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을 이야기하는 게 맞을 듯 하여.
딱히 이유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노래를 듣는 데 손이 비는 게 너무 싫어서 시작했던 그림이 이것저것 한 달 사이 그리면서 실력이 느는 걸 보니까 뿌듯하달까요. 슬슬 한계를 느껴서 어설프게 어제부터 모작도 해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뭔가 ‘그림을 그린다’ 이상의, 예를 들어서 ‘소설 삽화를 한다’ ‘남의 팬아트를 그린다’ ‘커미션을 연다’ 같은 외적인 목표를 잡으면 하기 싫고 못하겠는데 그냥 순전히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면 결과물이 제 마음에 들게는 나오더라구요.
아쉽게도 소설은 아직은 그러지 못하고 있? 습니다.
주전공인만큼 너무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할까요. 그래서 일부러 기대를 하나씩 비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 대박 쳐서 먹고 산다'(사실 기대도 안 했지만)같은 마음을 내려놓는다던가, 아니면 내적인 고민을 실질적으로 해결해주지는 않을 거라고 침착하게 생각한다던가(달래는 주겠지만요.)
그래도 역시 내려놓을 수 없는 건… 독자분들께는 단순한 재밌는 이야기나 꾸민 거짓말이 아닌 진짜를 드리고 싶다는 걸까요. 판타지는 거짓말인 만큼이나 진짜를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문득 ‘그럼 그림 그리듯이 소설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제부터인가 들어서, 소설도 얼마 남진 않은 것 같습니다. 조만간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찌는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그림을 그리고 소설 자료를 읽다 보면 하루가 다 가요.
최근 드는 생각은 그림에 쓰는 뇌랑 소설에 쓰는 뇌가 다르다는 느낌이에요. 그림에 쓰는 뇌는, 꽤나 육체적인 느낌이에요. 머릿속으로 입체를 계산해서 평면에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 정신력 중에서도 HP에 속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림 작업 중에는 노동요가 도움이 됩니다. 몸이 리듬감에 따라 움직이듯이, 계산이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느낌. 디스코드로 아는 분 음챗에서 통화도 많이 하구요.
반면에 글은 논리력을 쓰는 느낌이라… MP를 쓰는 느낌이 듭니다. 음챗은 못하구요. 가사가 없는 노래조차 음악적인 문법으로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서 꺼놓고 작업합니다. 어쩌면 최근 글을 못 쓰는 이유는 음악에 너무 심취해서일지도 모르겠네요.
기왕 음악 이야기 나온 거 음악 썰도 풀어야죠. 원래는 라디오헤드의 <A Moon Shaped Pool>, 맥 밀러의 사후 음반 2장이나 언니네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같은, 나른하고 투명한 음악들을 좋아했었습니다. 그게 뭔가 형식을 찢고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그런데 문득 어느 순간엔가 힙합이나 블루스 색채가 짙은 록에 스스로를 위치하고 있더라구요. 천천히 생각해보니, 음 … … . 조심스러운 발언이지만, 지금 저는 살아있는 게 좋은 것 같더라구요. 예전에는 세상이 참 막연하게 싫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싫은 건 세상이 아니라 저 자신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음악적으로도 강렬하면서도 즐거운 게 땡기네요. 그런다고 누자베스 같은 로파이 힙합 같은 걸 안 듣는 건 또 아니지만요.
사실 서사성을 띄는 창작물 자체는 요즘 못 보고 있습니다.
일단 첫째가, 소설가들의 고질적인 질환이죠. 모든 작품들이 내 작품의 재료로 보입니다. 딱히 그렇지도 않은 걸 그렇다고 인식해버리면 머리만 아플 뿐인데, 다들 그렇듯이 고쳐지지가 않죠. 이거도 봐야해 저거도 봐야해 하는 마음만 가득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
둘째가, 실질적인 자료를 보고 있습니다. <어우야담> <천예록>이나 홍만종의 저서라던가, 아니면 <한국 도교사> 같은 것들. 자료 읽기와 그림을 병행하면 지쳐서 소설 쓸 시간도 안 납니다. 저녁에 조금 초콜릿 까먹듯이 뭘 보는 게 다인데…
마지막 문제가, 이렇게 지친 상태에선 딱히 마음에 드는 걸 찾기가 힘듭니다. 이 작품이 저 작품 같고 그런데 직접적으로 저한테 ‘말’을 거는 작품을 찾기가 힘들달까요. 외국 작품들을 더 많이 보게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 레메디 엔터테인먼트 사의 <FBC : 파이어브레이크>를 출시 당일 정가 구매 했다가 실망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컨트롤>과 <앨런 웨이크 2>가 너무 강렬한 체험을 보여줬기 때문에…
지금은 <고스트와이어 : 도쿄> 조금 하다가 왠지 <주술회전> 생각나서 한 편 보고… 이러고 있습니다. 사랑받기를 원하면 사랑해보라는 말을 주변 누가 하더라구요. 주변 사람들과 달리 너무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아서 체력을 써서 뭔가를 덕질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아요. 이를테면… 사서교육원에 지원은 했지만, 결과는 늦게 나오기 때문에 인생이 유예된 느낌이랄까요. 솔직히 큰 기대는 걸지 않지만, 그래도 결과가 나와야 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지역 독립 신문에 프리랜서 취재기자로 뽑혔습니다. 충동적으로 브릿G 기록이나 투비 기록들을 엮어서 포폴로 쓰고 지원했는데 덜컥 붙었달까요. 고료가 나쁘지 않아서 괜찮은 아르바이트 정도는 되어줄 것 같아요. 특히나 앞으로 취재기자를 해야 할 팔자면 그 이상일지도?
음. 평소 먹는 약 잠시 지을 동안 카페 왔는데, 듣는 음반도 끝났고 커피도 다 마셨고…
슬슬 이만 가볼게요. 더워요. 다들 잘 지내세요. 다음에 뵐 때까지. 이만 총총. 좋은 하루 되세요. 저도 잘 있을게요.
(노래 듣다가 문득 가사로 작별인사가 나오면 꽤 감동적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