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디한 일상 블랙코미디 ‘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작가 인터뷰

2019.10.28

‘탐정 전일도 사건집’ 한켠 작가를 만나다

 

실종 사건이 전문인 20대 비혼 여성 탐정 전일도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고민과 사건을 듣고 해결하는 『탐정 전일도 사건집』 출간을 기념해 한켠 작가님을 뵙고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캐릭터가 살아 숨 쉬고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쓰는 비법부터 작품에서 밝혀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와 후속작 이야기, 작품에 등장한 음식과 모자 사랑까지 작품 집필의 전반적 과정과 작가님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00 욕심이 있어서요.”라는 발언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역대급으로 빵 터진 사연들, 드디어 공개합니다!

 

 

들어가는 이야기

Q.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탐정 전일도의 이야기가 실린 『탐정 전일도 사건집』 출간을 기념하여 한켠 작가님과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럼 우선, 가볍게 작가님과 작품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가벼운 소개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생계형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취미형 작가가 된 한켠입니다. 하기 싫은 일 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하다 보니까 어느덧 소설을 쓰고 있더라고요.
나사 한두 개쯤 빠진 인간들을 좋아하고요. 매일 아침 ‘오늘 점심은 뭐 먹지?’라고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웃음)

 

Q. 어떻게 한켠이라는 작가명을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A. 아…… 이래서 중2병 걸렸을 때 필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진지)

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인데 저는 종교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 혼자 소외된 느낌도 들고 아웃사이더가 된 것도 같아서 (혼자 한쪽 편에 있다는 뜻으로) ‘한켠’이라고 지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엄청 중2병스럽죠……. 그때 지은 필명을 브릿G에서도 작가명으로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는데, 어차피 제가 글로 쓸 인물들이 주류는 아닐 것 같아서 어울리겠다 싶었죠. (웃음)

(※ ‘켠’은 ‘쪽’이나 ‘편’을 나타내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표준어는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TMI 좋아하는 편집부)

 

 

전일도의 탄생, 그리고 세세한 캐릭터 설정들

Q. 사실, 이 연작선은 테이스티 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원래 당시 다른 응모작 중에 똑같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FSM)’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었고 그에 영감을 얻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듯한데, 이에 얽힌 전일도의 탄생 비화를 좀 듣고 싶어요. 뒤에 차츰 풀린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면, 처음 이 작품을 쓰실 때부터 ‘전일도’에게 이렇게 긴 생명력을 부여하실 계획이 있으셨던 건가요?

A. 처음에는 전일도가 아니라 스테파니로 시작했어요.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를 하나 쓰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테이스티 공모전 주제가 면이더라고요. 면 하면 파스타, 파스타 하면 소개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에 다른 작품에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가 나와서 그 종교를 알게 되었는데, ‘이런 종교의 신자라면 엉뚱한 사람이겠다. 그래, 스파게티 괴물교를 믿는 신자가 소개팅하는 내용을 쓰자.’가 되었어요.

스테파니가 소개팅하는 의뢰인 남자는 모델이 저고요. (웃음) 작품 피드백이나 단문응원에서 ‘이 남자, 장기도 떼어 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기도 했죠. (웃음)

의뢰인들이 허술하다 보니까 탐정이 냉철하면 균형이 안 맞겠다 싶었어요. 사실 처음엔 탐정물을 쓸 생각은 없었고, ‘이건 로코야, 로코야.’라고 세뇌하며 일단 탐정도 귀여운 인물이면 어떨까 상상했죠. 그렇지만 모든 등장인물이 허술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시니컬한 면도 있는 탐정을 생각한 게 전일도예요.

