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블록에 관한 칼럼
- 들어가기
일반적으로 ‘탐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탐정상은 어떤 것일까?
뭐긴 뭐야, 셜록 홈즈지.
아니, 실수. 질문을 다시 하자. 물론 셜록 홈즈가 모든 탐정의 모범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후까시를 잡는 탐정들. 대부분의 탐정이 모두 후까시를 잡기는 하지만 특별한 후까시를 잡는 ‘하드보일드 탐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탐정이 누가 있을까?
누구기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아니면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겠지. 그래, 그럼 그 둘의 공통점은? 입담이 있고, 필요할 땐 폭력도 쓰고, 유쾌하고 남성적인 탐정이라는 점이야.
그렇다. ‘하드보일드 탐정’이란 자고로 ‘남성적인 후까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싸움 잘하고, 섹스를 잘하고, 입담도 좋은 유쾌한 터프가이. 그것이 바로 ‘남성적인 후까시’다.
하지만 여기 ‘하드보일드 탐정’, 나아가 ‘하드보일드 소설 주인공’으로 불리는 또 다른 캐릭터를 보자. 여기 ‘매튜 스커더’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탐정의 필수 조건인 재치 있는 입담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폭력을 쓰지도 않고, 알콜에 파묻혀 사는 술주정뱅이이다. 떳떳한 탐정 자격증도 가지고 있지 않고, 심지어 교회에다가 십일조까지 내는 인물이다. ‘남성적 후까시’는 어디로 간 걸까? 그런데 ‘하드보일드 탐정’이라고?
다른 주인공인 켈러를 보자. 직업은 살인청부업자. 그래, 직업 정도는 하드보일드하다. 하지만 그는 개도 키우고, 여자도 만나며 심리상담가에게 카운슬링도 받는다. 도대체 어디가 하드보일드한거야?
불살 도둑인 ‘버니 로덴바’에 이르면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어진다. 그는 도둑질하러 간 집에 총이 있는데도 내버려두고 훔치지 않는 도둑이다. 이런 도둑을 가지고 어디가 하드보일드하다고 하는 거야? 대체 하드보일드라는 이름이 어디까지 떨어진 거야?
이 세 인물들은 모두 ‘로렌스 블록’이라는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 작가가 만든 주인공들이다. 그 작가 어딘가 이상한 거 아냐? 라고 묻고 싶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는 에드거 상도 수장한 적 있는 관록 있는 작가이다.
그는 하드보일드에 새롭고 독자적인 테마를 제시하고, 그 테마를 활용해 독자적인 문학성을 획득했다. 즉, 의외로 뿌리가 있는 작가라는 뜻이다. 로렌스 블록의 문학적 성과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뿌리인 ‘하드보일드’를 조금만 뜯어보자.
- 하드보일드라는 뿌리
이 시점에서 독자 여러분은 눈치가 빠르고 미스터리에 조예가 깊을테니 눈치 챘겠지만, 하드보일드는 이미 더 이상 미국 전후 하드보일드의 ‘남성적 후까시 잡는 영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기존에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라고 불렸던 뿌리는 모두 미국 전후의 ‘잃어버린 세대’의 감성에서 기반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직후인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쯤, 미국인들은 모두 물질만능주의에 절어있는 상태였다. 미국의 1차 세계 대전 참전은 기존의 가치관을 파괴했고, 전쟁으로 인한 전례 없는 부흥은 미국 사회를 속으로 병들게 했다.
여기에는 바보 같았던 금주법도 한 몫 했다.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술은 밀매되어 시카고 등지를 중심으로 범죄 조직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뒤늦게 금주법은 폐지되었지만, 갱단은 이미 클대로 큰 상황이었고, 사법 기관 또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혼돈의 도가니를 누가 버티며 살아나갈 것이냐! 거기에서부터 하드보일드의 탐정상은 출발한다. 하드보일드 탐정상은 이런 사회를 힘겹게 버텨 나가는 기사의 모습과 같았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법도를 지키며, 부조리한 세계에서 활극을 벌이는 일종의 영웅담. 그것이 하드보일드의 원래 모습이었다.
