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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MCU를 포기하고 핵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

분류: 영화, 글쓴이: 아무강아지, 19년 5월, 댓글1, 읽음: 135

 

엔드게임 봤는데 어벤져스에 백인여자흑인자본가는 다 있는데 마르크스주의자만 없더라.”

이 친구가 언제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러갈까 궁금했었다교우관계가 좁아 딱히 떠들 사람이 없었던 게 큰 이유였다더욱이엔드게임을 보고 엄청나게 실망했던 나라서 그런지 같이 실망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친구는 어벤져서 인피니티 워도 보지 않은이른바 스콧 랭 루트를 타고 엔드게임을 본 친구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런저런대로 만족했다고는 하지만 저 치명적인 한 마디를 나에게 던져주었다그렇다다양성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어벤져스에 노동계급은 없다그나마 원작에서 노동 계급의 역할을 담당했던 게 스파이더맨이지만오히려 MCU에서의 스파이더맨은 자본주의의 가족이 되었다그나마 꼽자면 스콧 랭앤트맨 답게 개미 취급이다.

나는 아이언맨 1부터 어벤져스가 탄생하는 걸 바라보았고아이언맨 3, 윈터 솔져앤트맨 등이 나올 때만 해도 마블 영화에 환호하며 즐겼던 세대였다지금과는 다르게 나는 영화에 하나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마블 영화가 개봉했다고만 하면 연례행사처럼 극장에 들어가고는 했다.

블랙 팬서까지 나름 관심을 가지며 보던 때내가 MCU를 의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으니 바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이었다초기의 MCU를 보고 자란 세대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이나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단언하건대나는 지금도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도대체 그 영화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단 말인가이것은 내가 충실한 원작 팬이고원작을 살리려 한 샘 레이미의 3부작이나 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보지 않았다.)을 선호한 내 입맛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보다는 의적 벌쳐에 이입했다벌쳐가 자본가의 낙하산 기업에 의해 피해를 입는 과정이 영화 시작부터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오고벌쳐가 지금껏 마블 유니버스에 등장했던 악인에 비하면 굉장히 선량한(?) 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스파이더맨보다는 벌쳐를 응원하게 되었다이정도로 당위성이 없다고 할 만한 히어로는 없다고 할 정도로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끔찍했다그래지금까지의 해석과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왜 아이언맨이 그의 대부가 되어야 하는가많은 사람들이 ‘MCU와의 연관을 위해라고 옹호하지만나는 케빈 파이기의 변명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영화는 영화여야 한다태생적으로 산업적 예술이라 불리는 영화이기는 하지만이러한 소위 유니버스 장사질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만 만든 작품을 잘라 팔고 관객을 자꾸만 극장에 오도록 기만하는 행위이다처음 어벤져스가 나오고 어벤져스 2가 나올때만 해도 신나했던 나였지만깨달음이 너무 늦은 것이다.

다시금 스파이더맨으로 돌아가서스파이더맨의 원래 이미지는 굉장히 소시민적이었다.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인 동시에 연애를 하고 사소한 잡범들을 잡으며 선량한 사람들을 구하는 친절한 이웃이었다.

이런 슈퍼히어로가 이런 친절한 이웃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비단 현재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어제 본 1978년에 나온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은다소 개봉연도를 생각하면 유치하기는 하지만 신선한 슈퍼히어로 영화였다그 시기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한 시기였다 보니악당과의 사투액션보다는 사람들을 구하는 슈퍼맨의 선량한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었다그리고 멋지고 올드하게 비행하는 슈퍼맨의 모습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리처드 도너의 슈퍼맨그리고 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공통점을 짚어보자면 서민의 등장이다서민들은 초인의 등장에 충격을 받고도움을 받으며초인을 도와주기까지 한다이런 서민들의 모습은 물론 코믹스에서도 등장하는영화만의 요소는 아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민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고비중있게 찍을 정도로 슈퍼히어로가 서민적친화적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MCU 영화인 아이언맨에서도슈퍼히어로인 아이언맨이 난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군사를 제압하는 장면이 있었다토르 때만 하더라도 우스꽝스런 옷차림과 이상한 행동을 하는 토르를 신비하게 쳐다보는 시민들이 있었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시민은 사라져버렸다그들은 재난 블록버스터의 난민들에 다름없게 되었다.

