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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은 줘야할 때 뺏어가고, 뺏어갈 때 주는군요

분류: 수다, 글쓴이: 샘물, 22년 12월, 댓글1, 읽음: 122

제 글솜씨는 형편없습니다, 정확히는 글에 담는 내용 수준이 형편없다고 봐야겠죠. 삶은 과정주의로 살더라도 돈은 결과주의로 나오듯, 모든 것은 조회수가 증명합니다. 제 손가락으로 이야기하니 또 슬퍼지는군요. 따흐흑.

 

글을 때려칠 생각은 요 근래 한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더 쓰고 싶었지요. 마지막에 그나마 써봤던 글이 모 회사 공모전에 올린 글인데… 그 회사가 공중분해되서 함께 부끄러운 작품이 되버렸으니 언젠가 거기 썼던 캐릭터들을 제 소설 속에 넣어 요양시킬 생각입니다. 암튼, 기껏 상업적으로 각잡고 써보려 했더니 결과도 과정도 터져버려서 (그 여파일지 몰라도) 작문을 ‘점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부싯돌을 암만 돌려도 불이 안 켜지는 라이터, 끔찍하지요. 도구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나니 슬럼프도 더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때려친 전 직장에서도 현실이란 핑계로 직급에 맞지 않는 쪼임을 당하다 보니 ‘이게 살자고 죽을 짓을 하는 건지, 죽자고 살고싶은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아, 방금 문장은 앞뒤를 바꿔 쓰셔도 좋고, 제가 요즘 너무 맘에 들게 만든 문장이라 과용하고 있습니다.

 

근데 큰 불행 끝에 작은 행운이 오던 삶인지라, 뭐라도 오겠구나 싶었던 순간에 지인의 전화가 왔습니다. 인력이 필요한데 딱 조건이 저하고 맞다면서요. 집에서 나태하게 보내던 시절을 떠올리니 차라리 밖에서 구르는 게 낫겠다 싶어 냅다 승낙했죠. 직장까진 아니고 꽤 규모 큰 알바를 하는 중입니다. 전 직장은 출근날에 퇴근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이 직장은 적어도 오늘 저녁 중에 제 집에 돌려보내주니 이게 워라밸이구나 싶습니다.

 

물론 작은 행운을 받았다면 큰 불행을 한 무더기 얹어야겠지요. 공사장마냥 힘쓰고 적당히 인력 감독하는 업무인줄 알았더니만 전 직장에서 하던 일을 듣곤 고용주가 눈이 돌아 저한테 중추 업무를 맡겼습니다. 처음엔 ‘야 너 이거 고용사기야 ㅋㅋ’ 하면서 불렀던 지인을 놀렸지만 이제는 놀릴 힘도 없습니다. 저도 지쳤는데 그 지인은 자기 업무도 힘들어서 저와 일을 나누려고 불렀거든요. 역시 모든 자본가는 핏빛서린 프롤레타리아의 창끝에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겁니다. 오늘도 제 내면의 붉은 영혼이 꿈틀대는군요.

 

하지만 언제나 보스 뒤에 ‘그래 내가 흑막이다’라고 말하는 쓰레기가 있는 법, 이 일을 할수록 대체 이 거대한 규모의 사업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것인지 제 이성으로는 분석할 수 없었습니다. 지인에게 물었죠, 너 나를 불렀을 때부터 이 정도 규모의 일인 걸 알았냐고. 지인 왈, 정부기관에서 예산을 과하게 던져줬는데 그게 이 사단을 만들었다, 라는군요. 역시 이런 촌극의 최종 흑막은 (양지에 있는) 그림자 정부가 제격이지요.

 

근데 참… 뭣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요즘 썩 맘에 듭니다. 아이디어가 유연해진 느낌입니다. 업무효율은 바닥이지만 온갖 생각이 들더군요. 어째서 소설적 영감은 제가 고난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다가오는 것인지… 꼭 글 쓸 시간이 있으면 안 떠오르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 쓸 시간이 없습니다. 프로들은 원하는 때에 작문을 한다지만 저같은 허접은 역시 아직 그 경지까진 못가는 모양입니다.

 

올해 마지막인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하는데…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업무 프로세스와 미성숙한 어른 형체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연말은 적어도 저처럼 끝내지 마셨음 좋겠습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웃음)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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