‘필립 말로’의 초기 모습이나 ‘샘 스페이드’, 거기에 ‘컨티넨털 옵’까지, 모두 여기에 여실히 부합하는 남성적이고 순수를 간직한 기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인물들은 모두 입담이 좋고, 냉소적이며 필요할 땐 폭력도 마다않는 마초적인 영웅상이다. 그들은 경찰마저 타락해버린 세계의 보안관들이며, 병들어가는 세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수호자들이었다.
그러나 ‘필립 말로’를 만든 ‘레이먼드 챈들러’가 말하나니, ‘좋던 시절 다 갔어. 이제 영웅의 모험담은 끝이야.’그렇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불세출의 걸작 ‘기나긴 이별’을 발표함으로서 하드보일드의 영웅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것이다.
‘기나긴 이별’에서 암흑가를 배경으로 활극을 벌이던 필립 말로는, 늙고 지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입담은 여전하지만 그는 이전처럼 힘이 세지도 않고, 폭력을 휘두르지도, 여인에게서 매력을 얻지도 못한다. 이러한 필립 말로의 모습을 통해 레이먼드 챈들러는 ‘세상의 흐름 앞에서 하드보일드는 한낱 감상주의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과연 ‘기나긴 이별’이 가져올 센세이션을 의식하고 글을 쓴 것일까? 그의 의도인지 혹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결국 수많은 작가들은 로스 맥도널드의 명제에 대답하려 애를 쓰게 된다. 그러던 도중 혜성처럼 ‘필립 말로’의 자리를 꿰어 찬 탐정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이다.
‘루 아처’는 하드보일드의 이단이다. 그의 모습은 ‘기나긴 이별’에서 보여준 필립 말로의 모습과 견줄 만 할 정도로 얌전해빠졌다. 비록 필립 말로처럼 늙고 추레하지는 않더라도, 폭력을 자제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훑어보며 해결하는 그의 모습은 이전의 하드보일드 탐정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루 아처를 하드보일드의 이전 세대와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루 아처의 배경이 1차 세계대전 직후 범죄가 판치는 무너진 도시가 아닌, 가정적인 문제로 일어난 범죄를 정신분석학적인 수단을 통해 다룬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을 보인 작가가 로스 맥도널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스 맥도널드의 아내로 알려진 마거릿 밀러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와 같은 당대의 작가들 또한 ‘가정 스릴러’의 대부로 가정의 문제를 정신분석학적인 토대를 통해 분석해 작품에 반영했다.
그러나 로스 맥도널드가 이러한 작가들과 가지는 차이점은, 가정 스릴러를 주로 썼던 이 작가들과는 달리 로스 맥도널드는 전형적인 남성적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루 아처의 재치있는 입담은 여전히 필립 말로로부터 물려온 것이며, ‘무너진 가정’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선 탐정의 모습 또한 ‘하드보일드’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처럼 루 아처와 함께 하드보일드 탐정은 여위어 갔다. 가끔 마이크 해머처럼 똘끼 넘치는 탐정도 나오기는 했지만, 탐정 소설이 경찰 소설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순간까지도 루 아처는 영향력을 발휘해 형사들마저 고뇌에 찬, 후까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다. 예를 들면, 저어기 북유럽의 에들렌두르라거나.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죄책감에 찌든 알코올중독자이자 교회에 십일조도 내는, 어딘가 호구같은 후까시라고는 하나 없는 탐정 매튜 스커더가 로렌스 블록이라는 한 작가의 손에 탄생한다.
- 매튜 스커더, 정신분석학에서 죄의식으로.
