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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에 대하여

분류: 수다, 글쓴이: 김밀세, 5시간 전, 댓글4, 읽음: 47

제가 언제 들었었던 교양 수업에서는 관광업과 관련된 사회학 논문들을 주제로 다뤘는데, 진정성(Authenticity)이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관광객들은 보다 진실되고 고유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관광지를 선호한다더군요. 여행의 본질이 일상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기 위함에 있다면, 뻔하고 가짜 같은 체험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홍대에 즐비한 외국인 대상의 비싼 식당들. 커플 여행객을 노리는 하트 모양 포토존. 제휴 몰에서 쇼핑을 강요하는 패키지 여행. 이런 예측 가능하고 해로운 도식에서 우리는 벗어나길 갈망합니다. 그래서 관광지의 역사, 문화, 일상이 진실되게 드러나는 진정성에 열광한다는 것입니다. 기왕 이탈리아에 갔으면 케첩으로 버무린 스파게티 대신에 태양에 말린 토마토를 쓴 파스타를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러한 선호가 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진정성이 있는 글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LLM(거대 언어 모델, 흔히 AI라고 부르는 것)의 도래로 글을 대량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것은 독자도 LLM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웹소설 시장에서는 LLM을 활용한 글들이 과잉공급되고 있고, LLM을 이용한 AI 채팅은 독자적인 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결과 텍스트의 생산수단이 작가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하였고, 이러한 기술을 완전히 배격하는 작가는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물론 LLM이 만능은 아닙니다. LLM으로 하여금 풍취를 가진 텍스트를 꾸준히, 일관되게 만들게 하려면 현재로서는 많은 시간과 높은 비용이 듭니다. 또한 *마크다운 문법*을 미처 지우지 못한 웹소설은 AI를 사용했다고 조롱을 받으며, 영문학을 기본 학습 데이터로 삼은 LLM 특성상,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 작성에 ‘가장’ 만능은 아니고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LM은 인간 작가를 위협하는 중입니다. 그것은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내 니즈에 맞는 텍스트를 공급해줍니다.(AI 채팅) 나 대신에 팔릴 글을 써줍니다. (AI 대필) 편리하면 장땡 아닐까요? 왜 비판을 받는걸까요? 인류의 지식을 사유화해서? 지구 환경을 파괴해서?

저는 LLM이 진정성이 결여된 모조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인간으로서의 긍지가 남아 있어서라기보단, LLM이 전혀 새롭지 않고 지루하게 느껴져서입니다. 뭐, LLM은 그 특성상 뒤에 올 확률이 가장 높은 단어들의 연쇄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마치 케첩으로 달달한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드는 관광객 타깃 레스토랑 체인인 셈입니다. 편리하다는 면에서 인간은 LLM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그러니 LLM을 이용해서 동일한 방법으로 경쟁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 아닐까요. 어차피 그런 텍스트는 인터넷에서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작가라면 아이디어와 목소리만큼은 고유해야 하지 않을까. LLM이 나를 프롬프트 입력 장치로 부려서는 안 되지 않을까. 무언가 원론 같은 소리지만 여기에 올려봅니다.

김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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