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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대한 소견

분류: 수다, 글쓴이: 창궁, 7시간 전, 댓글7, 읽음: 50

포토샵, 사이툴, 클립스튜디오, 스케치업… 그림을 그리는 데 다양한 프로그램이 쓰인다는 것쯤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죠. “이 프로그램들을 잘 다루는 것이 곧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일까?”

제 과거 지인은 그림은 전혀 그릴 줄 모르지만, 포토샵에 능통해서 “그림처럼” 팬아트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그 지인은 자신이 이것저것 조합하고 포토샵을 이용해 만든다고 하지,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진 않죠.

다른 쪽으로는 이런 게 있습니다. 많은 웹툰 작가는 배경을 본인이 그리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러한 소스 배경을 그림 실력으로 취급하는 독자나 작가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펙트는 다르죠. 그림 프로그램의 여러 기능을 활용해 보정된 이펙트들은 작가의 인식과 별개로 독자에게 “잘 그렸다”는 인식을 주기도 합니다.

“수제”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배경도, 이펙트도, 다른 그림의 여러 요소들을 프로그램의 기능을 조합해 만들어낸다면, 그건 “그렸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 답을 어느 정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을 진지하게 꺼내들며 “당신은 진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말할 수 없어!”라고 하지 않죠. 도구를 잘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물론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 잘 그리는 사람이 도구도 잘 활용하기 마련이지만, 그게 강제되는 사안은 아니죠.

소설 창작에 그러한 유용한 도구가 없었습니다. A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AI는 “착각하기 쉬운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AI의 환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물론 환각은 결국 현 AI의 구조가 지성을 구현한 게 아니라 지성을 구현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확률적 예측을 기반으로 한 텍스트 생성이기 때문입니다)

“탁월함”과 “편리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AI에게 있어 둘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탁월하게” 이용하는 자는 그만큼 무시무시한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걸 만들기 위해선 그만한 능력과 지식, 검증 능력을 갖춰야 하며, 여기에 들이는 노력은 절대 가볍게 볼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편리하게” 이용하는 자는 절대로 탁월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현재 범람하는 저질 AI 양산품, 양산밈, 양산책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GPT나 제미나이, 클로드를 비롯한 다양한 AI를 써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AI는 환상과 공포를 가질 만큼 완벽하지 않습니다. ‘확률적 예측을 기반으로 하는 텍스트 생성’이라는 원리가 가진 태생적 한계는 명확합니다. 지금은 체급을 늘리는 것으로 그 한계를 최대치까지 확장하고 있으나, 저는 근본적인 지성을 구축하는 새로운 구조가 나오지 않는 한 AGI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바꿔말하면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어요. 이 파괴적이지만 유능하고, 뛰어나지만 한계가 명확한 도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AI는 결국 도구입니다. 도구를 쓸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나, 도구를 파괴적으로 쓴다면 거기엔 제재가 가해져야겠죠.

다만 그 제재가 ‘검열’로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AI를 썼네 마네를 따지고 검증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더 정교한 AI를 쓰거나, 말장난을 치게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대로 “AI를 이용한 창작”과 “AI로 창작”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만 만들어도 소비자에게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단순한 이유예요. AI로 창작한 저질 양산품은 소비자에게 있어 “본인도 딸칵으로 만들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하니까요. 지금은 사람들에게 아직 AI에 대한 환상과 공포가 남아있으니 이런 저질 장사가 팔리겠지만, “귀찮아질 정도로 범람”하게 되면 사람들은 구분을 요구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건 “AI 활용 여부”에 대한 양심적인 표기라고 생각해요. 비양심적으로 활용해놓고 표기 안 하면 어쩌냐고요? 들통났을 때 그 대가가 처참하다면 시도할 사람은 큰 물로 넘어오지도 못할 겁니다.

저는 이 유용한 도구를 너무 숭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반대로 송두리째 파괴할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유용한 도구를 쓰지 않더라도 이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탁월한 도구인지, 그 가능성은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구로 사람을 대체하려고 한다면, 그 도구는 사람 취급을 받아야겠죠. 이미 법인도 있는 마당에 로봇세를 못 낼 건 뭡니까.

하여튼 두서없이 적었지만 이참에 제가 가진 생각을 적어봤습니다ㅎㅎ

GPT 3.5 시절부터 계속해서 제 장편소설을 읽게 시키는데 지금까지 매번 실패해서 너무 슬픕니다…… 단편도 사실 가끔은 찐빠 오독을 해서 아직 멀었다는 걸 느낍니다……

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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