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MCU를 포기하고 핵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
“야, 엔드게임 봤는데 어벤져스에 백인, 여자, 흑인, 자본가는 다 있는데 마르크스주의자만 없더라.”
이 친구가 언제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보러갈까 궁금했었다. 교우관계가 좁아 딱히 떠들 사람이 없었던 게 큰 이유였다. 더욱이, 엔드게임을 보고 엄청나게 실망했던 나라서 그런지 같이 실망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친구는 어벤져서 : 인피니티 워도 보지 않은, 이른바 ‘스콧 랭 루트‘를 타고 엔드게임을 본 친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런저런대로 만족했다고는 하지만 저 치명적인 한 마디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그렇다. 다양성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어벤져스에 노동계급은 없다. 그나마 원작에서 노동 계급의 역할을 담당했던 게 스파이더맨이지만, 오히려 MCU에서의 스파이더맨은 자본주의의 가족이 되었다. 그나마 꼽자면 스콧 랭? 앤트맨 답게 개미 취급이다.
나는 아이언맨 1부터 어벤져스가 탄생하는 걸 바라보았고, 아이언맨 3, 윈터 솔져, 앤트맨 등이 나올 때만 해도 마블 영화에 환호하며 즐겼던 세대였다. 지금과는 다르게 나는 영화에 하나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블 영화가 개봉했다고만 하면 연례행사처럼 극장에 들어가고는 했다.
블랙 팬서까지 나름 관심을 가지며 보던 때, 내가 MCU를 의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으니 바로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었다. 초기의 MCU를 보고 자란 세대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이나, 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단언하건대, 나는 지금도 스파이더맨 : 홈커밍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그 영화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단 말인가. 이것은 내가 충실한 원작 팬이고, 원작을 살리려 한 샘 레이미의 3부작이나 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보지 않았다.)을 선호한 내 입맛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스파이더맨 : 홈커밍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보다는 의적 벌쳐에 이입했다. 벌쳐가 자본가의 낙하산 기업에 의해 피해를 입는 과정이 영화 시작부터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오고, 벌쳐가 지금껏 마블 유니버스에 등장했던 악인에 비하면 굉장히 선량한(?) 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스파이더맨보다는 벌쳐를 응원하게 되었다. 이정도로 당위성이 없다고 할 만한 히어로는 없다고 할 정도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끔찍했다. 그래, 지금까지의 해석과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아이언맨이 그의 대부가 되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MCU와의 연관을 위해’라고 옹호하지만, 나는 케빈 파이기의 변명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영화는 영화여야 한다. 태생적으로 산업적 예술이라 불리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소위 ‘유니버스 장사질’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만 만든 작품을 잘라 팔고 관객을 자꾸만 극장에 오도록 기만하는 행위이다. 처음 어벤져스가 나오고 어벤져스 2가 나올때만 해도 신나했던 나였지만, 깨달음이 너무 늦은 것이다.
다시금 스파이더맨으로 돌아가서, 스파이더맨의 원래 이미지는 굉장히 소시민적이었다.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인 동시에 연애를 하고 사소한 잡범들을 잡으며 선량한 사람들을 구하는 친절한 이웃이었다.
이런 슈퍼히어로가 이런 친절한 이웃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비단 현재의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제 본 1978년에 나온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은, 다소 개봉연도를 생각하면 유치하기는 하지만 신선한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그 시기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한 시기였다 보니, 악당과의 사투, 액션보다는 사람들을 구하는 슈퍼맨의 선량한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멋지고 올드하게 비행하는 슈퍼맨의 모습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 그리고 소니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공통점을 짚어보자면 ‘서민의 등장‘이다. 서민들은 초인의 등장에 충격을 받고, 도움을 받으며, 초인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이런 서민들의 모습은 물론 코믹스에서도 등장하는, 영화만의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민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비중있게 찍을 정도로 슈퍼히어로가 서민적친화적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MCU 영화인 아이언맨에서도, 슈퍼히어로인 아이언맨이 난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군사를 제압하는 장면이 있었다. 토르 때만 하더라도 우스꽝스런 옷차림과 이상한 행동을 하는 토르를 신비하게 쳐다보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시민은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재난 블록버스터의 난민들에 다름없게 되었다.
시민은 사라져버리고 영웅들만의 신화가 남았다. 이제 더 이상 서민들이 힘을 합쳐 슈퍼히어로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서민을 친절하게 구하는 히어로는 없다. 존재한다고 해도 스크린은 서민들을 포착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벤져스 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슈퍼히어로는 오히려 서민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장치로 그려진다.
마침내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 이르면 이것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된다. 이제 더 이상 슈퍼히어로에게 연인이 있을 필요는 없다. 이는 배우들이 물러나는 등의 뒷사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사에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남는다. 마블이 23편의 영화를 찍어오면서 뒤로 갈수록 지지해왔던 것은 다양성과 가족애이다. 하지만 서민이 없는데 어떻게 가족애가 있을 수 있는가? 그나마 작품 속에서 서민으로 등장하는 것은 호크아이나, 스파이더맨, 스콧 랭이다. 그러나 호크아이는 솔로 작품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없고, 스파이더맨은 토니 스타크의 양아들이 되었다.
의외로 앤트맨의 스콧 랭은 만족스럽게 보았다. 그것은 지금 마블이 추구하는 가족주의적인 노선이 앤트맨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랐기 때문이다. 앤트맨의 스콧 랭은 이혼한 남편이자 전과자이지만 딸을 사랑하고, 정의감이 있는 소시민으로 과학 기술을 악용하려는 기업가와 대적한다. 스콧 랭을 돕는 행크 핌과 호프 핌은 편부가정이다. 이들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일반 부르주아지적인 가정상과 다르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이런 가정상은 부르주아지적 가정상으로 대체된다.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호크아이가 처음 테스트 삼아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 남편은 히어로로 일하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며 꼭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다. 얼마나 평범하고 부르주아지적인 가정상인가? 심지어 아이언맨도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 세상의 반이 줄어든 마당에 그들의 모습은 매우 평안해 보인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 메이 숙모의 존재는 배제당했다. 마블이 상정하는 가정상은 오로지 부르주아지적 가부장제 가족뿐인 것인가?
스콧 랭을 제외하면 마블에 이제 소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MCU 내의 소시민적 활동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으로 넷플릭스 시리즈가 있었지만, 이젠 디즈니가 가져가버렸다. 디즈니가 그걸로 뭘 할 것인가? 영화로 리부트라도 할 셈인가?
폭스의 엑스맨들도 디즈니 산하로 가버리고, 소니도 반쯤 스파이더맨의 파편을 붙잡고 남아있는 상황에서 케빈 파이기의 다음 행보는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코믹스에서도 거의 안 쓰는 평행 세계 이야기를 영화에서도 풀겠다니, 얼마나 큰 영화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인가?
이젠 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마블은 이미 제국을 건설했다. 그 자리에 흑인, 여성의 자리는 있어도 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솔직히 말해, 흑인과 여성의 자리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봐도 그냥 흑인과 여성들에게 영화를 팔기 위해 흑인과 여성을 끼워넣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DC를 기대할까? 헬보이도 망한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미래가 순탄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샤잠!의 결과물은 입양 가족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못 내리고 얼버무렸을지언정 관객을 기만하지는 않았다. 과잉액션화된 슈퍼히어로 시장에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영화이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히어로 영화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코믹스까지 챙겨보는 너드새끼가 아닌가. ‘히어로물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는 친구의 말에 이제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자꾸 보게 되는 것은 무슨 블랙 코미디인가. 나 자신의 꼴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웃기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