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안전을 돌아보며
최근 약속이 생겨,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던 곳을 다시 걷게 되었다. 역사를 나가면 보이는 석조 건물의 서늘한 풍채에는 여전히 기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공사비가 없어 건설이 중단된 신도시의 흉물만큼은 아니겠지만, 인도에 바짝 붙어 장식물을 과시하는 현대 문명의 첨탑은 언제나 필자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고는 했다. 작년에 보았을 때도 이음매에서 새어 나오는 물질의 속삭임에 섬찟했는데, 아나톨리아에서 있었던 비극을 상기하고 보니 그때 이상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걸음은 자꾸만 빨라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비우고 있었다.
약속 장소에서는 오랜 친우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각자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아직은 같은 노선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고, 같은 학문을 배워 견해를 나눌 수 있다 자부하는 동지였다. 그날따라 필자와 친우는 문명사회의 변두리에 진 그림자를 통감하고, 안식처sanctuary가 없는 현실에 관해 주절거리거나 주저했다. 분노와 무력감에 침잠해 언어가 질식하자 우리는 여느 글쟁이처럼 화제를 돌렸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세상을 밝혔던 등대 같은 사람의 이야기로 작은 희망을 피웠다. 그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힘없는 사람은 웃으면서 떠날 수 없었다. 요즘은 그런 세상이었다.
작년에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으며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그 시간만큼 낡아버린 담화들을 주머니에서 조금씩 꺼냈다. 시와 소설을 지금도 쓰고 있는 고집스러움, 빛이 나지만 이끌리지는 않았던 간판들, 마르스의 사두전차, 샌드위치가 되어 떠나는 현대인들. 그러다 평택 제빵 공장에서 있었던 비극, 그리고 인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노동 환경으로 화두가 옮겨 갔다. 웃는 얼굴로 헤어지기도 쉽지 않았다. 자꾸만 그런 이야기가 삶의 테두리에서 맴돌았다. 버스를 탄 친우를 배웅한 뒤 어스름이 오기 전의 저녁 거리를 걸었다. 헛헛한 마음에 전에도 들렀던 국숫집에 들어가 국수를 시켰고, 잘 마시지도 않던 국물을 전부 들이켜고 귀갓길로 돌아갔다. 참으로 정직하고 좋은 국수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다.
돌아가는 동안 5일 전의 기묘한 경험이 떠올랐다. 같은 노선이어서 그런 건지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 기억이었다. 땀과 피로가 묻어나는 손으로 지하철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붙잡으려 했는데, 그곳에 웬 흠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물에 난 흠결은 종종 사람의 권태와 주의를 빨아들이지만, 손잡이를 종단하는 그 깊은 상처는 단순히 끌어당기는 걸 넘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안전의 취약성을 경고하려는 듯 필자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왔다. 짐을 들고 있는 오른손보다 흠집이 난 손잡이를 붙잡은 왼손이 신경 쓰였다. 그 하루는 그런 종류의 교훈이 자꾸만 발을 들여놓는 날이었다.
그날 CPR 및 자동제세동기 교육 중에 작은 일이 생겼었다. 교육용으로 준비된 제세동기 중 하나가 결함이 있었는지 패드의 접착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시 붙여보기도 하고 센서를 꾹 눌러보기도 했지만, 기계에서는 패드가 제대로 접착되어야 한다는 소리만 반복되었다. 교육이 끝나고 휴식하는 도중 섬뜩한 생각이 필자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실제 상황이었다면…….’ 인력에 의한 구급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교육 내용과 맞물리며 상상은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부피를 늘렸다. ‘현장에 있는 유일한 AED가 공허한 안내 음성만을 반복했다면, 나는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감히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교육용 AED 패드의 수명은 1년이고, 실제로 사용되는 일회용 패드의 수명은 2년이다. AED 배터리는 비충전식으로 4~5년의 보증기간을 지닌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명시된 관리 지침에 따르면, 1인 이상(정‧부)의 관리책임자를 지정하여 매월 1회 이상 점검을 실시해야 하며, 제조일자로부터 최대 10년을 초과한 장비의 경우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해당 지침은 시‧군‧구 내의 모든 설치기관에 적용되며, 경로당‧관리사무소‧지구대‧체육관‧기술연구원‧공원 등 그 종류를 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기관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준칙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부족함이 있기 마련이고, 작은 오해와 실수, 그리고 방임이 생겨나며 오류는 연간 누적된다. 관리 담당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거나, 점검 후 제세동기를 보관함에 돌려놓지 않는다거나, 배터리 손실을 기록하지 않고 모두 ‘양호’ 표시하여 점검표를 조작하는 등, 관리 부실은 여러 형태로 매년 발생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하인리히의 법칙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안전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하인리히의 삼각형은 그 명성과 친숙함에 비하면 좀처럼 피부로 느끼기 힘든 모델이다. 안전의 최전선에 선 이들이 자신이 초석을 쌓고 있다는 자각 없이 무상해 사고 300건을 일으키고, 그 위에 경미한 사고 29건이, 그리고 꼭대기에는 누군가의 신체와 기억에 영원히 새겨질 중대한 사고 1건이 자리하고 있다는 삼각형 사고 모델. 그 피라미드에는 7만5천 건의 사고 사례로부터 도출된 유의미한 통계적 결론이 반영되어 있으나, 통계적 연구가 반드시 인과성 증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수량화된 수반성은 실제 사고 역학과는 거리가 있는 만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인리히의 모델로부터 우리가 진정 도출해야 하는 교훈은 기실 ‘사고 수의 감소’가 아니다. 위계가 분명한 모델이라면 첨점이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삼각형은 본질적으로 꼭짓점(각)이 3개인 도형이다.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사고의 첨예한 지점은 어디서든 관측될 수 있으며, 사고 하나하나가 그 1건의 중대 사고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필자는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정해야 하는 도식은 300:29:1이 아니라, γ→β→α의 관계로 정의되어야 한다. 즉, 매 순간 정기적으로 예방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1건의 중대 사고(α)’이다. 그리고 이는 몇몇 개인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마땅한 태도이다.
