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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올가 토카르추크

분류: 책, 글쓴이: 노르바, 2시간 전, 댓글2, 읽음: 24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720670

 

오래전에… 취미활동을 위해 가입했던 네이버카페에다가… 트위터에서 발견한 공감가는 인용구를 올려둔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떠올라서 검색해보니 ‘올가 토카르추크’라는 작가더라구요.

그래서 무슨 책을 썼나 하고 찾아보니 [다정한 서술자]라는 책이 나왔고… 알라딘에 올라가 있는 인용구에 꽂혀서 결국 바로 구매해서 읽어봤습니다.

세상이 이 책이 쓰이기를 갈망하고 있다.’라는 생각.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게 들리는지 나도 잘 압니다. (……)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작가는 결국 예술가이고 예술가는 학자들보다 더 강한 기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학위증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충격적으로 만족스럽네요…

다들 이런… 경험을 어느 순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저 그걸 지칭하는 단어나 표현이 다를뿐…

 

그냥 하이라이트 친 부분들만 몇개 올려보겠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된 여행들, 내가 선택한 다양한 작업과 활동,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과 동물들….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이 모든 것이 내게, 나의 삶에, 그리고 나의 글쓰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펜으로 맺어진 친애하는 동료이자 이 이상한 직업의 세계에 이제 막 입성한 젊은 신참 여러분, 글쓰기는 지옥이고, 끊임없는 고문이며, 끝으로는 타르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척추를 망가트리고,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경쟁에 참여하게 만들고, 후문에 오르게 하고, 지원서를 접수하게 하고, 댓글을 달게 하고, 인색한 평론가들을 욕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서평을 읽고 난 뒤에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물어뜯게 합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천국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힘을 느끼게 하고, 삶을 끝없는 취미 활동으로 바꿔 주고, 현명하고 흥미로운 사안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늘 함께할 수 있게 해 주고, 다양한 문제들을 비정형화된 측면에서 생각하고 접근하게 만들며,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공감력을 발달시켜 주며, 타자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나는 종종 좋은 이야깃거리, 최상의 주제, 신중하게 수행된 자료 조사, 그리고 기타 모든 필요 조건(자신만의 집필실, 어느 정도 조용한 환경, 자유 시간의 보장 등)만으로는 글을 쓰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데 꼭 필요한 어떤 특별한 과정 혹은 흐름에 반드시 휩쓸려야만 하는데, 나는 그것을 목소리라고 부릅니다.

 

나는 초기작들을 쓰면서 이러한 목소리를 직관적으로 찾아 헤맸고, 그것을 ‘영감’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괜히 ‘영감탱이’ 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냥 ‘영감’과는 좀 달라요… 너무나 명확한 소리, 명확한 글자로 갑자기 띡 놓고 달아남…)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내적인 극작법입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목소리는 사실 내가 마지막 강의에서 다시 언급하게 될 어떤 미지의 공간에서 용솟음치는 소리이며, 동시에 이야기의 창조적 원형과 언어, 그리고 독자 사이에서 매개체가 되어주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 목소리로 인해 서술자가 생성되는 순간 서술자는 내적 독백이나 대화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것은 매우 극적일 때도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그런 내면의 목소리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했고, 목소리마다 선호하는 주제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러한 목소리를 살찌우는 문학도 있지만, 반대로 빈약하게 만드는 문학도 있었습니다. 어떤 목소리는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어떤 목소리는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또 다른 작업은 문구 하나하나를 전부 뜯어고쳐야만 할 정도로 고달팠습니다.

그렇다고 걔가 다 해 주지는 않음…(대부분은 개연성이고 서사고 없음)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나’는 실제로 누구이며,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들리게 만들고 신뢰감을 유발하는 명확한 포인트를 짚어 낼 줄 아는 그 목소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매번 주제가 던져질 때마다 입찰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뭔가가 내 안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이야기를 쏟아 내는 그 순간에만 고용되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작업이 끝나고 나면 정신의 깊은 심연에서 용해되어 버리는 걸까요? 그도 아니면 마치 영매처럼 이야기꾼으로 빙의되어 외부에서 흘러들어 온 다른 존재의 목소리일까요?

 

때로는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출처를 알지 못하는 문장들이 느닷없이 내게로 다가와서는 어떤 인물을 창조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곤 했습니다. 대화의 실마리들이 귓가에 메아리칠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내 머릿속으로 파고든 단서들은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할만큼 했나?’
‘저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주시겠습니까?’
(이거만 갖고 뭐 어쩌라는거야)

네 뭐 대충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 서술자에게 주도권을 넘겨 줌으로써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소설로부터 약간 뒤로 물러났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소설이 고유한 에너지를 갖게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내가 쓴 거 같지 않아요. 사실 융의 ‘적극적상상’ 기법에 더 가깝습니다…

 

나는 마치 공장에서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글쓰기라는 작업에 접근하게 되었고, 책상 앞에 앉아서 무조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그냥 키보드 두드리는 기계일 뿐이지.(넌 부르는대로 적기나 해 – 아 그래도그렇지 새벽3시에 일으켜세워서 적게 하는 건 좀… 팔리지도 않을 글을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면ㅅ… 아아아아 쓴다고 써!!)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세상이 이 책이 쓰이기를 갈망하고 있다.’라는 생각.

팔릴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목소리를 찾았을 때 책들은 스스로 글을 씁니다.

글감이 작가를 택합니다. 삼각김밥이 편의점을 택하고, 고급 프랑스요리가 호텔주방장을 택하듯이(…) 뭔가 좀 이상하지만 뭐.

 

또한 태고의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조각 글의 힘을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어떤 장면의 파편이더라도 일단 기록해두세요. 몇년 뒤에 갑자기 뒤통수 때리면서 써달라고 올 수 있음…

 

유쾌하지만 동시에 집요하며 통제하기 힘든 정신적 증세로 나를 몰아넣습니다. 그러한 상태는 중독성이 강합니다.

초반에 모오오든 일을 제쳐두고 미친듯이 써갈길 때… 그만한 도파민이 없었거든요… 네…

 

 

하이라이트 부분이 더 많긴 한데… 다 적을 순 없으니까…

글쓰면서 뭔가 고통스러우면서 희열도 있으면서 즐겁기도 하면서 약간 스스로 이상해진 거 같았던 분들이라면…
이 책의 ‘서술자의 심리학’ 이후부터 읽어보세요. 진짜 흥미진진.

노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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