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내가 왜 소설을 쓰는지 알아?”
“왜 쓰는데?”
“권위있는 자리에서 남들에게 ‘끗발나게 잘 쓰시네요’ 라는 말을 권위있게 해주려고.”
뭔가 ‘권위있는’ 이라는 말을 두 번은 해야 될 것 같았다.
“……뭐? 어?”
“그러려면 우선 내가 ‘끗발나게 잘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거든. 그래야 권위도 생기고 남들이 나를 그 자리에 앉혀주지.”
내 말에 남편은 조용히 나를 쳐다봤다.
“왜?”
“미친 인간아.”
“으하하하하하~”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미쳤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난 미친 인간이다. 미친 인간이 미쳤다는 말을 듣는 건 정상이지.
“그러니까 결국 남들에게 인증용 직인찍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잖아.”
“맞아.”
“너님이 무슨 [금색의 사자 딜레온]*이야?”
“뭐 어때.”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없어보이는 내 대답에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타줘요?”
“아니 페퍼민트.”
남편이 부엌으로 가는 동안 나는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좀 전에 쓴 분량이 4,200자. 하지만 결말까지는 조금 남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 이 정도면 1시간 안에 충분히 끝내고 잠깐 쉬다가 저녁준비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민트 향이 방 안 가득 번졌다. 남편이 머그잔 두 개를 들고 돌아와 하나를 내 앞에 놓았다.
“쌩ㅡ유.”
“근데 진짜로 그런 이유 때문에 쓰는 거야?”
남편이 자기 컴퓨터 앞에 앉으며 물었다.
“응”
나는 자신있게 답했다.
남편은 또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미친 인간이야.”
“히헤헤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웃었다.
“사실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인데요.”
“그럼 나머지 반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왜 쓰는가.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재미있어서’와 ‘누가 머릿속에서 완성된 문장으로 말해주는 것 같아서’였고, 1주일쯤 지났을 때는 ‘습관이 되어서’, 그리고 뜬금없이 ‘끗발나게 잘 쓰시네요’ 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였다. 두 달쯤 되어서는 ‘이제 그만두면 아까워서’, 그리고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도 해 주지 않으니 내가 쓴다’ 였다.
그리고 이제는 ‘끗발나게 잘 쓰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것 조차도 다른 목표를 위한 단계에 불과해져 버렸다.
“이젠 잘 모르겠어. 그냥 쓰고 싶어서?”
“뭐야, 그게.”
“나도 몰라요. 그냥 쓰다 보니까 계속 쓰게 되더라고.”
“그게 맞긴 하지. 그럼 계속 써.”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궁금한 건 물어보지만, 대답이 애매하면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어차피 나에게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걸 아니까. 나는 그게 좋았다. 내가 설명을 못 알아들으면 종종 짜증이 심해지긴 했지만.
파일을 저장하고 차를 마저 마셨다. 오늘은 저녁 먹고 나서 나머지를 쓰기로 했다. 어차피 밤이 더 잘 써지는 편이었다.
처음에 플랫폼 몇개를 탐색해 보고나서 한 연재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했다. 조회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 플랫폼 자체도 마이너했고, 내 소설의 내용도 마이너했으니까. 평균 회당 2~3회 정도. 댓글도 많지 않았다. 한 화당 두세 개.
하지만 그 두세 명은 꾸준히 매번 댓글을 남겼다. 짧게는 한 줄, 길게는 다섯 줄.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문장 묘사가 너무 좋네요.”
“오, 신박한데요?”
그런 댓글들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 댓글들 때문에 계속 쓸 수 있었다. 최소한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잘 쓴 편에 속한 걸로 보인다는 뜻이었으니까. 댓글이 없는 단편들도, 잘 보면 꾸역꾸역 조회수가 오르고 있었다. 누가 읽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뭐, 소위 ‘도파민’은 충족되었다. 가끔은 순위권에 내 소설이 보이기도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계속 뭔가 썼다. 리뷰도 열심히 썼다.
사실 난 어릴 때부터 감상문에 더 재능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독서기록장을 채웠으니까. 커서도 항상 ‘좋은’ 후기쓰는 건 자신있었다. 그렇다, 내 입으로 이렇게 자신있고 재능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누군가 덧글을 달아주고 감상평을 남겨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그러나 소설을 쓰는 것은 리뷰나 후기와는 달랐다.
뭐든간에 후기글은 다른일을 하면서도 하루종일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30분 정도면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소설은 완전히 달랐다. 어떤 날은 1시간 만에 한편이 끝났고, 어떤 날은 시놉시스가 정해져 있는데도 6시간이 걸렸다. 중요한 건 매일 채운다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쓰고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분량을 정해두지 않으니 밤 12시가 넘게 잠도 안 자고 써대서 남편이 도파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제발 자라고 독촉할 지경이었다.
