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씨 아줌마의 서울국제도서전 탐방기
노 씨 아줌마는 남편과 함께 몇 년만에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
그녀는 자칭 소설가였다. 딱히 알려진 작품도 없었고, 출간된 책은 자비로 낸 실용서 두 권 뿐인데다가, 소설이라는 걸 쓰기 시작한 것도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녀는 소설가를 자칭했다.
대략 10년이 조금 안되었을까. 노 씨 아줌마는 처음 국제도서전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로 ‘도서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분위기였다. 각 나라 출판사의 서적들과 출판인쇄기술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특이한 팝업북 동화책도 그때 처음 보았다. 당시 관람객은 적었다. 다들 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그 넓은 전시장을 느긋하게 관람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딱히 대단한 행사나 이벤트도 없어서, 그런 것에 관심없는 그녀조차도 팜플렛에 부스 관람인증용 도장을 받아 작은 이벤트 참가상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도서전’에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였다. 심지어 작년엔 다른 일 때문에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컨벤션홀 근처에 갔다가, 그곳을 꽉 채우고 있는 인파에 놀라기도 했다. 4시간 뒤에 볼일을 마치고 다시 지나가게 되었을 때에도 입장줄은 전혀 줄지 않았었다. 아니, 더 길어진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이 오늘 안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걱정될 정도로.
‘아니, 대체 책만 소개하는 전시회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다들 그렇게 책에 관심이 많았던거야?’
당연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책에 관심이 없었다. 큰 출판사들이 책과 함께 끼워 파는 굿즈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쪽에 더 끌려 왔다. 굿즈를 내놓는 곳이 많아지자 관람객도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뿐이었다.
다행히 올해 도서전은 날짜마다 얼리버드 예매표와 일반 예매표를 제한수량으로 판매했고, 한 날짜에 사람들이 몰리는 일은 줄어들거라 했다. 그럼에도 예매 사이트에 접속하기 힘들 정도 사람들의 관심은 높았다.
실제로, 노 씨 아줌마는 평일에 연차를 내고 아침 일찍 출발해 10시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예매한 입장표를 받는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거기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통제 직원도 잘 보이지 않아 당최 어디가 입장표를 받는 줄의 끝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10여분간 엉뚱한 곳에 서 있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냥 남편은 내버려두고 새벽에 출발할 걸.’
남편은 몸이 허약하고 아침잠이 많았다. 깨우지 않았으면 10시 반이나 11시는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을 것이었다. 노 씨 아줌마는 내년에 오게 되면 그냥 자기 혼자 오기로 결심했다.
노 씨 아줌마는 굿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끔 펀딩 사이트에서 책과 함께 세트로 그런 굿즈들까지 펀딩 리워드로 받아본 적은 있지만, 결국 ‘예쁜 쓰레기’일 뿐이었다. 택배로 도착하면 몇 번 들여다보고 그대로 서랍속에 들어갔다가 몇 달 뒤에 대청소로 쓸려나갔다. 너댓 번 그런 꼴을 겪고 나니 돈이 아까웠다. 어린 시절부터 책만 잡으면 엎드린 채로 마르고 닳도록 읽어 엄마가 눈 나빠진다고 말릴 정도였지만,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서전에서는 노리는 굿즈가 있긴 했다. 미리 홈페이지에서 공지를 봐 뒀다. 책 자체가 코스터처럼 디자인 된 책, 그리고 전자책으로만 봤던 소설의 종이책 버전. 둘 다 엄밀히 말하면 ‘책’이지 ‘굿즈’는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무튼 그랬다.
‘이거야말로 냄비받침으로 쓰라고 만든 책이잖아.’
입장하자마자 그녀는 해당 출판사 부스를 찾아갔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헛웃음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부스는 그녀의 상상보다 조금 작았는데(출판 ‘그룹’이라며!!), 사람은 그에 비해 너무 많았다. 그녀가 찜해둔 것 말고도 탐나는 굿즈들이 즐비했고, 워낙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한 출판사인지라 관련 한정판 굿즈까지 쏟아져 나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다. 줄은 부스를 두 바퀴, 아니 세 바퀴는 감싸고 있었다. 내향형 인간인 노 씨 아줌마도, 허약한 남편도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하는 거 찾았어요?”
그녀의 속도 모르는 남편은 그렇게 물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데미지와, 인산인해에 치여 관람은 채 시작도 못한 시점에 이미 지쳐보였다. 거기다 대고 ‘저기 줄 서서 두바퀴 쯤 더 기다려야 돼요’ 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어어.”
그냥 그렇게 얼버무리고, 사람이 덜한 작은 부스 위주로 빠르게 돌기로 했다. 그쪽으로 가려면 어차피 유명 출판사 부스들을 지나쳐야 했지만.

