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로맨스릴러 공모전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몇몇 소재가 겹치고 결말이 어색하게 급변하거나 늘어지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작풍이 다양하고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릴러라는 장르가 어떻게 결합했든 본질적으로 ‘로맨스’에 무게를 둔 작품들이 보다 흡입력이 있고 서사가 단단해 보였던 점이었습니다. 로맨스라는 마침표에 스릴러라는 물음표를 더하며 진실의 겹에 다가가는 장르적 요소가 균형감 있게 버무러진 결과였다고 봅니다.
‘제거해야 할 바이러스가 죽은 남자 친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쿠키」는 연인과 사별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엉뚱하고 독특한 설정으로 무겁지 않게 풀어낸 유쾌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한정함으로써 스릴러의 요소를 잊지 않고 살린 점도 무척 재치 있었지만 무엇보다 SF 색채가 가장 빛난던 작품이었습니다.
「여우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여우’에 관한 스릴러이기도 하며 병기된 한자 ‘儷遇’처럼 짝, 혹은 배우자를 만나는 ‘당신과 저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분문 중에서) 잔혹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잘 짜인 스토리와 아름다운 문장, 여우 설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좋은 작품이지만 여우 설화로 인한 익숙한 전개가 아쉬운 점으로 남았습니다.
「사랑해, 송곳니」는 낯익은 소재를 낯설게 재배치한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일제 강점기 미술 작품과 의문의 실종사건이 중심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 섬세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공모전의 취지에 맞게 로맨스와 스릴러가 조화로운 작품입니다. 다만 주인공 다현이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부분이 좀 더 설득력 있고 동적으로 전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무우」는 감상적이고 몽환적인 문장 속에 비극적인 낭만이 돋보이는 단편입니다. 한국 근대소설의 아름다운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소설은 극사실주의같으면서도 환상소설 같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특유의 작법일 수도 있지만 난해한 혹은 산만한 문장 구조가 작품의 장점을 가립니다.
‘위험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본문 인용)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작히나 못난 것」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결국 어리석게 빠져들게 된 무서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가장 큰 저주이자 두려운 공포일터, 저주술사와 공포소설 작가의 로맨스라는 설정이 아깝지 않게 끝까지 긴장감을 선사한, 본 공모전 주제에 가장 충실했던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사슴이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는 고전가요 ‘청산별곡’이 내러이터의 역할을 한 무척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비유로써, 은유로써 이야기 사이사이에서 노래하는 고전시가 ‘청산별곡’이 과하지 않게 개입하며 서정성이 뛰어난 이야기로 이끈, 신선한 잔흔이 가시지 않는 응모작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뱀』은 구약 성서 속 인물 이름과 성경 구절의 의미에 대한 호기심, 이야기가 어디까지 현실이고 환상일까 하는 의구심 등이 추리의 단서가 되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로베르토 인노체티의 『마지막 휴양지』의 바닷가 호텔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 작품은 그러한 영리한 장치들 덕분에 끝까지 흥미로웠지만 단서의 퍼즐을 다 맞추기도 전에 얼버무리듯 결말에 도달한 듯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짦은 글 속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산만하지 않고 안정된 전개를 펼친 「도련님과 아가씨와 나」는 캐릭터의 시선과 상황을 적절히 배치한 단편의 좋은 예입니다. 로맨스릴러라는 장르의 관점에서 보자면 특이할 것 없는 소재일 수 있지만 뱀파이어조차 ‘살고 싶어. 간절하게’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함이 아픈 시대에 대한 여운으로 묵직하게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덫 위에 눕다」는 로맨스적 요소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초반부터 미스터리한 인물과 전개로 스피디하고 흡입력 높은 스릴러의 묘미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보통 예상치 못한 빌런의 등장이나 전환이 작품의 긴장감을 극에 치닫게 하는 데 비해 이 작품에서는 강렬하기는 하나 소름 돋는 반전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마무리된 느낌이었습니다.
「인형가」는 로맨스와 호러 혹은 스릴러의 장르적 장점이 균형감 있게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두 남녀의 애처로운 운명과 사랑, 개성 다른 예술가로서의 집념이 순식간에 광기어린 공포로 전개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로맨스 장르의 확장성을 생각하면 가시감이 느껴지는 전개이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에 매료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루 개성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심사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공모전에 응모한 작가들은 장르 문학상의 경계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장르적 결합에 무한한 상상력을 더했습니다. 진심 어린 감탄과 함께 응원의 박수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