처음엔 연작을 쓸 생각은 없었고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 하나만 쓸 생각이었는데요. 제가 원래 소설을 쓸 때 소설에는 나오지 않더라도 인물의 가족관계나 성격, 패션, 말투 등을 세세하게 설정하고서 쓰기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뒷이야기에 가족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요. 두 번째 단편 「헬로, 욜로」쓸 때 부동산 이야기를 써야겠다 싶었는데요. 현재 한국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쓸 만한 화자로 제일 적당한 인물이 전일도여서 재출연시켰던 거죠. (웃음)

 

Q. 전일도 이외의 다른 인물들도 설정이 세세하겠네요.

A. 전일도 오빠인 전가정도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에서는 군대에 있었는데, 쓰다보니까 제대를 시켜야겠더라고요. 처음에 전일도 캐릭터 설정할 때 일도에게 오빠가 있다고 해 놓고, 오빠까지 출연시키면 번거로우니까 ‘그럼 군대를 보내놓자.’라고 했던 건데요. 군대를 왜 보냈을까 후회하기도 했죠. 연애하다가 입대하면 안 되니까 다행인 듯도 하지만요. (웃음)

 

Q. 「스파게티 이름으로 라멘」에서 ‘웬만하면 남한테 뭐 시키거나 강요하지 말고 너도 맘대로 살아라’라는 8계명이 나오는데요. 인상 깊었던 다른 교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8계명을 다 고려해 보긴 했는데…… 써먹을 게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웃음) 만약 테이스티 문학상의 주제로 ‘맥주’가 나온다면 8계명 중 다른 하나를 활용할 수 있을지도요.

(*잠시 맥주, 소주, 와인 등 알코올을 소재로 한 테이스티 문학상의 가능성에 대해 시끌벅적한 논의를 하며 인터뷰가 중단되었습니다.)

◆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의 8계명(8개의 웬만하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 웬만하면 나를 믿는다고 남들보다 성스러운 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맘 상하지 않으며, 어차피 안 믿는 자들에게 하려는 말들이 아니므로 말 돌리지 마라.
  • 웬만하면 내 존재를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나 행동들로 그들을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웬만하면 스스로와 파트너에게 해 되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악의에 찬 다른 이들의 생각을 공격하려면 웬만하면 일단 밥은 챙겨 먹고 했으면 좋겠다.
  • 웬만하면 내 신전을 짓는 데 수억금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좋은데 쓸 데가 많다.
  • 웬만하면 내가 임하여 영지를 내린다고 떠들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웃을 사랑하랬다. 좀 알아먹어라.
  • 상대방이 싫어한다면, 웬만하면 남들이 너에게 해주기 바라는 대로도 남들에게 하지 마라. 상대방도 좋아한다면 상관없다.

 

Q. ‘전일도’라는 이름으로 인해서, 탐정 전일도를 남성일 거라는 짐작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사실 전일도는 여성이죠. 작중에 등장하는 전씨 남매의 이름 유래를 생각하면, 매우 유머감도 느껴지는 이름이고 사실 아주 개성적이기도 한데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 주시게 된 배경이 있으실까요?

A. ‘여자는 일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해서 전일도’라는 이름인데요.

처음에 불륜탐정 집안의 후계자인데, 이름이 ‘온전한 가정’이라는 의미에서 ‘가정’이면 재밌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전가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놓고 보니까, 이 이름을 여자한테 주면 낡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 이건 여자한테 붙일 이름은 아니다’ 싶어서 오빠 캐릭터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이후에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고민하다 보니까 ‘사람이 일도 잘하고 가정도 잘 지켜야지. 그래, 넌 일도 잘해야 하니까 일도다!’라는 생각에 ‘전일도’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용꿈이면 면천이라」에도 나오지만, 조상들이 고려 왕조의 왕 씨에서 획을 두 개 더 그어서 전 씨가 되는 설정을 짰기에, 성은 ‘전 씨’여야 했어요.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까 ‘아서 코난 도일’과 ‘김전일’을 합친 듯한 이름이더라고요. ‘괜찮다, 이 이름 정말 좋은 이름이다, 누가 봐도 탐정 같은 이름이다.’ 싶었어요. (웃음)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트렌디한 소재들

Q. 전일도가 만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참 트렌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뉴스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서민 밀착형 고민거리들이랄까, 집값, 교육, 육아, 취업, 비혼, 결혼, 이혼, 왕따, 미투 등등 모든 소재가 다 우리네 ‘지금’ 사는 이야기와 엮여 있죠. 이런 생활 밀착형 소재들은 보통 어디서 구하시나요?

