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조나단이라고 합니다.
올해 들어 써야 할 것들이 겹쳐서 다른 글 쓸 여유가 없었는데, 마감들 끝내고 나니 좀 여유가 생기네요… 해서 수다 글 하나 써 봅니다.
저는 단편들 습작하다 브릿G를 만나 첫 장편을 연재 했었어요. 그것이 운 좋게 다른 출판사 눈에 띄어 책으로까지 나올 수 있었죠. (브릿G에는 다른 곳 편집자들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 기획피디 분들이 정체를 숨기고 좋은 작품 찾고 있다는 첩보가… 아니 소문이.)
그렇게 나온 책은 시간이 지나고 절판 되었는데. 최근 우연히(아니잖아~ 네가 찾아봤잖아) 서평 하나를 발견했어요. 헌책방에서 구입해 읽으신 분인 듯한데, 그렇저럭 잘 읽힌다는 감평과 함께
“작가의 말을 보니 신뢰가 가더라, 그거면 됐지 뭐.” 라는 코멘트를 붙이셨더군요. 그걸 보고 드는 생각. 작가의 말? 내가 뭐라고 썼는데?
해서 파일을 찾아보니, 오글거리기는 해도 생각할꺼리(?)는 있어 보이더군요. 당시 첫 장편이랍시고 꽤 장고해 썼던 기억이 있어서… SF 쓰시는 분들 읽어보시라고 올려 봅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작가의 말
단상1. 기자가 유명 SF 작가에게 물었다. “SF는 몇몇 좋은 작품들 빼곤 대부분 쓰레기 아니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유명 작가인 시어도어 스터전은 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맞다, SF는 90퍼센트가 쓰레기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의 90퍼센트 역시 쓰레기다.”
이른바 ‘스터전의 법칙’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말하면서 SF를 바라보는 세간의 편견을 지적한 작은 통찰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스터전의 90퍼센트를 지향한다. 쓰레기 말이다.
단상2. 출판 시장의 어려운 현실을 말할 때, 누구는 작가나 출판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또 누구는 책을 읽지 않는 독자를 탓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재능 있는 작가와 식견 있는 출판사와 읽을 준비가 된 독자들은 있다. 다만 쓰레기가 적을 뿐이다. ‘재미있게 읽을만한’ 쓰레기.
대중문화라는 것이 소수의 잘난 분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저변의 바탕이 깔려 있어야 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마블 영웅들이 지금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5센트짜리 종이 만화들이 ‘재미있게’ 읽혔기 때문이다. 서양의 SF가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에 펄프 잡지들이 융성했기 때문이다. 그 잡지들은 SF와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잘난 분들이 비웃고 매도하던) 다양한 이야기의 쓰레기를 양산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즐거이 읽었다. 그런 풍토에서 소위 빅3라 불리는 SF 거장들도 나올 수 있었다.
독자들이 손쉽게 찾아 읽고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쓰레기 소설들. 평론가들은 그것을 펄프픽션이라 부르고 (지금 한국에서 글을 쓰는) 나는 장르 소설이라 이해한다. 이 소설은 그 펄프픽션을 지향한다. SF 중에서도 하위 장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이름으로. 이제 독자분들이 재미있게 읽었는지만 남았다.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
SF 독자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SF를 썼다.
첫 장편이기에, 당연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대한 애정과 동경 그리고 오마주가 담겨 있다. 뤽 베송의 신선한 데뷔작 <마지막 전투>에서부터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는 물론이고 B급 컬트라는 랜스 문기아의 <6현의 사무라이>, 그리고 대니 보일의 <28일 후>와 (리처드 매드슨이 아닌) 프랜시스 로렌스의 <나는 전설이다> 까지. 한참을 더 나열할 수 있지만 자제하고.
그 영화들이 공통되게 보여주는 황폐한 풍광에 매료됐고 자연스레 ‘내가 사는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종말이 헐리우드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상상력이란 무에서 툭 하니 떨어지는 게 아니더라. 이 소설의 무너진 세계와 버텨가는 주인공들을 상상하는 동안 자꾸 현재와 현실을 반추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해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지금, 읽어주신 분들에게 바라는 것이 생겼다. 두 개씩이나.
첫째는 당연히 즐겁게 읽으셨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둘째는 잠깐이나마 ‘현재의 한국이라는 사회가 어느 날 종말을 맞는다면 이런 세상이 펼쳐지겠구나.’ 하고 상상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독자에게 ‘읽으며 상상하는’ 즐거움과 짦은 여운을 줄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니까. 첫 장편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남았으니까. 그것으로 또 무엇을 상상할지 아직 모르면서 말이다.
*
이제 감사의 말을 전할 때다. 독자였을 때는 ‘감사의 말은 으레 하는 멘트 아냐?’ 했는데, 직접 책을 내게 되니 아니더라. 꼭 전해야겠다. 많지는 않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우선 0000 출판사에 감사한다. 000 에디터님도… (중략) 장르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활동 중인 한켠 작가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 소설의 근본적 한계를 짚어주셨고, 그의 날카로움 덕분에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었다. 또한 ’어떤 태도로 쓸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주셨고. 앞으로 그것을 곱씹으며 조금씩 나아갈 생각이다… (후략)
SF에 대한 생각만 올리려다 생각해보니, 한켠 님이 종이책을 사지 않았으리라 101퍼센트 확신하기에, 이 자리를 빌어 한번 더 감사드려요. 당시의 마음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래서 절판된 책은 어디로 갔을까. 브릿G의 수많은 서가 구석 자리에 꽂아 두었습니다. 종종 읽어주시는 분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고, 철 지난 이야기지만 여전히 ‘그럭저럭’ 잘 읽히는 것 같더군요. SF와 아포칼립스에 관심 있으신 분들 한번 들러 주세요.
수다글 쓰려고 했는데 내글홍보가 되어 버린 듯하네요. 아래로 밀리면 그때 분류 바꾸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하루 되셔요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