매튜 스커더는 ‘아버지들의 죄’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들의 죄’는 어떤 남성이 웬디라는 여성을 죽이고는 나체로 돌아다니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웬디의 아버지가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의뢰를 매튜 스커더에게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솔직히 말해 대다수의 첫 작품들은 모두 다른 어딘가에 빚지고 있지 않던가, 매튜 스커더의 첫 모습은 영락없는 루 아처의 짝퉁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정에 조심스럽게 접근해 휘리릭 진상을 밝혀내는 모습은 누가 봐도 루 아처 짜가라고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이 ‘루 아처’의 카피와 같은 면 모습을 보이는 이 작품에서도 루 아처와는 구별되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등장인물이 공통적으로 어떤 면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매튜 스커더부터 무고한 여자아이를 실수로 죽인 것에 대해 죄의식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피해자 웬디부터가 스스로가 사생아라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품고 있었고, 남성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콤플렉스를 품고 있었다. 또한 사건의 진상 또한 두 사람의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매튜 스커더’의 출발은 ‘루 아처’ 시리즈와는 소소한 차이점을 가지게 된다.
이 차이점은 기폭제가 되어, 바로 다음 권인 ‘살인과 창조의 시간’의 주요한 테마이자, 로렌스 블록이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아버지들의 죄’가 정신분석학적 테마에 인간이 가진 죄의식이라는 소스를 버무린 작품이라면, ‘살인과 창조의 시간’은 인간이 가진 죄의식을 밑바탕으로 로렌스 블록만의 독특한 하드보일드 세계를 만들어낸 일종의 시발점이다.
그러나 이 이 ‘루 아처’의 카피와 같은 면 모습을 보이는 이 작품에서도 뚜렷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등장인물이 공통적으로 어떤 면에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매튜 스커더부터 무고한 여자아이를 실수로 죽인 것에 대해 죄의식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피해자 웬디부터가 스스로가 사생아라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품고 있었고, 남성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콤플렉스를 품고 있었다. 또한 사건의 진상 또한 두 사람의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매튜 스커더’의 출발은 ‘루 아처’ 시리즈와는 소소한 차이점을 가지게 된다.
이 차이점은 기폭제가 되어, 바로 다음 권인 ‘살인과 창조의 시간’의 주요한 테마이자, 로렌스 블록이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토대가 된다. ‘아버지들의 죄’가 정신분석학적 테마에 인간이 가진 죄의식이라는 소스를 버무린 작품이라면, ‘살인과 창조의 시간’은 인간이 가진 죄의식을 밑바탕으로 로렌스 블록만의 독특한 하드보일드 세계를 만들어낸 일종의 시발점이다.
이처럼 죄와 죽음 앞에 선 개인을 다루는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꽉 잡힌 혼자만의 테마가 있는 독보적인 ‘하드보일드’ 시리즈이며, 수많은 하드보일드 작품 속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로렌스 블록의 재능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만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다른 하드보일드 작품인, 켈러 시리즈를 보도록 하자.
- ‘켈러’라고 부르면 적절함
게임 속에는 수많은 직업이 등장하지만 특별히 ‘코리안 시크릿 웨폰’으로서 우리나라 플레이어들이 유독 좋아하는 컨셉의 캐릭터가 있다. 바로 ‘은신 암살자’이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은신 암살자 캐릭터를 붙잡고 수많은 ‘충 캐릭터’를 양산하고 있다.
‘은신 암살자’ 주인공은 ‘잠입 액션’이라는 한 장르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수많은 암살자가 게임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암살단’, ‘디스아너드’ 시리즈의 ‘코르보 아타노’,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스네이크’, ‘히트맨’ 시리즈의 ‘에이전트 47’, ‘스플린터 셀’의 ‘샘 피셔’ 어우, 늘어놓기만 해도 길다. 이 모든 게 다 잠입 액션 게임에 뼈대 있는 시리즈가 많기 때문이다. 조금만 방향을 틀면 돌격 학살 게임이 되는 시리즈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자, 이렇게 주인공들을 늘어놓으면 ‘은신 암살자 주인공’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자, 벌써 하나 찾았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복수심에 가득 차 있거나, 자신의 임무에 대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좋아,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도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모두 프로페셔널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살인 대상을 찾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고, 심지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살인대상 사이에 있는 무고한 경비병까지 마구 죽이기도 한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이냐!
