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sf 광인의 sf소설 추천 모음 (1)

분류: 책, 글쓴이: 담장, 23년 3월, 댓글6, 읽음: 154

제가 sf랑 여성서사 광인인데 영업을 단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브릿g 자유게시판에도 올려봅니다. 저를 믿으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오타쿠의 추천을 믿어보세요.

 

1. 유령해마, 문목하

4천만 명의 인생은 인공위성에 놓고 왔다.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너만을 생각하며 보냈다. 내가 구하지 않았고 구하지 못했던 한 명의 아이를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빌어먹을!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잖아. 날 의도적으로 계속 지켜봤느냐는 말이었어! ”

“지켜봤느냐고? 당연히 지켜봤지. “

이게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여겨야 하는 인공지능 해마가 한 대사라니…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단 한 명의 모든 생애를 지켜보던 해마가 결국엔 인간처럼 결점투성이가 되어버리고 그 결점이 인간성을, 연대를 말한다는 게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제가 인외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고 그중 sf에서는 인공지능이랑 로봇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 대나무 같은 취향을 만들어 준 게 바로 이 작품이에요. 저는 이 작품 때문에 sf 광인이 되어 버렸답니다…

제가 2년 동안 한 달에 세 번씩 꼬박꼬박 영업하고 외친 탓에 저한테 영업당해서 읽은 사람이 벌써 서른 명입니다… 그리고 다 행복해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읽어보셔야 해요… 문목하 작가님이 쓰신 다른 작품으로 ‘돌이킬 수 있는’도 있는데 이건 sf+판타지(초능력)+로맨스고 정말 재밌어요. 작가님 신작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2. 기파, 박해울

전력이 다 끊길 때까지, 영상은 언제고 다시 재생되고, 재생될 것이었다.

” 나는 -가 아닙니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

-은 00을 겨누던 칼끝을 돌려 자신을 향하게 했다.

호화 크루즈 우주선이 난파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승객들 사이에서 전염병까지 도는 상황, 우주선에는 기파라는 의사가 홀로 승객들을 치료합니다. 지구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던 그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에 접근한 충담이 그곳의 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예요.

이게 sf인가 호러인가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들다가 모든 비밀이 풀리고 진실을 마주했을 때 진짜 울게 되는 그런 작품이에요. 스포가 될까봐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여운으로 따지면 이 작품이 단연 최고예요. 정말 잘 쓴 글을 읽으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sf의 정석 중의 정석이자 아름다운 작품이 바로 기파예요.

저 이거 읽고 울었어요. 꼭 읽어주시길…

 

3. 막, 지다웨이

그녀의 환상은 먹는 것이었다. 모모는 앤디를 삼켜 자신의 뱃속에 집어 넣고 싶었다. 또한 앤디가 자신을 먹어 치우기를 바랐다.

막, 이 세상에 대한 모모의 인상이다. 서른 살의 모모에게 세상은 언제나 한 겹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 느껴졌다.

이건 꽤 최근에 읽은 대만 sf 작품인데 읽고 울었어요. 이렇게 말하니까 제 눈물샘이 진짜 약한 것 같은데 저 굉장히 책 평가에 박한 편이거든요… 90년대 소설로 알고 있는데 그걸 다 읽고 나서 알게 됐어요. 문체가 세련되고 거기서 나오는 담론들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2000년대 초반 인간들은 해저 도시로 내려가 생활하게 되고 모모는 그곳에서 성공한 피부 관리사로 활동해요.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영위하면서도 과거를 회상하는, 그렇게 실마리가 모이다 모여 결말부에서 엄청난 반전으로 독자를 깜짝 놀래키는 이야기예요.

최진영의 구의 증명과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가 떠오르는 분위기에 치밀하고 여운이 남는 서사로 꽁꽁 싸맨 작품이었고 인생작이에요. 식인 묘사가 조금 있지만 저는 그게 오히려 더 좋았어요. 결말 찾아보지 말고 직접 끝까지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만 작가라 작품 번역이 많이 안 되어 있던데 지다웨이 소설 중에 ‘감각세계’라고 있거든요? 그거 제발 황금가지에서 번역해주세요… 현기증 나요… 대만 sf 작품들이 많이 번역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4.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 봐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김초엽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척수반사처럼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오염된 지구, 포스트 아포칼립스와도 같은 곳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온실로 향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예요. 여자들의 사랑… 읽다가 기절할 뻔했어요 너무 좋아서… 마지막이 진짜 정말 아름다워서 다 읽고도 술 취한 것처럼 이야기에 취한 채 살아갔네요. 읽은지 조금 오래됐는데 한 번 더 읽어야겠어요. 김초엽의 단편집 ‘행성어 서점’, ‘방금 떠나온 세계’도 읽어주세요.

 

5. 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오늘도 단어는 내리지 않을 모양이었다. 화성에 도착하고 일주일째, 매일 아침 혹시나 하는 망므으로 실눈부터 떠보지만 끝내 실망하며 잠드는 나날이었다.

만 15세 즈음, 사람에겐 단어가 하나씩 내립니다. 주지의 사실이지요.

낱말 하나가 우아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내 머리 위에 쏟아지는 걸 상상했는데 이거 뭔가 망한 거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락사 센터에 들어간 주인공과 그를 돌보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인 ‘마지막 로그’, 만 15세가 되면 누구에게나 단어가 내리고 그 단어로 삶이 결정된다는 표제작 단편 ‘단어가 내려온다’, 그리고 그 외의 아름다운 SF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읽으면서 어쩐지 김보영의 다섯 번째 감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알던 세상이 한바탕 뒤집히면서 속껍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달까요.

 

일단 여기까지만 추천드릴게요. 추천하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조금 더 정리해서 올려야겠어요. 지금은 한국 SF 명예의 전당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도 보석 같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 조만간 소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목록에 있는 책 읽으시면 혼잣말처럼 말하셔도 괜찮으니 부디 댓글로 책 감상평 남겨주세요 :) … 제가 남의 감상평 읽는 거 진짜 진짜 좋아하거든요… 저랑 죽을 때까지 sf 소설 읽어주세요. 둘 중 지는 쪽이 마인드 업로딩 당해서 죽은 뒤에도 전자책 도서관에서 헤매기로…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D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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