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흐르는 강
신길역에서 나와 빈속에 털어 넣은 에스프레소는 그리 맛있지 않았다. 옆에 진열된 피노 누아도 굴비처럼 여러 번 쳐다보았지만, 도무지 그럴싸한 미미美味를 떠올릴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벗은 장갑에는 서울의 한기가 가시지 않았고, 포장지를 뜯지 않은 설탕은 바깥세상이 얼마나 신랄한지를 알지 못했다. 잘 내린 커피조차 즐길 수 없다니, 참으로 지독한 날인 게 분명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카페를 나와 서울교로 걸어갔다. 영등포 로터리 공사 때문에 가는 길도 몹시 어수선했다. 길은 온통 회색빛이었고 골목골목 그림자가 뒤덮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교에 올라 여의도 생태공원을 바라보니 겨울이 무색하게 푸르렀다. 역사는 어디로 범람할지를 모르는데, 공원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습지의 물길은 무심하게도 평온히 흐르고 있었다. 하늘은 가릴 것 없이 화창한 날씨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역수는 차다더니, 요즘 자연은 인간이 미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일까. 선경후정이라는 것도 이제는 옛말인가보다.
그리고 그 물길과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사람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 수는 늘어갔고, 그들의 의지와 목적도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지자 사람들은 한 덩이의 군집처럼 일제히 여의도공원으로 향했고, 그런 유기체의 흐름이 무질서로 나아가려는 걸 통제하고자 수많은 경찰버스가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공원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고성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무어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명확했다. 이번 사태의 주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 시민들은 하나의 열망을 안고 그들의 대의를 짊어진 전당으로 향했다.
여의도공원의 광장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 강은 자꾸만, 끊이지 않고 국회의사당으로 흘렀다.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김건희 특검법과 탄핵 표결의 날이었다.
2차 계엄의 불안으로 뒤숭숭했던 전날 밤이 무색하게, 시민들은 중무장을 하고 나와 국회의사당 집회에 참여했다. 가는 길에도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여의도로 가는 것일까 싶어 설렜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여의도로 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필자에게 크게 와닿았다. 계엄군이 국회를 급습한 것이 불과 나흘 전이었는데 이렇게들 기꺼이 모이다니, 근현대사의 비극 속에 다져진 이 나라의 시민 의식이란 건 실로 대단한 것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런 수요에 공급이 맞물리려는지, 군데군데 콘도그나 어묵 같은 음식을 팔며 사람들의 기운을 보충하고 있었다. 무려 이름이 ‘탄핵 오뎅’인 것도 있었으니, 민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히 알만도 했다. 이런 종류의 상술은 미워할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보니 시위용 물품을 나눠주는 곳도 보였다. 방식이야 어떻든 모두 집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선 커피를 선결제하고 집회 참가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장사가 잘되어 좋긴 하지만 다음엔 축제 같은 이유로 잘됐으면 좋겠다’라며 하소연을 했더란다. 김이 나는 음식을 후후 불며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란 다 비슷한 것이리라.