이 두 가지 공통점만 늘어놓아도 살인청부업자가 하드보일드 주인공으로서 적절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동의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살인청부업자가 당신을 찾아와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심각한 사안이다. 게다가 살인청부업자는 그 자체로 부서진 세계의 산물이다. 세상에 누군가를 죽이는 걸 업무로 삼는 사람이라니!
그런데 다음과 같은 살인청부업자를 보자. 과연 어떤 생각부터 들까?
- 일단은 살인청부업자가 맞음.
- 업무 도중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인 대상이나 의뢰인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을 가짐.
- 개를 키우고 집 안에 개 돌보미를 들이기도 하며 가명으로 카운슬링도 받은 적이 있음.
- 가끔씩 임무에 사실상 실패하거나, 실수를 저지르거나 뜬금없이 애국심에 도취되기도 함.
- 이름은 ‘켈러’라고 부르면 적절함.
이 사람, 살인청부업자가 맞기는 할까? 탄생은 1990년대로 매튜 스커더에 비하면 까마득한 후배이기는 하지만, 살인청부업자 켈러 시리즈 또한 로렌스 블록의 인기 시리즈이다. 도저히 이 작가, 하드보일드랑은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하지만 켈러 시리즈 또한 매튜 스커더 시리즈 못지않은 하드보일드 소설이며, 살인청부업자라는 테마를 통해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켈러는 ‘살인해드립니다(Hit Man)’이라는 제목의 단편집으로 국내에 소개된 인물이다. 그는 분명히 나름대로 프로페셔널한 살인청부업자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책에 들어서 그는 점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개인적인 사생활을 가지기 시작한다.
내가 죽이는 이 사람들은 왜 이럴까? 의뢰인들은 어떤 걸까? 내가 왜 이런, 사람을 죽이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켈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러한 질문들은 ‘살인청부업자’라는 무거운 소재에 가려져 있던 다른 타인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한편으로 켈러는 탐정으로서는 드물게 개인적인 사생활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강아지인 넬슨을 키우고, 강아지 돌보미도 고용하는 등 개인적인 여가를 즐긴다. ‘살인해드립니다’는 켈러 본인의 살인청부업보다 이 켈러의 여가생활이 서사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편이다.
죽음을 다루는 사람 앞에 이러한 사생활이 있다니, 켈러 스스로도 기묘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투의 묘사가 작품 속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죽음과 삶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죽음이 있어야 삶이 찬미받을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던가? 살인청부업자의 일상이라는 기묘한 테마는 개인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켈러 시리즈는 현재 미국에서 다섯 권이 나와 있는데, 아직까지 국내에는 첫 번째 권밖에 정발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재미난 켈러의 일상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 ‘도둑은 선택할 수 없다’
버니 로덴바 시리즈는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시리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서로 직접 읽어도 재미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시리즈이다. 문학적 성취라면 로렌스 블록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떨어질지 몰라도, ‘재미’면만 따지면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을 정발하지 않다니, 출판사는 대체 얼마나 게으른 거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로 발랄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버니 로덴바’는 범죄 소설 주인공으로는 특이하게도 ‘도둑’이다. 솔직히 이제 와서 신기할 일은 없다. 범죄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많으니까. 에드거 상 수상목록만 봐도 ‘뉴욕을 털어라(The Hot Rock)’, ‘록 아티스트’만 해도 주인공들이 도둑 아닌가.
