 재미있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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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수단의 다양화
수단의 합당함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합니다. 이는 일종의 기회비용 문제이기도 합니다. 취할 수 있는 수단이 A부터 Z까지 26가지가 있다고 할 때, A와 B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A를 선택하는 것과, A부터 P까지 다룰 줄 아는 사람이 A를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기회비용을 창출합니다.
선택지가 A와 B뿐인 이지선다에서 A가 선택된 것은 A가 진정 합당해서라기보다 B가 너무 아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지선다에서 A가 선택되었다면, 그것은 다른 경쟁 수단들보다 A가 훨씬 더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선택권의 확장이 A라는 선택의 의도를 보강하고 합목적성을 강화해 줍니다.
따라서 합목적성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가진 수단을 더욱 다양화하고 넓혀야 하며, 이에 따른 숙련도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롭게 창작할 때마다 항상 최소한 하나 이상의 새로운 시도를 넣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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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이처럼 합목적성이 충족된 소설은 구조적으로 탄탄하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스스로 딱히 구조적으로 탄탄한 글을 쓰고 싶지 않거나 그런 방향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굳이 ‘합목적성’에 의거해 글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합목적성조차도 합목적성에 의해 추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이것이야말로 합목적성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