A. 짜고 치는 대답 같지만 정말 신문이나 뉴스에서 봐요. 신문이나 뉴스 볼 때마다, ‘요새 가장 핫한 소재가 무엇일까?’ 하며 찾고 있어요. 물론 매번 트렌디한 소재를 쓰는 건 아니고, 작품을 쓸 때마다 소재는 그때 그때 다른데요. 전일도 시리즈는 처음에 쓸 때부터 ‘현재 한국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자.’라고 콘셉트를 잡았어요. 그런데 매번 새로운 이슈가 터져서 전일도 이야기는 끝도 없이 계속 쓸 수 있을 듯해요.

 

Q. 맞아요, 요즘 뉴스를 보면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고 변화무쌍하죠. 어쨌든 작가님께서 전일도 이야기를 계속 쓰실 수 있을 것 같다니 저희도 기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일도 시리즈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작품이기도 하고, 워낙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보니, 오히려 고민되는 순간도 있으실 듯해요. 작품을 집필하신 때와 책으로 나올 때의 시간차로 인해서 정책이나 이런 것들이 바뀔 수도 있고요. 대표적으로 부동산 정책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정말 정부마다 바뀌기도 하고. 이런 부분은 어떻게 보완하시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풀고 싶으신지요.

A. 말씀하신 부분 때문에 이야기를 그릴 때에 구체적인 현실이나 정책은 가볍게 얹고, 그 밑에 있는 보편적인 욕망을 다루려고 노력했어요. 『탐정 전일도 사건집』에서 가장 트렌디한 소재는 ‘부동산’이었는데요, 아시다시피 갭투자나 청약 등 부동산 정책은 계속 바뀔 수 있죠. 그렇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서 내 나름의 안전망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잖아요. 저는 그런 점, 시대를 지나도 변치 않는 욕망 쪽에 더 집중해서 틀을 그린 다음, 현실적인 세세한 설정은 양념으로 얹으려고 노력했죠.

한편으로는 앞으론 대충 덮지 않고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지금까지는 이야기를 전개할 때에 ‘힐링’의 느낌으로 덮어간 부분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청년실업자들, 즉 취업준비생들이 작품에도 등장하는데, 소설이라서 희망차게 넘어갔지만 사실은 되게 암담하잖아요. ‘10년 후엔 어떻게 될까?’ 하고 날것으로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의 장르는 이제 사회파 추리가 됩니다. (웃음)

 

Q. ‘현실’의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니 생각나네요. 에피소드 중에서 「아무 일도 아니야」도 굉장히 현실적인 결말을 반영한 작품이죠. 그런 논란을 불러온 선생님이 처벌받기보다는 휴직해 버리는 결말. 이야기 속에서 스쿨미투로 휴직한 선생님은 이후에 어떻게 될까요?

A. 그 선생님은 아마 그 이후에도 처벌받지 않을 거예요. 학교 입장에서는 선생님을 처벌하면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돼서 힘들 겁니다. 게다가 사립학교는 교육청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립학교법이 바뀔 뻔했는데, 결국 안 바뀌었어요. 법이 바뀌었으면 이야기를 다 뜯어고쳐야 했을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하. 사립은 정말 이런 문제에 있어서 처벌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휴직도 시끄러우니까 한 거고 처벌은 힘들 거예요.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쓰는 노하우

Q. 읽다 보니까 회사 이야기도 많아 정말 공감이 가더라고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삶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현실감이 생생하게 넘쳐요. 이렇게 폭넓은 연령대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와 닿을 정도로 잘 쓰시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A. 소설을 쓰면 좋은 점이, 모든 일이 다 소재가 된다는 점이거든요. 노년층 이야기의 경우, 부모님이 밖에 나갔다가 오시면서 그날 일을 이야기해 주시면 그걸 듣고 참조하죠. 카페나 길거리 같은 곳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하면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기도 해요. 공공장소에서 10대들이 크게 욕하면 반가울 때도 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 (웃음)

