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위원1
주제 공모전의 심사를 할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 지점은 늘 같다. 완성도나 재미만이 아니라 공모전 주제에도 부합해야 하는데, 이 요건을 모두 갖춘 작품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공모전은 ‘커피와 차’를 장르적 소재와 결합한 주제였기에, 좋은 작품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새벽의 커피가게에」와 「결혼계약서」, 「기억의 커피」 역시 개별적인 장점이 하나씩은 확보되어 눈에 띈 작품들이었다. 「어서 오세요, 새벽의 커피가게에」는 주제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연작 형태로 흥미롭게 풀어냈지만, 강렬한 한 방이 부족했다. 「결혼계약서」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커피’가 주제보단 소재 요소로 강하게 작용한 게 아쉬웠다. 「기억의 커피」는 구성이 매우 독창적이었으나, 이야기 얼개가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아 아쉬웠다.
「한 잔의 피와 커피」, 「미망인이 주는 박하차는 위험하다」, 「카페 하모니」, 「어떤 커피부터 사원복지라고 할 수 있는가」, 「시어머니와의 티타임」는 모두 주제의식이나 완성도, 흡인력 등 개별적인 장점이 잘 살아있던 작품이라 마지막까지 고심하게 되었다. 앞선 요건을 모두를 만족하기에는 약간씩 부족했지만, 각기의 장점 또한 뛰어나 어느 하나 골라내기 어려웠다.
긴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어떤 커피부터 사원복지라고 할 수 있는가」와 「시어머니와의 티타임」를 본심에 올렸다. 「어떤 커피부터 사원복지라고 할 수 있는가」는 흡혈귀라는 설정과 커피의 각성 요소를 잘 조합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뻔함’이 있었지만 이를 상쇄하는 강렬하면서도 거침없는 전개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예심위원2
커피와 차를 주제로 한 제4회 테이스티 문학상은 다양한 장르에 주제를 풀어낸 작품이 많았다. 다만, 커피나 차가 비중 있게 등장하지 않거나 장르적 성격이 없는 작품도 적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찻집의 숙녀」와 「녹차꽃」은 잔잔한 분위기가 매력이 있었으나 임팩트 있는 사건과 장르적 색채가 부족했다. 「스페셜 블렌드」는 강렬한 설정이 눈길을 끌었으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끝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엉겅퀴 언덕에서」는 도입부가 흥미로웠으나 사건의 당위성이 부족했다. 「마지막 홍차」와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 두 작품 모두 서정적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으나 「마지막 홍차」는 단조로운 전개가 아쉬웠고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는 이야기가 크게 새롭지 않았다.
본심에 올리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고독(蠱毒)」은 차 애호가인 무림의 고수들이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으로 무협과 추리 장르에 차라는 소재를 녹여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좀비보호구역」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과 좀비 바이러스에서 회복 중인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린 작품으로 커피를 매개로 화합하는 결말이 따듯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서정적 작품이 많았던 가운데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는 독특한 사건과 끝까지 잃지 않는 유쾌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예심위원3
지난 테이스티 문학상 주제였던 ‘디저트’ 편에 이어, 그에 곁들일 더없이 적합한 주제로 이어진 제4회 테이스티 문학상은 커피와 차를 소재로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돋보이는 편이었다. 판타지와 추리 장르로 양분되는 주요 갈래 속에서도 괴짜 감성의 음모론이나 감성 SF,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추리물과 무협 등 다채로운 시도들을 고루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한밤중의 티파티」는 학창시절의 한 페이지를 엿본 것 같은 환상적인 소동을 유쾌하게 담아냈으나 다소 어색한 문체와 더불어 장르적 임팩트가 부족하게 느껴졌고, 「그곳에 ‘커피 5’」 역시 미지의 공간에 대한 충분한 마무리가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인상이었다. 「카페 데드엔딩」은 팬데믹 시대에서 이국의 카페 투어가 주는 여흥은 즐거웠으나 그 계기가 된 사건의짜임이나 캐릭터 설정, 전개 방식이 다소 거칠고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커피가 식기 전에 *** **드립니다.」는 경성을 배경으로 한 중심 캐릭터들의 활약은 일면 매력적이었으나 트릭이 가볍게 느껴졌고 연작을 염두에 둔 시리즈의 특성상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너에게, 우리의 향기로」는 흥미로운 발상과 감성적인 분위기가 돋보였으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익숙한 장치들이 고유의 매력을 전달하는 데 실패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아홉 잔의 차」는 장르 특성에 맞는 문체와 차에 대해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사가 고루 매력적이었으나 사연의 얽힘이 다소 진부하고 맺음이 허무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2900원」은 두 인물의 생활상에서 기인한 차이와 연대를 매끄럽게 담아내는 서사가 인상적이었고, 「저 바다 건너에」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한 과잉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흡인력이 있었으나, 두 작품 모두 결정적인 장르적 특색이 부족하여 고민 끝에 본심에는 올리지 못했다.