시민은 사라져버리고 영웅들만의 신화가 남았다이제 더 이상 서민들이 힘을 합쳐 슈퍼히어로를 지지하거나아니면 서민을 친절하게 구하는 히어로는 없다존재한다고 해도 스크린은 서민들을 포착하지 않으며심지어 어벤져스 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슈퍼히어로는 오히려 서민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장치로 그려진다.

마침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이르면 이것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된다이제 더 이상 슈퍼히어로에게 연인이 있을 필요는 없다이는 배우들이 물러나는 등의 뒷사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서사에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남는다마블이 23편의 영화를 찍어오면서 뒤로 갈수록 지지해왔던 것은 다양성과 가족애이다하지만 서민이 없는데 어떻게 가족애가 있을 수 있는가그나마 작품 속에서 서민으로 등장하는 것은 호크아이나스파이더맨스콧 랭이다그러나 호크아이는 솔로 작품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없고스파이더맨은 토니 스타크의 양아들이 되었다.

의외로 앤트맨의 스콧 랭은 만족스럽게 보았다그것은 지금 마블이 추구하는 가족주의적인 노선이 앤트맨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랐기 때문이다앤트맨의 스콧 랭은 이혼한 남편이자 전과자이지만 딸을 사랑하고정의감이 있는 소시민으로 과학 기술을 악용하려는 기업가와 대적한다스콧 랭을 돕는 행크 핌과 호프 핌은 편부가정이다이들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일반 부르주아지적인 가정상과 다르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이런 가정상은 부르주아지적 가정상으로 대체된다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호크아이가 처음 테스트 삼아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남편은 히어로로 일하고아내는 집안일을 하며 꼭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다얼마나 평범하고 부르주아지적인 가정상인가심지어 아이언맨도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세상의 반이 줄어든 마당에 그들의 모습은 매우 평안해 보인다다시 생각해보니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메이 숙모의 존재는 배제당했다마블이 상정하는 가정상은 오로지 부르주아지적 가부장제 가족뿐인 것인가?

스콧 랭을 제외하면 마블에 이제 소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나마 MCU 내의 소시민적 활동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으로 넷플릭스 시리즈가 있었지만이젠 디즈니가 가져가버렸다디즈니가 그걸로 뭘 할 것인가영화로 리부트라도 할 셈인가?

폭스의 엑스맨들도 디즈니 산하로 가버리고소니도 반쯤 스파이더맨의 파편을 붙잡고 남아있는 상황에서 케빈 파이기의 다음 행보는 의심스럽기 그지없다코믹스에서도 거의 안 쓰는 평행 세계 이야기를 영화에서도 풀겠다니얼마나 큰 영화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인가?

이젠 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마블은 이미 제국을 건설했다그 자리에 흑인여성의 자리는 있어도 노동자의 자리는 없다솔직히 말해흑인과 여성의 자리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아무리 봐도 그냥 흑인과 여성들에게 영화를 팔기 위해 흑인과 여성을 끼워넣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DC를 기대할까헬보이도 망한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이기는 하지만그 미래가 순탄해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샤잠!의 결과물은 입양 가족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못 내리고 얼버무렸을지언정 관객을 기만하지는 않았다과잉액션화된 슈퍼히어로 시장에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영화이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히어로 영화에서 탈출하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코믹스까지 챙겨보는 너드새끼가 아닌가. ‘히어로물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는 친구의 말에 이제는 동의할 수 있다그럼에도 자꾸 보게 되는 것은 무슨 블랙 코미디인가나 자신의 꼴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웃기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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