 

Q. 아, 그렇게 항상 관찰을 통해 얻은 것들로 작품을 쓰시니 그토록 인물들이 생생하고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군요! 사실 『탐정 전일도 사건집』은 ‘맛깔스럽다’는 표현이 참 어울리는 작품인 것이, 대사가 어찌나 찰지고 상황도 어쩜 이렇게 현실적인지 모르겠어요. 읽다 보면, 분명 글인데 라디오 사연 듣는 듯 자연스럽게 눈에 콕콕 들어온다고 할지. 게다가 촌철살인하는 명대사가 어찌나 많은지, 분명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상황에 이입하는 독자분들 많으셨을 거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A. 생각이 많고 말이 없는 사람들 있잖아요, 제가 그렇거든요. 사람이 소심하면 글이 자연스럽게 찰 지게 써져요.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 만났을 땐 막상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집에 들어가면 밤새도록 이불킥을 하면서 ‘아,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쓰거든요. 시뮬레이션 막 10번씩 돌려보고요. 하도 머릿속으로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그걸 글로 쓰면 대사가 찰지게 되는가 봐요.

(*밤새 이불킥 하고도 대사를 찰지게 쓸 수 없는 편집부 직원들의 항의가 잠시 있었습니다. 역시 찰진 대사는 작가님의 능력인 것으로 결론!)

Q. 그나저나 찰진 대사 하면 또 이 얘기 안 할 수가 없네요. 브릿G 추천평 때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나의 비혼식」에서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친구가 전하는 사연 같은 경우, 3페이지(종이책 기준)에 걸친 인물 대사가 전혀 긴 줄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읽히거든요. 그게 다 작가님의 시뮬레이션에서 탄생한 대사들이로군요.

A. 제가 연기 욕심이 있어서요.

Q. 네?

A. 퇴고할 때 작품을 대본이라 생각하고 읽으면서 입에 착착 붙게 만들어요.

Q. 푸하하하하!!(대폭소)

A. 언제 한 번 오디오북 제작하실 때 저를…….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집필 비법

Q. 저희가 시리즈화 제안을 드리고 나서, 정말 순식간에 작품집 하나를 뚝딱 완성해 주셨어요. 정말 달필이신 것 같아요. 소재에서부터 출발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시는 건지, 먼저 스토리를 구상하시며 이런 소재를 엮어 넣으시는 건지, 글 쓰시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A. 인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는 인물 쪽입니다. 그래서 소재를 정하면 이 소재에 어울리는 인물을 설정하기 시작해요. 연예인 가상캐스팅을 하기도 하고, 뉴스에서 본 분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주변 사람을 모델로 하기도 하고…… 물론 이때 한 명을 모델로 하면 상대방이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까 두세 명을 섞어 넣어서……. 그렇게 소재에 맞는 인물을 굉장히 자세히 설정하고요. 그 다음에…… 저처럼 연기 욕심 있는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메소드 연기를 시작하는 거죠.

Q. 크크크크킄×100!!(일동 빵 터짐)

A. 인물을 제 안에 받아들여요. (세상 진지)

(*심하게 웃음이 터진 편집부 직원들로 인해 또 한 번의 인터뷰 중단 사태가 있었습니다.)

Q. (눈물을 닦으며) 아니, 그러니까 지금 글을 쓰시기 전에 먼저 연기에 돌입하신다는 거죠? 보통 어디서 연기 연습을 하세요? 소리가 잘 울리는 공간에서 연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A. 옛날에 안전 가옥이라는 곳에 그런 방이 있었는데, 예전에 거기서 종종 연습하곤 했어요. 아마도 방음이 되었던 것 같은데 안 되었다면……. (미소) 지금은 공간 개방을 안 해서 아쉬워요.

