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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이성질체 편향에 관한 생물학 SF를 써 보았습니다. (리뷰 공모)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사피엔스, 2시간 전, 댓글2, 읽음: 32

아미노산과 당 같은 생체 분자들이 L형과 D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화학적으로는 똑같은 분자이지만 오른손과 왼손처럼 거울 대칭으로 생겨서 절대로 겹쳐질 수 없는 분자들을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릅니다. 신기하게도 지구상의 생명체는 L형 아미노산과 D형 당 분자만을 씁니다. (물론 예외가 있지만 아주 극소수입니다)

아래는 L 형 아미노산과 D형 아미노산의 입체 구조를 볼 수 있는 링크입니다. 두 분자를 아무리 요리조리 돌려봐도 절대로 겹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https://wiki1.kr/index.php/%ED%8C%8C%EC%9D%BC:Chirality_with_hands.svg.png

이렇게 거울 대칭인 분자가 겹쳐지지 않는 성질을 카이랄성이라고 부르는데, 카이랄성의 중요성이 알려진 것은 1950~1960대에 입덧 방지제로 쓰인 탈리도마이드라는 약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 결과물은 이성질체가 뒤섞인 라세미 혼합물로 나타납니다. 근데 탈리도마이드는 한 형태는 입덧을 막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형태는 태아의 혈관 생성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약회사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그 약을 출시했고, 그 약을 복용한 산모들에게서 팔다리가 없는 아기들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극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고, 그저 신기하게 생각되는 예시들도 있습니다. 오렌지 향 분자인 리모넨이라는 물질의 이성질체는 오렌지 향이 아닌 솔잎향이나 테르빈유의 향을 냅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거죠)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과 기능은 단백질의 구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단백질의 구조는 어떤 아미노산이 이어져 있는냐와 관련이 있고요. 따라서 각각 L형 아미노산과 D형 아미노산으로 만든 두 단백질은 화학적으로는 똑같은 분자이지만 형태가 거울에 비춘 것처럼 겹쳐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몸의 효소와 호르몬, 수용체들은 D형 단백질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D형 단백질로 이루어진 고기를 먹으면 소화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흥미롭게 생각하다가 SF로 써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심한 건 꽤 됐는데 쓰는 건 이제야 썼네요. 이 소재로 어떤 서사를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같은 소재로 장편 하나 썼다가 도중에 막혀서 처박아뒀는데, 그대로 포기하긴 억울(?)해서 일단 이 소재를 활용해서 단편부터 써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써 봤습니다.

아마 제가 지금까지 쓴 것 중에 가장 하드한 SF이지 않나 싶습니다.

줄거리는, 한 남자의 아내가 죽음 후에 부활하는 과정에서 D형 아미노산만 쓰는 거울 인간으로 재탄생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생명의 기원을 알고자 설계한 실험 때문이었다, 온 세상이 경악하고 그녀를 비난했지만, 남자는 아내를 만질 수 없는 것이 더 괴로웠다, 아내는 진리를 탐구하는 실험을 계속했고… 그들 간의 갈등에서 소외되어 그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

넵, 이성질체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사람 얘기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일독과 감상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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