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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처럼 보이는 것과 SF로 작동하는 것

분류: 수다, 글쓴이: 아침은삼겹살, 7시간 전, 댓글3, 읽음: 37

요즘 SF 정합성 이야기를 보면서 조금 다른 질문이 들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맞는가. 작품 안에서 규칙을 지키는가.
현실 과학과 어느 정도까지 맞아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는 다른 작가님들께서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서 조금 옆으로 빠져서,

영화 쪽을 잠깐 떠올렸습니다.
소설 이야기를 하면서 왜 영화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정합성이라는 것이 독자나 관객에게 어떻게 체감되는지 보기에는

영화가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는 화면이 먼저 보입니다.

미래도시가 나오고, 우주선이 나오고, 로봇이 나오고, 홀로그램이 나오면 우리는 일단 SF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그 화면을 만든 각본도 SF적인가?

우주선이 나오지만, 그 이야기가 그냥 가족 갈등이나 상속 싸움으로도 똑같이 굴러간다면 어떨까요.
로봇이 나오지만, 그 로봇이 없어도 인물 관계와 사건이 거의 그대로라면 어떨까요.
미래 기술이 나오지만, 그 기술이 사건을 밀어붙이지 않고 배경 장식에 머문다면, 그건 SF일까요. 아니면 SF처럼 보이는 화면을 가진 다른 이야기일까요.

반대로 화면은 아주 소박해도, 하나의 과학적·기술적·제도적 조건이 인물의 선택과 사건의 방향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저는 그쪽이 더 SF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칠드런 오브 맨」이나 「12몽키즈」 같은 영화가, 제게는 그런 예로 떠오릅니다.

물론 플롯만 놓고 보면 대부분의 이야기는 익숙한 모양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익숙한 플롯을 무엇이 밀고 가느냐일 것입니다. 가족 갈등도, 상속 싸움도, 도망과 추적도 SF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때의 과학적·기술적·제도적 조건이 갈등의 모양 자체를 바꾸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합성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는 장면 하나하나의 과학적 정확성보다 먼저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 설정이 없어도 이야기가 성립하는가.
그 기술이 없어도 갈등이 그대로인가.
그 세계의 조건이 정말로 인물과 사건을 움직이고 있는가.

영화팬들도 정합성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관객은 의외로 장면 단위의 오류는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우주에서 폭발음이 들려도, 액션이 조금 말이 안 돼도, 장르적 약속 안에서는 그냥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바로 튕겨 나옵니다.

“그 기술이 있으면 왜 아까는 안 썼지?”
“이 세계에서는 된다면서 왜 지금은 안 되지?”
“저 설정이면 애초에 이 갈등이 생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 건, SF의 정합성이 단순히 장면 하나가 과학적으로 맞느냐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이쪽 아닐까요.

그 작품이 세운 SF적 조건이 정말로 이야기를 움직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조건을 작품이 끝까지 책임지고 있는가.

하드 SF도 이 질문에 가장 엄격하게 답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건을 현실 과학에 최대한 가깝게 세우고, 그 조건이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가게 만드는 방식이니까요.

다른 SF는 그 조건을 제도, 사회, 윤리, 기술의 가능성 위에 세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SF처럼 보이는 장면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가 SF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겉모습은 소박해도, 하나의 조건이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간다면 그건 아주 강한 SF일 수 있다.

결국 궁금한 건 이겁니다.

그 장면은 SF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그 이야기가 SF로 작동하고 있는가.

여러 작가님들의 다양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아침은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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