집회 현장 내부로 향할수록 스피커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렸고, 현수막과 피켓에 걸린 이름들도 하나둘 구분되기 시작했다. 숙명여대를 포함한 31개 대학에서 시국 선언을 하고자 나왔고, 각지 도당‧시당 등 지역위원회의 인솔에 따라 수많은 시민이 질서 있게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서는 버스를 대절해 왔다고도 하니, 아마도 전국 단위의 참여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많은 민의가 한데 모였음에도 집회는 통제력을 유지한 채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능숙하게 상황을 조율하는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 정치의 규준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온 여러 정당,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회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성숙한 시민들이 자아낸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못지않게, 국회의사당 인근에는 상당한 수의 경찰이 인파와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쩌면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그러나 다시는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충분하고도 많은 인원이었다. 통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통제를 잘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12월 3일 비상계엄을 겪은 뒤로 시민과 경찰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는 듯했다. 누군가는 지나가다 스스럼없이 현장 상황을 묻기도 했지만, 또 누군가는 혼잡하니 이동해달라는 요구에 ‘경찰의 지시는 따르지 않겠다’라는 듯 날을 세우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계엄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에 경찰 지휘부가 동조하는 모양새였으니, 시민 입장에서는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깃발이 한마음으로 뭉친 자리였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집단도 존재했다. (공교롭게도 집회 현장 우측이었던) 금융사 건물 아래에는, “탄핵 저지”와 “야당 당대표 구속”을 구호로 외치는 집회가 어울리지 않게 눈에 띄기도 했다. 이들의 독특한 세계관은 너무나도 단순한 나머지, 단 한 명의 명시적인 공적을 제거하면 그들의 인지 부조화가 해결될 거라는 모험적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신실한 시종들을 내려다보는 게 경제 신화를 떠받드는 자본 시장의 간판들이라 생각하니 조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도착 당시에도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지만, 전철역 출구를 포함해 시민의 행렬은 끝도 없이 몰려와 빈자리를 채워갔다. 국회의사당역은 표결 시작 3시간 전부터 몇몇 출구를 봉쇄해야 했고, 오후 3시가 넘어서는 9호선이 2개 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등의 안전 조치가 이어졌다. 필자가 한숨 돌리러 공원 광장에 나왔을 때도 국회를 향한 인파는 그칠 줄 모르고 흘렀다. 이 속도로 얼마간 모으면 전 국민이 한곳에 모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장대한 물결이었다. 여의도 위쪽으로는 한강이 흐른다면, 그 중심에는 시민의 강이 흘렀다. 그리고 그 강은 국회를 향하고 있었다. 탄핵을 향한 시민의 의지는 매우 확고하다.
시민들이 여의도공원을 가로질러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모습.
(이제 독자께서도 아셨다시피, 필자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한국의 집회‧시위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개선한 실천론의 집약체이자 첨단 시민 문화이다. 한때는 대규모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어낸 것으로 세계에 명망을 드높였고, 비록 비폭력 투쟁의 명확한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사회 구성원의 존속과 운동의 지속성 측면에서 평가했을 때 이는 결코 저평가되어서는 안 될 특성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형태의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흘린 피도 적지 않다. 불의와 폭력에 항거하다 당신의 생명을 불사르고 떠난 위인들은 지금도 여러 형태로 짙게 각인되어 있다. 또한,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듯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공권력의 탄압에 사람들도 대응할 필요가 있었던 만큼, 더 강경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다 하여 함부로 ‘타성에 젖었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상당한 역사적 배경과 실천가의 노력 위에 선 사회운동이지만, 도시의 기능과 주최 측의 사전 준비만 믿고 간단히 참여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제약이 따른다. 만일 집회에 참여할 경우, 되도록 만전을 기한 상태에서 출발하기를 필자는 권한다. 그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축적된 노하우와 필자가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취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집회‧시위가 있는 지역의 관할 경찰청에서는 신고된 주요 집회의 장소/시간/행진 경로 등을 일자별로 공시하고 있다. 집회 자체 안내문이나 공지에서도 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는 하나, 당일 신고된 집회 전체의 대략적인 일정을 파악하는 것도 참여 고려 시 도움이 된다. 이는 공신력을 보장할 수 있으므로 정보 혼선 시 교차 검증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2. 단체 참가의 경우 사전에 ‘특정 가능한’ 인솔자 호칭을 분명히 해두는 편이 좋다. 대규모 집회에서는 수많은 위원장/단체장이 현장에 모이기 때문에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호칭은 유사시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
3. 상황별로 다르기는 하나, 인원이 많아지면 통신에도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메신저나 SNS 등 빈번한 데이터 송수신을 전제로 하는 수단은 그 저하가 현저히 체감될 정도다. 근방에 임시로 이동기지국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면 이를 해소할 방도가 없는 만큼, 합류는 미리 정해진 장소에서 진행하고 그 뒤 집회 현장으로 이동하기를 바란다.
