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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 종종 생각합니다.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유상, 6시간 전, 댓글14, 읽음: 70

요새는 백룸으로 리미널 스페이스 (익숙한 공간의 낯선 느낌과 배치),

SCP 재단으로 도시괴담적 존재들을 정의하면서 생기는 공포들이 인기입니다.

설정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노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것들이 나름 2010년대부터 새로운 호러를 정립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아요.

 

옛날 민담에서부터 지금에까지도 많이 쓰이는, “괴기스러운 존재가 어쨌든 나를 싫어함”이라든가

“위험한 공간에 내가 찾아들어갔는데 빠져나오질 못함” 같은, 잘못 걸렸다 스타일의 공포도 꽤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요새 살짝 공포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있어서,

좀 다른 걸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긴 했습니다.

 

스티븐 킹이 이야기하는 공포의 3단계 (불안, 경악, 질겁) 은 “공포스러운 존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의존하는데,

만화 중 “죠죠의 기묘한 모험” 작가는 이걸 감안했는지 아닌진 몰라도 “선조 때부터 내려온 악의”가 가장 무섭다고 말한 바 있지요.

내 조상이 알고 있는 거지 내가 그 존재를 아는 게 아니고 (무지함), 그 존재는 나를 알고 있으니까 (정보의 비대칭성).

 

여기서 조금 착안해서, “기괴한 존재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조금 해봤습니다.

그 존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괴이한 존재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건 맞지만, 그게 직접 주인공을 해치는 게 아니라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책을 만들 수 있을까.

 

“괴이는 주인공을 해치지 않지만, 괴이 때문에 주인공이 당해야 한다”는 모순을 해결하려면,

역시 업(業)과 부정(不淨)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가 너를 저주한 게 아니지만 나쁜 짓을 하면 쌓이는 게 업이고,

내가 해친 규칙과 존재가 나를 직접 해치는 건 아니지만 쌓이는 게 부정이니까.

 

이 점에 의거해서 한국의 부정굿 (부정거리, 부정풀이 등으로 불리움) 을 조사해봤고,

이전에 읽었던 한국 무속 관련 논문들을 다소 참고했습니다.

 

그 결과 쓰게 된 게 이것입니다↓

연관된 글 – 부정은 물로 씻고, 업은 기도로 푼다.

 

여기서부터는 가능한 한 스포 없이 글의 내용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래도 조금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혹시나 스포일러 싫어하신다면 짧은 글이니 살짝 보고 와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일단 형식은 규칙괴담에 최근 유행하는 방명록 괴담 형식을 섞었는데,

방명록괴담을 섞은 이유는 서술트릭 겸 심리적 혼란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 무속에서 부정과 깨끗함을 다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누가 봐도 깨끗한 것이라고 알려져있는 3대 요소가 청수 (특히 정화수), 금줄, 황토입니다.

 

굿은 기본적으로 “부정한 존재가 물러설 때까지” 하는 것이고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부정을 몸에 덕지덕지 붙인 ‘나’는 젯밥을 먹고, 부정이 가는 길을 따라가되, 절대로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몸에 붙은 부정이 도망가거나 씻겨져야지, ‘나’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아픈 곳, 더 괴로운 곳으로 찾아 들어가라는 수칙을 보며

‘이 수칙이 잘못된 거 아닌가?’라는 의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무속의 여러 신들이나 거친 환경요소들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만,

실제로 그 무엇도 ‘나’를 직접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괴로운 이유는 ‘나’의 업 때문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첫 수칙에서 ‘나’가 의심하는 포인트가 있지만 정말로 그게 업이 되었을까요?

돌멩이를 부쉈다면, 그쪽에 가서 돌멩이를 다시 세우고 제사를 지내면 되는 거 아닐까요?

 

“무언가 금기를 어겼다”는 부분을 굳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은 이유는,

한 번 업이 쌓인 이상 무엇으로부터 쌓였는지를 확인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업을 씻는다는 고행에서 불교라는 종교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고

실제로 부정굿에서 쓰이는 경문들 역시 불교 문구를 많이들 사용하시지요.

 

윤회전생을 모토로 했기에 모든 ‘나’는 자신의 고행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고.

반대로 말하자면, 한 번의 생으로는 미처 다 갚지 못할 정도의 업을 어떤 식으로든 ‘나’가 쌓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지은 업은 스스로 풀 수밖에 없지만, 모든 걸 다 바치고 동아줄이나마 되어주는 가족의 사랑 역시

이런 소재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가 싶었어요.

 

어쩌면 최후에, 벗어나지 못한 누군가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로 하면서 그저 다음 사람을 걱정하고, 스스로의 몸을 바치며 최종적으로 업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다음에 적힌 글은 없는 것이고요.

 

고작 괴담, 그것도 읽을 사람 적은 엽편 하나 쓰는 데에 뭔 잡생각을 이리 많이 하나 싶지만

개인적으로 호러란 시대성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고전 민담이나 도시전설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규칙괴담, 방명록괴담 등의 형식으로 많이 써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모두가 다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인 부분에서 가져오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다.

 

브릿G를 포함한 여러 작가님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공부가 많이 됩니다.

글 써주셔서 고맙고, 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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