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리뷰
*다른 곳에서 작성한 걸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말투가 다릅니다.
도시를 보라, 사람들을 보라.
가난한 자에게도 고귀함이 있고,
어리석은 자에게도 재치가 있으며,
속이는 자에게도 진실함이 있으니.
한 줄 요약
사랑과 충성, 헌신, 그리고 진실함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들
현대문학에서 나온 오 헨리 단편선을 드디어 다 읽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계속 미루고 미뤘었는데, 이번에 다 읽게 됐다. 더 빨리 읽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고, 또 생각할 거리 역시 많았다.
이번 단편선을 통해 느낀 점을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오 헨리의 유명한 단편 몇몇 개(<마지막 잎새>, <동방박사의 선물>, <경찰과 송가> 등)도 분명 좋지만, 그보다 더 좋거나 그만큼 좋은 단편들도 상당히 많았다. 개인적으로 로맨티스트의 극한이었던 <목장의 보피프 부인>이나 <녹색의 문>은 단순히 오글거리는 과잉의 로맨스가 아니라, ‘상냥함’에서 비롯되는 감성 충만한 로맨스다. <붉은 추장의 몸값>의 경우 진짜 읽는 내내 정신없이 웃었던 단편이었다. <어느 도시의 보고서>나 <운명의 갈림길> 같은 단편 역시 좋다.
2. 단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고 느꼈다. 유명한 단편들 때문에 오 헨리가 전부 따스한 이야기만을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단 <목장의 보피프 부인>이나 <녹색의 문> 같은 로맨스도 있는가 하면, <운명의 갈림길>처럼 (어찌 보면 코스믹호러적인) 비극 그 자체를 다루기도 하고, <어느 도시의 보고서> 같은 건 좀 더 누아르적인 분위기가 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나 <고무 희극> 같은 건 아예 블랙코미디다. <누렁이의 회고록>은 또 어떤가?
3. 그러나 그런데도 사랑이 단편선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두 명의 젊은 남녀가 나와서 사랑을 하든, 두 명의 여자가 한 명의 남자를 짝사랑하든,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두 명의 남자가 경쟁을 벌이든, 혹은 두 명의 여자가 각각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가 서로 반대되는 남자와 결혼하든, 그 어느 쪽이건 사랑 얘기가 무수히 많이 나온다.
4. 정직하지 못한 인간들 역시 많이 나온다. 작가가 수감 생활을 했어서 그런지 여러 범죄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굳이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이들 역시 자주 나온다. 그러나 그들을 포함해 본 작품군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진정한 악인이라고 말할 부류는 거의 없다. 그들 대부분은 사랑이나 우정 앞에 결국 진실을 털어놓는다.
5. 명명백백한 반전의 왕이다. 읽어나가는 동안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에 허를 몇 번이고 찔리다 보니 나중에는 슬슬 오 헨리적 사고에 빠지게 되어 반전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됐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최후반에 배치된 <녹색의 문>은 내게 있어 정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측되는 반전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반전 자체만큼이나 오 헨리는 반전에 대한 연출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6. 전반적으로 서술자 개입이 잦다. 흔히 절제되고 작품과 거리를 두는 현대 소설과 비교하면 조금 유치해 보이거나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바꿔말하며 현대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입담 좋은 미국 친구가 천일야화를 들려준다면 그게 오 헨리 아닐까?
7. 굉장히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오 헨리만 읽어도 1900년대 미국의 도시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도시 뿐일까, <피미엔타 팬케이크>나 <블랙 이글의 실종> 같이 시골 생활을 다루는 것도 있고, 도시라고 해서 뉴욕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오 헨리 단편 속 인물들은 정말로 그 안에 존재했던 역사들을 작가가 잠시 빌려다 소설로 가공한 게 아닐까 싶은 생명력이 있다.
8. 읽고 나서 돌아보고 곱씹을수록 느끼는 오 헨리의 진가는 가치에 있다. 정확히는 오늘날 나를 비롯한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직, 진솔함, 사랑, 재치, 용서, 관용 등의 가치들 말이다. <되찾은 새 삶>만 보더라도, 사랑을 위해 금고털이를 끊고자 했던 지미 밸런타인은 사랑을 위해 속여왔던 위선의 가면을 내려놓고 금고털이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후련한 마음으로 위선의 대가를 치르려 하지만, 진정한 반전은 그 이후에 있었다. 사랑을 위해 발휘한 그의 정직이 그의 위선을 녹이자, 그를 쫓아온 경관이 그의 정체를 묵과하며 그의 가면을 다시 도로 씌워준 것이다.
<아르카디아의 나그네들>도 마찬가지다. 신비로운 신사숙녀들은 사실 신비로울 수 있는 외딴 곳에서 신비로운 행세를 하는 소시민일 뿐이다. 모든 게 가식이었음에도, 두 신사숙녀는 서로를 향한 우정 앞에 끝내 가식을 내려놓고 정직을 택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다른 한쪽 역시 똑같은 가식을 내려놓게 됨으로써 둘은 이전보다 더 진솔하고 가까워진 관계가 된다.
정직함 역시 주목할 가치였지만, 그만큼이나 나는 용서와 관용 역시 애틋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먼저 의심 받는 것이 정직이요,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용서와 관용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오 헨리의 여운으로부터 조금 떨어지고 나면 다른 생각이 찾아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오 헨리 단편선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정직과 용서는 사랑만큼이나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나는 과연 정직한가? 나는 타인이 위선과 가식을 내려놓았을 때 용서할 관용을 품고 있는가? 대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응당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터다.
9.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오 헨리가 장편을 쓰려다가 건강의 문제로 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거다. 안 쓴 게 아니라!!! 명명백백한 반전의 왕이 장편을 썼다면, 단편과 비교할 수 없는 분량의 빌드업이 갖춰진 반전과 그 연출의 파괴력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는데 볼 수 없다는 게 그저 유감스럽고 안타까울 뿐…… 나는 정말 오 헨리는 장편 못 쓴 거 빼면 깔 게 없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10. 이번에 독서하고, 실제로 과외로 독서 입문을 이 책으로 시도한 결과로서 확신한 게 있다. 고전 및 독서 입문은 오 헨리가 최고다. 반박은 받지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