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없는 세상에서 왔다.
우주에서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은 없고, 중력은 시공간을 찌그러뜨린다. 따라서, 누구도 우주 끝까지 도달할 수 없고, 비틀림 없는 우주의 원형을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이는 그간의 우주원리였다.
그런데, 그들은 마침내 원리적 사고의 힘으로 빛과 중력 법칙을 깨뜨려 버렸다. 거의 실시간으로 우주 전체를 볼 수 있는 시력을 갖게 된 것이다.
‘우주는 자연스럽게 흐를 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우주필라멘트라는 광대한 영역에 들어가 무체문명을 시작하자마자, 그들은 우주의 차디찬 본색을 보았다. 처음 본 우주의 실제 모습은, 탄력을 잃고 시들어가는 무색의 풍선과 같았다. 자연계의 자정기능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가장 힘이 덜 드는 길을 따라 그저 이기적으로 흐를 뿐이었다.
그들은 이 같은 우주에너지 배분의 비효율성 문제를 ‘우주가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는 문제(우주상수=0)’의 주된 원인으로 생각했다.
숙명처럼,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들은 숱한 세월을 소모했다.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시작과 끝을 볼 수 있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거인을 만났다. 오메가가 그려낸 미래의 끝점을 보고 알파가 현재의 시작점을 찾아내면, 파일럿 뮤가 그 시작점을 움직여 미래의 끝점을 변화시킨다. 이렇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뒤바뀐 미래의 끝점을, 그들은 ‘예정된 필연’(물질로 이루어진 현실세계가 최소작용의 원리로 흐르는 한, 모든 일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난다. 이런 필연에 그들의 숨은 의도가 담기면, ‘예정된 필연’이 된다)으로 불렀다.
그들은 알파와 오메가 두 거인을 이용해 우주 각지에서 일어나는 우주섭동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우주필라멘트에 들어온 지 (그들시간으로) 1천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