회사 화장실에서 작게 작게 소리 내면서 연습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연기톤) 그거,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오.”라는 식으로요. 먼저 말로 해 본 다음에 써 보는 거죠.

 

 

숨은 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

Q. 정말 캐릭터가 살아 숨 쉴 수밖에 없는 작가님의 집필 비법 잘 들었습니다.(웃음) 「나의 비혼식」에서 ‘육아 중인 친구’, ‘옛사랑남’, ‘이혼한 친구’를 차례로 만나러 가는데요, 혹시 이외에 또 축의금을 회수하기 위해 만나는 친구가 있을까요?

A. 더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세 명에서 끊긴 했는데요. 그 외에는 예를 들면 동성 결혼식을 했던 친구를 찾아가 축의금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라든가……. 아니면 전일도 할머니처럼 황혼 결혼을 했던 분께 찾아가서 축의금을 회수하거나 재혼했던 분께 찾아가 보는 등 다양한 결혼을 하신 분들을 찾아가 뜯을 만큼 뜯어 보고 싶긴 했죠. (웃음)

 

Q. 연작 단편집이다 보니 전일도를 포함하여 의뢰인들까지 개성적인 인물들이 참 많이 출현하는데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으실까요? 있으시다면 그 이유는? 또 반대로, 이렇게만 다뤄서 미안하게 생각하시는 인물이 있으실까요? 더 깊이 다뤄보고 싶다거나, 다시 출현시킬 기회를 주고 싶다거나.

A. 「나의 비혼식」에 나왔던 이루리 씨 같은 경우에는 전일도가 탐정 일을 잘할 것 같다고 말하지만, 막상 탐정 일을 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나중에 시누이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일도와 함께 두 사람이 탐정 일을 하게 될 것 같고요.

「우리들의 미래」에 나왔던 할머니의 경우에는 전일도 집안의 사람이라면 개성이 강한 분일 텐데, 개성에 비해서는 활약을 별로 못 했어요. 마지막에 잠깐 파스타 만드는 거 배우면서 수완 씨가 촬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노년 유튜버 스타로 성공하시거나 요식업 쪽으로 성공하시는 등의 이야기도 써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일 애정이 가는 인물은 첫 작품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에서 이름도 안 나오는 의뢰인입니다. 연작이 될 줄 몰라서 이름을 안 정하고 넘어갔는데요. (웃음) 그분이랑 이루리 씨가 저랑 정말 많이 닮은 분들이라서 애정이 가고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허술하게 일 못하는 분들. (웃음) 그러고 보니 전가정을 제외하고는 남자 인물들의 이름이 딱히 나오지 않았네요.

 

Q. 현재로서는 전일도가 만나는 사건들은 현실 탐정(A.K.A 흥신소)이 딱 맞닥뜨릴 법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향후 전일도가 진정 ‘본격 하드보일드 느와르 첩보 액션 탐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나요? 사실 거대한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전일도의 모습을 장편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

A. 강력 범죄 쪽으로는 써 볼 생각이 없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일단, 전일도가 시니컬하면서도 수다스럽고 밝은 캐릭터인데요. 이런 캐릭터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살인 사건에서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 의뢰인하고 수다 떨면서 사건 해결하기가 약간 애매한 거예요. 그래서 살인 사건을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살인 사건은 아니면서 어둠의 거물이 껴 있는 의뢰 건을 찾아보고 있는데요. 강력 범죄 중에 살인이 아닌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사기 같은 건 사람이 죽어 나가진 않고 나중에 돈은 돌려주면 되니까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시리즈가 된다면 2권에서는 사기를 중심으로 할까 싶어요. 사회 초년생들이 방 구하다가 쉽게 당할 만한 부동산 사기 ‘월세였는데 전세 사기였다.’ 같은 거나 ‘대입 사기’, ‘취업 사기’ 등도 생각해 보고 있어요.

