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믿는 것
생물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생물체를 위해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즉 ‘조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렙스와 필자는 동물의 모든 의사소통을 신호 발신자에 의한 신호 수신자의 조작으로 해석한다.
수신자의 감수성이 증가하면 신호의 강도는 증가할 필요없이 오히려 눈에 띄거나 소리가 큰 신호에 따르는 비용에 의해 감소할 것이다.
한 편, 신호의 강도가 몇 세대에 걸쳐 증대한다면 이것은 수신자측의 불매운동이 점차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이 조작하고자 하는 물체가 비생물일 경우, 또는 적어도 자기로서는 움직일 수 없는 경우에는 오로지 폭력으로 그것을 이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있는 다른 동물인 경우, 물체 내부의 명령 계통-감각기관, 신경계, 근육-에 침투하고 그것을 파괴하면 된다.
보통 동물은 다른 동물의 뇌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러나 눈이나 귀는 신경계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조작자는 신경 자극 호르몬 등을 합성하거나 주입하거나 하지 않아도 좋다.
자기를 위해 그것을 합성하도록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인 신호를 통해) 다른 동물의 뇌하수체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리차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chapter 4. 군비경쟁과 조작 中
우리의 언어가 이토록 정교한 것은
우리가 그토록이나 서로를 거절해 온 탓이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그건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탓이겠지요
서로가 귀기울인다면 아주 작은 소리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테니까요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키기보단
내가 그를 왜 이해시킬 수 없는지를 나 자신에게 이해시키는 게
언제나 더 빠르지요
어느 수학자의 말처럼
우리의 의사 소통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언어가, 기호가, 개념이 정확히 동일한 것을 지시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정확히 같은 오해를 품고 있을만큼 인간의 사고란 것이 거기서 거기인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란, 서로의 오해가 일치할 때 발생하며
공감도, 기실은 우리가 고작 여기까지라는 한계의 토로인지도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면
연금술보다는 화학으로, 점성술이 아닌 천문학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그 모든 미신에 이제는 진저리가 날 때도 되었으니까요, 서로가
우리가 한 점의 단백질 덩어리였던 시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이어졌을
서로에 대한 너무 오랜 거절이
우리에게 남겨준 이 슬픈 언어로
그러나 바라건대
그리 강하지 않은 신호의 발신만으로
그 어느 뇌하수체의 방어벽을 뚫고
그 어떤 존재의 불매 운동을 이겨내어
어느 마음 한 가운데를 목도할 수 있을런지요
그토록 오래였던 서로에 대한 거절, 그 슬픈 역사를 거슬러
언어로, 그녀를 그대 곁에 이끌어
운율로 그녀를 휴식케 하소서
언어로, 그녀를 떠나보내소서
어딘가, 시간 저 너머로…
언어로, 그녀의 호흡을 잦아들게 하시고
저 마루에 부드러이 그녀를 뉘이소서
그러면 그 자리에 그녀가 머물어
어느 때보다도 귀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밤이 오면 그녀의 창을 열어두어
도시의 불빛들이 그녀의 방 안을 채우게 하소서
도시의 그림자가 천장을 메우면
그녀는 마치 사람들이 창 밖에 가득한 듯 느낄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의 고독을 치유하시고
그녀를 편히 잠들게 하소서
나무 아래를 그녀와 함께 걸으소서
존재하지 않는 길로, 존재하지 않는 기억으로
그녀에게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햇살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보여주소서
언어로, 그녀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오직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그녀를 별까지 가닿게 하시고
언제나 오직 사랑만을 제일 처음에 두소서
그리고 밤이 오면 커튼을 열어두어
도시의 불빛이 그녀의 방안을 비추게 하소서
그림자들이 그녀의 천장을 어지럽히면
그녀는 비로소 바깥 세상을 떠올릴 것입니다
사람들로 가득한
사람들로 가득한 바깥 세상을
언어 / 안느 브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