돌이켜보면, 2022년 10월 29일의 압사 사고도 심폐소생술과 AED가 절실했었다. 사고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사망 원인은 ‘질식으로 인한 심정지’였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러 시민이 한 사람이라도 더 회생할 수 있기를 바라며 CPR을 수행했다. 떠나간 사람을 되돌릴 길이 없는 사건에 가정을 끌고 오는 것은 무례한 일일지도 모르나, ‘만약 인근 파출소와 지하철역 이외에도 AED가 설치된 기관이 더 있었더라면 사망자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는 무의미한 질문이기도 하다. 현장에 사용 가능한 AED 수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0.29 참사에서 진정 부족했던 게 과연 그것뿐이었는가?
200J의 충격과 충전된 캐패시터는 한 사람을 확실하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회용 패드와 비충전 배터리가 아무리 많다 한들 수십 수백의 저산소증 환자를 모두 회생시킬 수는 없다. 미약한 전자기력을 바탕으로 한 물질의 우유적인 형질 ― 손쉽게 결손되는 사물에 만인의 생명을 맡기는 것은 그저 하나의 광기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적 준비는 중대 사고 예방의 유일한 충분조건이 아니다. 당시에도 갈구하였고, 지금도 우리를 목마르게 하는 선행 조건은 다름 아닌 ‘사회적 차원의 안전’이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컨트롤 타워의 침묵이 참사 이후의 비통한 적막감을 의미한다는 것을 꾸준히 상기해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반복하는 동안, 애석하게도 한국은 안전이라는 의제에 있어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사고 후 수습과 대응 절차 점검은 언제나 정파 논리에 의해 최우선과제에서 밀려나기 일쑤였다. 사고 원인을 피해자 특성에서 찾는 귀인 오류가 대중매체에 여과 없이 사용되었고, 국가 전체가 부담해야 할 인명의 무게와 책임은 어느새 지불 가능한 무언가로 변해버렸다.
사회안전망이 불확실한 한국은 이제 금줄 하나조차도 귀한 나라가 되었다. 작년 이태원에서도 눈에 띄는 통제선 하나만 있었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사고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사회에 널린 것이라곤 침몰선, 부동산 도미노, 가연성 슬레이트 지붕, 휠체어로 갈 수 없는 길, 제거된 안전 덮개, 그리고 무예산 복지뿐이다. 무심한 자연 앞에 인간은 헐벗은 아이와 같고, 공동체가 돌보지 않는 자연인의 끝은 고립무원에 누워 여느 짐승처럼 죽는 것이다. 의지할 벽도 울타리도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늙고 병이 들 생각을 하니 그저 앞이 깜깜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세월호 사고는 벌써 9주기를 앞두고 있고, 10.29 참사도 벌써 작년의 일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필자에게도 세월호 사고는 가슴에 단단히 박혀 좀처럼 내려가지를 않는 어떤 체증으로 남아 있다.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배가 한정적이었던 탓에, 자신도 청해진해운 배를 탄 적이 있어 사고 소식에 놀랐었다고 술회하는 사람을 더러 찾을 수 있고, 필자 또한 당시 사고를 그런 심정으로 회고하는 한 사람이다. 별로 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각자 어느 사고로부터 죽음을 면해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아니던가?
문득 어느 장소에 잠재한 위험을 감지할 때마다 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 땅에 안전이란 실재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화강암 지대의 배타적인 민족 사회는 그 야만성과 방만한 태도를 충분히 보여준 것 같다. 일부 시민과 그들의 대변인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던 여러 안전장치를 해체하는 데 동의했고, 때로는 사고 유족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한다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쉽게 기삿거리가 되는 개인의 방종 이상으로, 명확한 실체 없이 드리운 무도한 사회 분위기는 이토록 무섭기만 하다.
글을 마무리하는 도중에는, 서울시가 10.29 참사 유족에게 광장 사용 변상금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건국 이래 한국의 봄은 언제나 혹독한 계절이었다. 마치 세월호 사고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 세대가 꺾여버린 채 10년이 지나고, 그때도 그날의 아픔으로 절뚝거리며 새로운 참사를 맞이하게 될까 봐 심히 우려스럽다. 다 식은 커피로 목구멍을 적시지 말 걸 그랬나, 무력하게 한숨만 푹푹 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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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앞서 두서 없이 지리멸렬한 글이지만, 이 시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결례를 무릅쓰고 이 상태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고치지 않은 문장을 성급히 내놓아 그저 죄송한 마음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