4. 집회 현장은 대부분 야외이기 때문에 기후에 따라 환경이 변할 수 있다. 필히 당일 기온과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 등을 확인하고, 이에 맞게 복장과 도구를 잘 갖추고 나서야 한다. 특히 당뇨/천식/고혈압 및 그 외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집회 현장뿐 아니라 이동 중 의료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공회전 중 발생하는 매연이나 간접흡연도 요인에 포함되어 있으니, 되도록 마스크를 챙기시라 필자는 권하는 바이다.
5. 공식적인 집회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화장실을 이용하는 인원과 빈도는 증가한다. 화장실은 미리, 가능할 때 이용해야 한다. 사람도 생리 현상을 겪는 동물이다. 장시간 진행하는 집회라면 여러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다. 근처에 건물이나 역사가 아무리 많아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온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6. 참가 전에 수분 및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예비 식량을 챙기길 바란다. 도심지라면 근처에 상가나 노점상이 있고, 이외에도 각종 필수 물품을 나누는 사람도 있겠으나, 세상만사 기대대로 되리란 법은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대사량과 건강 상태가 있고, 집회 진행에 따라 자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도 감안하면, 예비가 필요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최소한 예비 식수 정도는 챙기기를 바란다.
7. 집회는 편한 공간에서 진행되지는 않는다. 도로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몇 시간을 버틸 수도 있고, 가두행진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이 화장실 이용이 쉽지 않다. 참가 당일에는 되도록 날것이나 기름진 음식 등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 식사를 피하고, 물은 입을 적시는 정도로 드문드문 마시는 것이 이롭다. 중요하니 두 번 강조하겠다. 사람도 생리 현상을 겪는 동물이다.
8. 퇴진 및 탄핵을 촉구하는 이번 집회의 경우, 공권력과의 충돌 가능성을 완전배제할 수는 없다. 집회‧시위 도중 고립되면 유사시 도움을 받기 힘들어질 수 있으니 되도록 주변 사람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좋다. 또, 경찰의 임의동행 요구는 거부할 수 있고, 불법행위가 아닌 한 채증(증거 수집)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혹시 문제가 발생한다면 곳곳에 민변 변호단이 있으니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을 찾도록 하자.
9. 마지막으로, 10.29 참사를 잊지 않기를 바라며 적는다. 군중 밀집 지역에서 인파 속에 갇혔을 때는 호흡이 원활하도록 흉부를 보호해야 한다. 팔짱을 끼거나 소지품을 이용해 공간을 확보하고, 넘어졌을 때는 무릎을 올리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가슴이 압박되지 않도록 한다. 빠져나올 때는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여 가장자리로 향하는 것이 원칙이다. 안전을 확보한 후에는 상황을 살펴 필요한 조처를 하고, 반드시 전문가와 동료 시민의 도움을 전제로 구조에 조력하길 바란다.
필자가 견문록 따위를 구태여 남기고자 하는 이유는 슬프지만 간단하다. 계엄이 종료된 후에도 국가 정상화를 위한 투쟁이 쉽지 않을 것이고, 그 기간은 상당히 길어질 것이라 필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우려한 대로, 탄핵 표결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불성립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 집회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모여서 싸워야 할지, 다른 형식의 효과적인 투쟁을 모색하고 전개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그저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번 집회의 전반적인 인상을 글로 남겨 누군가의 시선 속에 남겨두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접근성이 높아지고 투쟁 동력이 조금이나마 보존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필자는 만족할 따름이다.
본래 8일 새벽에는 완성해 올리려고 했던 기록인데, 피로와 무력감에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시간은 가는 데 늦는 일이 잦아지니 큰일입니다. 이제 진짜 늦어진 작품을 마저 집필하러 가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