소설 업로드를 한지 두 달.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데 알람이 떴다.
클릭.
“본작은 ~~~~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
다시 읽어봤다.
예심 검토 대상으로 선정.
“……헐.”
작은 소리가 나왔다. 검토 대상으로 선정된 게 어디야.
사실 작정하고 쓴 단편이었다. 처음부터 문학상을 노린 건 아니지만, 최소한 플랫폼의 성향을 며칠간 살펴보고, 그 전에 검토대상이 된 작품들의 장르와 소재도 조사했다. 그에 맞춰 분량, 소재, 내용이나 문체까지 계산에 넣고 포트폴리오 만들 듯 썼다.
물론 자동으로 예심에 들어간 작가들도 있었지만, 나는 ‘소설’이라 부를만한 글을 쓴 지 채 두 달밖에 안 된 초짜였다. 그런데도 ‘전문가’라 부를만한 사람들이 내 글에 ‘팔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준 셈이었다.
“이게 되네.”
나는 다시 공지를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내 소설을 다른 사람, 그것도 편집부에서 소개하는 글로 읽으니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와…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이게 ‘헤드샷’이 들어갔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왔다갔다 했다. 이걸 누군가에게 자랑을 해? 말아?
핸드폰으로 캡쳐를 해서 남편에게 보냈다.
‘조으시게따’
5글자.
호들갑도 무의미한 축하도 아닌, 지극히 건조한 인티제의 축하인사. 그래 이래야 내 남편이지 ㅋㅋ.
새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첫 문장을 썼다.
오늘도 한 편을 만들어 낼 작정이었다.
석 달째 되던 어느 날, 내가 대체 얼마나 썼는지 궁금해졌다.
’90일이라 치고, 리뷰까지 포함하면…’
대충 하루 11,293자 정도 썼다는 계산이 나왔다.
90일 내내 매일 11000자씩 썼다.
미친 인간인가.
무슨 분량을 전업작가처럼 쓰고 앉았어. 인기도 없는 것을.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 3개월간 확실히 좀 미쳐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쏟아내고 나니 이제 오히려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잠도 안 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도 줄었고, 내용을 좀 더 궁리하고, 소재나 자료 조사에 시간을 더 할애할 정신이 났다. 다른 사람들의 소설 리뷰를 쓸 때도 좀 더 차근차근 읽어볼 여유가 생겼다.
“언제까지 쓸 건데요?”
저녁을 먹고 또 컴퓨터 앞에서 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오늘도 뭔가 써야만 하는 기분이었다.
“응? 이번 연재 끝날 때까지.”
“저번에도 그 얘기 했잖아.”
“근데 그 연재 끝나기 전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요 모양 요 꼴이 났지.”
남편은 하, 돌은 인간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뱉더니 덧붙였다.
“이런 분야는 아줌마들이 진짜 무서워. 해리포터 작가도 그렇고, 강철연금술사 작가도…”
“어 나도 알아. 어느 로판 웹소설 연재하는 아줌마 작가는 매일 두 편씩 올린댔어.”
“작작 해라… 건강 좀 생각해라…”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게 내 뜻대로 되면 이러고 있지 않지. 알면서.
“그리고 이번에 올린 단편이 이상하게 반응이 좋아.”
“잘해따… 그 다음엔?”
“모르는가? 다음 연재가 시작되지.”
“으휴…”
유명 만화 대사를 인용하며 대답하자 남편이 속 타 죽는 표정을 한다.
그 표정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케헤헤헤헤헤, 사실 나도 몰라. 또 연재물 할지 어떨지. 그냥 전부 하다 말 수도 있지.”
“그래요, 계획 같은 거 세우지 마.”
“응응.”
“자꾸 조회수에 연연하지도 마.”
“응응.”
“올려 두고 잊고 있으면 누군가는 보게 되어 있어.”
“알아.”
“에휴 미친 인간아.”
“고마워.”
“모니터 밝기 조절이나 해요. 또 눈에 핏줄 터진다.”
“응응.”
나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크리스타니아》 시리즈에 나오는 신수. 황금빛 사자의 모습을 한 신수. 승인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신들이 결정한 사항을 승인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딜레온 자신은 아무 것도 제안하지 않고 아무것도 제안받지 않는다. 단지 다른 신들이 제안하고, 결정한 것을 인정할 뿐이다. 그러나 그가 승인하지 않는 한 그 결정이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 딜레온이 승인해야만 비로소 신수들 사이에 결정된 사항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