지나면서 발견한 유명 패션잡지 ‘엘르’의 부스는 엄청 컸다. 판매보다는 자신들이 아직 건재하다는 걸 ‘패션쇼’처럼 보여주려는 듯, 세련된 ‘그레이’톤으로 ‘엘르 타임캡슐’이라는 테마로 꾸며두었다. 하지만 판매에 집중한 부스는 아니었기에 관람객은 상당히 적었다.
‘업계인 아니면 누가 패션잡지를 사본다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한켠으로는 씁쓸했다. 종이 잡지가 잘 팔리지 않는 시대. 뉴스 기사도 알고리즘과 취향에 따라 골라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꾸준히 팔리는 게 패션잡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미용실이나 몇몇 카페 프랜차이즈들은 매달 여러 권씩 들여다 놓으니까.
그리고 문득, 순전히 개인적인 충동으로 시작해 1년 만에 마무리한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초 마이너한 주제를 다루는 잡지 만들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듯 인터넷에서 자료를 긁어 모으고, AI에게 잡지 기사 문체로 다듬게 하고, 직접 사진을 찍으러 다닐 수 없어 픽사베이를 뒤지고, 그마저도 안 되면 AI에게 이미지를 만들게 해서 템플릿 사이트에 잡지처럼 배치하느라 고생했던 날들.
맨 처음 1호를 만들 때는 내지 디자인 감각이 없어서 한 번도 사본 적 없었던 패션잡지를 몇 권 샀었다. 그 안에 『엘르』도 있었다. 딱히 도움이 됐던 기억은 없지만.




이후에도 문학과지성사, 창작과 비평(창비), 열린책들, 돌베개, 문학동네, 동아시아허블 출판사 등 큰 부스들을 지나치며 슥 눈으로만 훑었다. 그녀와 남편은 그저 최근 트렌드와 신기한 인쇄기술, 그리고 모르는 출판사들이나 특이한 분야에 대한 책이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허블 출판사의 부스가 큰 것은 그녀에게는 의외였다. 소설을 쓰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출판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제일 인기 많은 SF공모전을 여는 출판사인데, 규모가 크지 않으면 이상했을 거였다.
그리고 ‘보림출판사’ 라는 출판사의 커다란 부스도 보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 이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50주년’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아니, 50년이나 된 출판사인데 몰랐다고?’
가까이 가보니, 유아용과 아동용 서적 전문 출판사 같았다. 납득했다. 그러니 모를 수 밖에.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았다. 아동문학 공모전과 그림책공모전 메뉴가 보였다. 다시 한 번 납득했다. 그녀가 구매하는 서적들 대다수가 상당히 좁은 범주의 분야라는 것을.
그래도 명색이 자칭 소설가라고,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라고 엄청나게 큰 글씨로 외치고 있는 ‘안전가옥’ 출판사 부스를 지나치지는 못했다.



부스는 책으로 가득했다. 창고에 있는 책을 전부 가져와서 쌓아놓은 것 같았다. 판형이 특이했다. 문고판과 비슷했지만 좀 더 길쭉했고, 좀 더 컬러풀했으며, 좀 더 표지 디자인에 공을 들인 느낌이었다. 몇 번 들어보거나 온라인으로 읽어본 작가들의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나도 내 이름 저렇게 알려지면 좋겠다.’
꿈 같은 얘기였지만.