솔직히 새로울 것도 없는 범죄자 주인공이라면, 버니 로덴바 시리즈만의 독특한 점은 뭔데? 그것은 바로 버니 로덴바가 작품의 ‘메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버니 로덴바는 물론 도둑이고, 작품 속에서도 물건을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서랍 속에 숨겨진 총을 보고도 훔치기는커녕 손대기조차 두려워하는 그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도둑질이 하고싶을 뿐.
그러나 그는 자꾸만 살인에 얽혀든다. 그가 물건을 훔치러 간 자리에 우연히 시체가 있어 범인으로 몰리거나, 그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 독살당하는 등 김전일이나 코난과 같이 죽음을 부르는 사나이에 가깝다.
버니 로덴바는 이러한 사건을 스스로의 놀라운 추리력으로 해결하여 누명을 벗는다. 그 점에서 버니 로덴바는 어떻게 해야 난관을 벗어날까? 라는 문제가 주어지고, 주인공이 그에 대답하는 본격 추리소설에 가까운 편이다.
그럼 하드보일드는 어디에 있는 건데? 어디가 하드보일드한 거지? 그 점에 대해서는 하드보일드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하드보일드는 혼란한 사회상의 배경을 두고 있다. 도시는 범죄로 만연하고, 경찰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개인적이고 자주권을 가진 탐정 뿐이다.
하지만 버니 로덴바는 1970년대에 매튜 스커더보다 조금 늦게 탄생했다. 그가 탄생한 시점은 비록 냉전의 두려움 아래에 있기는 해도 1920 ~ 1930년대보다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전적인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
답은 역설적으로, 주인공을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버니 로덴바 시리즈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공권력도 탐정도 아니다. 범죄자이며 사건의 주동자로 몰리는 또 다른 범죄자이다. 로렌스 블록의 다른 시리즈들에 비해 밝고 유쾌한 버니 로덴바 시리즈이지만, 이 점은 작품을 ‘본격 미스터리’로 만드는 동시에 ‘하드보일드 활극’으로 만들어버린다. 참으로 아이러닉한 특이점이 아닐 수가 없다.
떳떳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가 쓴 누명을 벗으려는 버니 로덴바의 유쾌한 활극은 비록 문학적인 사유는 다른 시리즈보다 부족할 지라도, 매우 유쾌하고 경쾌한 재미를 가진 독특한 작품이다. 내년에는 부디 ‘버니 로덴바’ 시리즈가 정발되어서 영어 원서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재미있는 시리즈를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빈다.
- 마지막으로, ‘하드보일드’에 빌어.
장르는 변하는 개념이다. 하드보일드라는 범주는 처음에는 특정 범주만을 포함했지만, 이제는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되거나, 혹은 의미가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사라진다는 건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장르라고 해서 문학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순수와 장르로 구분하는 것은 상업적이라면 모를까, 예술적으로는 무의미하다.
로렌스 블록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빠진, 모자란 인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런 작품들은 얼핏 보면 익살스러워서 도무지 하드보일드한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로렌스 블록의 작품 속에는 ‘하드보일드’의 또 다른 미래가 숨어있다. 로렌스 블록의 작품은 하드보일드의 지평을 더 넓은 곳으로 이끌었으며, 스스로의 작품에 문학적인 가치를 새기기도 했다.
로렌스 블록은 스스로의 작품을 통해 장르가 가진 가능성을 활짝 열어제낀 셈이다. 그런 점에서 로렌스 블록은 진정으로 멋지고, ‘하드보일드’한 ‘후까시’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멋있는 작가의 책이 좀 더 널리 알려지고, 많이 정발되고, 잘 팔리기를 바라면서 글을 끝맺는다.
원래는 엘릭시르 공모전에 내려고 했는데, 다쓰고 보니 너무 얄팍해서 그냥 개인 블로그 업로드 용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책 먹는 티룸 링크는 여기 :-> http://blog.naver.com/leedasaem/221067665593
덧붙여, 제 작품인 ‘소녀 류하 시리즈’가 조기 완결 및 리뷰 공모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