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최애 교과서 수록 소설은 무엇이었습니까?
최근 올린 작품에 달린 댓글을 읽다가
문득 고딩때 국어 교과서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독서경험이 미천해서 이 밖에는 공유할 게 별로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저는 6차 교육과정 가장 끝물 세대입니다. (어허 나이 추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고백하자면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딴짓을 꽤 했습니다.
국어 교과서로요.
수업이 재미없으면 아직 진도도 안 나간 뒤의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
재밌더군요.
한 번 읽고, 나중에 수업 진도가 오면 또 읽고.
아마 교과서에 실린 소설 대부분은 두 세 번씩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상하게 기억나는 작품들이 있고,
제 집필의 기준에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머릿속에서 한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작품이 있습니다.
김정한의 「사하촌」입니다.
엄청나게 좋은 소설인데…… 이걸 읽는데 정말 답답했습니다.
절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고, 농민들은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러다가 드디어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아이들은 절을 태우러 간다는 말까지 합니다.
그리고.
끝.
……
잠깐만요.
절은요?
당시의 저는 고구마를 한 백 개쯤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집을 풀다가 지문으로 최서해의 「홍염」을 만났습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지문을 읽다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다른 문제집까지 뒤져서 전문을 찾아 계속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진짜 불을 지릅니다.
저는 문제집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너무 강렬해서 그랬는지, 당시 제가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했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머릿속에서는 「사하촌」과 「홍염」이 이상하게 붙어 있습니다.
「사하촌」에서 쌓인 고구마 백 개를 「홍염」이 모아서 한꺼번에 불태워 버렸습니다.
크하
물론 「홍염」은 제가 다니던 시절 교과서에서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매웠겠죠. 위험하구요.
피 끓는 청춘들에게 보여 줄 교과서 작품으로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과서 편찬하시는 분들도 작품 목록을 앞에 놓고
‘음…… 이건 학생들이 읽기에는 화력이 좀 센데.’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규중칠우쟁론기」 아시는 분 손.
바늘, 자, 가위, 인두, 다리미, 실, 골무가 모여서 서로 자기 공이 제일 크다고 싸웁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도 이 작품이 묘하게 좋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바느질 도구 일곱 개를 모아놓고 배틀물을 쓴 것인가.
단체 배틀 장르물
아무튼.
제가 학교를 다니던 이후의 교과서들을 가끔 보면 작품들이 꽤 달라진 것 같더군요.
모더니즘 계열 작품들도 보이고,
요즘에는 SF 작품까지 교과서에 실린다는 이야기도 봤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여러분의 최애 교과서 수록 소설은 무엇이었습니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부 좋습니다.
저는 일단 「사하촌」을 제출하겠습니다.
다만 제 기억 속 「사하촌」 옆에는 아직도 「홍염」이 앉아 있습니다.
둘이 붙여 놓으면 불조심 포스터부터 한 장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화재신고는 119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