다음은 본심에 올린 작품들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로스터리 카페의 바리스타와 작가 지망생 단골손님이 뜻하지않게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주제와 연결 지어 전반적으로 매끄럽게 담아냈다는 인상이다. 「커피과다복용의 유래」는 사건의 계기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지만 신선한 발상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로 다가왔고, 마지막으로 「녹색빛 연구」는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 다소 전형적인 서사와 패러디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완결성이 돋보였다.
예심위원4
일상에 깊숙하게 녹아 있는 커피와 차를 주제로 했던 만큼 제4회 테이스티 문학상의 작품들이 어떤 ‘테이스티’한 다양성을 보여줄지 예심 시작 전부터 많은 기대감이 들었다. 따듯하고 서정적인 느낌부터 차갑고 오싹한 느낌까지 다양한 색채를 지닌 다양한 작품들이 추리, 호러, SF, 판타지,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며 응모되었는데, (비록 아쉽게도 읽다가 원두를 갈러 뛰어갈 정도로 테이스티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없었지만) 눈에 띄는 작품들이 꽤 많았기에 고심 끝에 작품들을 골라야 했다.
다음 몇 작품들은 아쉽지만 본심에 올리지 못했다. 살인 후 정전이 일어난 카페를 배경으로 우연히 그곳에 들른 작가 탐정이 사건을 해명하는 「순환고리」는 플롯은 단순한 편이고 결말이 지나친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극적인 설정이 재미를 주는 단편이었다. 결말에서 멋들어진 모습으로 떠나는 탐정을 보며 연작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환각찻집」은 매끄럽게 풀리는 작품이었다. 하룻밤 ‘무언가’에 홀렸다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구전 괴담을 현대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좋았으나, 결말이 익히 짐작 가능하고 많이 잔잔해서 조금 아쉽다. 조금 더 공포가 강조되거나, 아니면 환상에 개연성이 부여되면 좋을 듯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읍내 다방 살인마』는 독특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강간이 피해자의 흠이 되는 사회 분위기, 나태하고 부패한 경찰,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당시 시대상 등이 입담 좋은(그러나 선인이라 보기는 어려운) 화자의 입을 통해서 유쾌한 한편 씁쓸하게 서술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당시 사건을 지켜본 경찰의 회고록이 있다면 정말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테이스티 문학 공모전의 주제 의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배경에 가끔 다방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음료가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살청(殺靑)」은 인도 차 농장을 배경으로 미신적인 연쇄 살인 사건을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로 소화한 작품으로 반전이 돋보였다. 다만 전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고, 캐릭터의 당위성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본선에는 다음 두 작품을 올린다. 「검은 짐승들」은 차(茶)라는 소재를 호러 미스터리와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었다. 전형적인 캐릭터성에도 그 캐릭터들이 제 기능을 다함에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눈물이 달콤한 이유」는 로맨스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었는데, 다소 설명이 부족한 점은 단편의 빠른 전개로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작중 차와 커피의 존재가 소설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예심위원5
어느덧 4회를 맞은 테이스티 공모전에는 100여 편의 많은 응모작이 들어왔다. 이번 회 주제가 커피와 차였기에 자연스럽게 무대가 카페로 이어진 작품들이 많았고, 역시 카페란 곳이 위안과 충전의 장소임을 실감했다. 다만, 흥미로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소재보다는 공간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쨌거나 팬데믹이 길어지다 보니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장면들에도 왠지 비일상적인 묘사를 보는 듯한 기묘한 그리움을 느끼고는 했는데, 빠르게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원해 본다.
본심에 올린 작품인 「포기 크랙(Foggy Crack)」은 식자재 회사 직원의 죽음에 얽힌 전말을 1인 심부름센터 업자가 풀어 나가는 내용으로, 차라는 소재를 살인 미스터리와 잘 결합시켰으며 홍차를 우릴 때 볼 수 있는 현상에서 따온 제목도 내용과 잘 어우러졌다.
아쉽게도 본심에 올리지는 못하였으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살인자의 고백」은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한 조선 시대 여성이 차를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경위를 그린 작품으로, 비극적인 사건을 담담한 편지글 형식으로 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지만 이야기가 너무 단조롭게 흘러가기에 후반부에 좀 더 긴장감을 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죽음을 인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난 영혼이 거치는 ‘마지막 정류장’이란 저승의 찻집을 무대로 펼쳐지는 「즉사했어요?」는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요소들과 소재의 활용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 간의 조합이 좋았고 저승추리물로서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다루」는 중국차 전문점에서 신입 바리스타를 채용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그려지는데, 동양 판타지적 요소와 아기자기함이 돋보였지만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기에 세 편의 연작으로는 부족해 보였고 결론적으로 미완의 작품으로 그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본심 진출작]
어떤 커피부터 사원복지라고 할 수 있는가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눈물이 달콤한 이유
포기 크랙(Foggy Crack)
커피 과다복용의 유래
녹색빛 연구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고독
좀비보호구역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
검은 짐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