거기다, 안전가옥 출판사 부스는 정말 특이하게도 부스를 2칸 더 사서 ‘짐 보관소’까지 운영중이었다.
“와… 이야…”
조금 전까지도 지쳐서 아무런 말도 안하고 전시된 책만 뒤적뒤적 거리던 남편조차도 그걸 보고 작게 감탄했다. 출판사 이름을 관람객들에게 박아놓는 데에는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그렇지, 일단 무슨 수를 쓰건 사람들에게 이름 알리는 게 제일 중요하지. 노 씨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반타’라는 출판사의 부스였다. ‘반타’라는 출판사명은 몰라도, ‘온다 리쿠’라는 일본 작가는 들어서 알고 있던 노 씨 아줌마였다.

“아… 온다 리쿠 책이 여기에서 나오는거구나.”
“오… 예쁘다.”
두꺼운 양장표지들이 시리즈로 단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색 선택도 좋았고, 표지그림도 마치 메르헨처럼 보여서 전권을 다 사서 책장에 놓으면 그 자체로도 꽤나 그럴싸할 것 같았다. 읽든 안 읽든 전집류와 시리즈류를 탐내는 건 독서인의 본능이었다.
부부는 작은 출판사 부스들이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한바퀴 돌았지만 딱히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장르소설에 발을 들인 독립출판사들이 몇 군데 보였고, 그중 본문 폰트와 구성, 책의 모양새 자체가 독특한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옛 요괴를 소재로 한 짧은 호러였는데, 뒷면에는 같은 내용을 일본어로 번역해 세로쓰기로 수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속독파라 얇은 책을 서서 후루룩 다 읽어버렸지만, 소설 내용에 맞게 판형도 고서를 닮은 모양새여서 사기로 했다.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와 1시간을 줄 서 있다가, 전시장 안에서도 사람에 치이다 보니 둘 다 많이 지쳐 있었다. 이미 한 시간 반 정도 돌아봤으니 충분하다 싶었다.
그런데 돌아서는 순간, 그들의 눈길을 끄는 책들이 나열된 출판사 부스가 보였다. ‘성안당’.
‘성안당 출판사면 꽤 많이 들어본 곳인데 왜 이렇게 부스가 작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잘 팔리고 다들 아는 출판사. 굳이 준비하기도 피곤한 이런 도서전에 힘을 뺄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출판사들처럼 딱히 ‘굿즈’를 끼워팔기도 어려운 분야들 위주기도 했고.
부스를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은 [잠 못들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 시리즈였다. 책 표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통계학, 임상심리학, 자율신경계, 해부학 등이 적혀 있었다. 소위 말하자면 《 AK 트리비아 북》 류의, 라이트한 지식 교양서.
내지 디자인은 애매했다. 일본 트리비아 스타일임이 확실한 내지디자인과 색감. 너무 싫은데 너무 편한 그런 종류. 둘은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몇 권을 집어들고 계산했다.
전시장을 나와 잠시 앉아 숨을 돌렸다. 입장표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은 처음보다도 더 늘어난 듯 보였다.
“내년엔 우리도 부스 내자.”
뜬금없는 말에 노 씨 아줌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여기 부스비가 얼만데 우리가 무슨 돈으로 부스를 내. 책도 딸랑 두 권인데 뭘 전시할라고.”
“줄 서서 기다리는 거 너무 힘들어. 그냥 관계자로 들어가자. 그리고 너님 친구들한테 초대장 뿌리는거야.”
아하, 그런 의미인가. 그녀는 남편의 말에 낄낄거리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내가 서른 권 쯤 맨들어서 팔면 그때 부스 낼게.”
“아니야 그냥 내년에 바로 내자.”
노 씨 아줌마는 더 크게 웃었다. 줄 서고 기다리고 사람에 치이는 게 정말 힘들었구나. 그녀는 내년엔 꼭 혼자 예매하고 새벽같이 와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졌다.
ps. 이젠 평범한 말투로 후기를 쓸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