 

 

전일도 탐정 시리즈 영상화 가상캐스팅

Q.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에 선정되어 많은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의 관심을 받았는데요, 작가님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영상화가 된다면 주인공들에 캐스팅되었으면 하는 배우가 있다면?

A. 전일도 역에는 진지희 배우님, 김향기 배우님, 서신애 배우님 등 동글동글하면서 저 닮은 20대 여성 배우분들을 생각했습니다. 저 닮았다고 하면 욕 먹으려나요? (웃음) 트위터에서 시크한 박소담 배우님도 추천받았어요. 고미래 씨는 김태리 배우님? 이루리 씨는 30대 여성 배우 중에 짜증 섞인 연기 잘하는 분 누가 있을까요? 여자 이선균 느낌으로요. (웃음)

 

Q. 영상화가 기대되는 캐스팅인데요! 남자 캐릭터의 가상캐스팅도 궁금해요.

A. 남자 역의 배우는 연기력이고 뭐고 무조건 잘생겼으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웃음)

 

 

탐정하면? 모자!

Q. 작품을 보면, (표지 디자이너가 콕 찝어 반영했다시피) 작가님의 모자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이 얘기를 또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어요. 실제로도 모자를 좋아하시나요? 작가 소개말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밀가루 음식 먹으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하셨고. 오늘도 걸맞게 모자를 쓰고 나오시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오늘, 탐정 분위기가 물씬 나시는걸요!

A. 하하, 실제로도 집에 모자가 많아요. 10개 정도? 종류는 주로 버킷햇이나 클로슈햇입니다. 챙이 동그랗게 있는 걸 좋아해요. 모자를 쓰면 얼굴이 반쯤 가려져서 익명성이 생겨서 좋고, 현실적인 이유로는 햇빛을 차단하면서 머리를 안 감아도 된다는 이윤데요.

Q. (일동 웃음)

A. 아니, 아니! 오늘은 머리 감았어요.

Q. (눈물 + 웃음 + 호흡곤란)

A. 미용실도 다녀온 거예요, 허허. (자신감)

아무튼 그런 이유가 있긴 하지만……. 영국 드라마 「셜록」 보다 보면 탐정은 역시 모자를 써야 한다면서 자꾸 셜록한테 모자를 씌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어쨌든 탐정이니까 일도에게 재미로 이것저것 다양한 모자를 씌워 본 것도 있고요. 사실 작품 구상 단계에서 에피소드별로 모자, 음식 등을 처음부터 설정했어요.

 

Q. 다음 시리즈에서도 계속 모자를 등장시킬 예정이신가요? 아무래도 모자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A. 모자의 한계를 헬멧이나 수영모까지 넓히면 무궁무진할 것 같습니다. (웃음)

 

Q. 그러고 보니 베트남 모자 같은 외국 모자도 나오지 않았네요. 썽이랑 함께 해외로 진출해 강력 사건을 해결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A.  썽이는 남자 캐릭터 중에 그나마 정상적인 역할인데, 사실 제가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남자애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

Q. 음식 테마 장르소설 공모전인 테이스티 문학상의 제1, 2회 수상작 작품집 『7맛 7작』의 작가 소개 글에도 “요리는 못하고 미식은 좋아한다. 첫 소개팅에서 파스타 맛에 눈을 떴다. 소개팅 상대는 다시 만나지 ‘않’았지만 입맛은 남아서 가끔 월급날 ‘스페셜 런치’로 파스타를 사 먹곤 한다. 내 글이 ‘월급날의 파스타’ 같은 별미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라고 밝히신 바도 있죠. 가장 좋아하는 밀가루 요리가 있으시다면?

A. 실제로 정말 모자 쓰고 밀가루 음식 먹으러 많이 다닙니다. (웃음) 잔치국수나 빵, 떡꼬치, 파스타를 좋아하는데요. 그중에서 알리오 올리오를 가장 좋아합니다. 알리오 올리오는 맛없기 힘들죠. 아무리 못해도 마늘만 많이 넣으면 웬만하면 맛이 나잖아요.

 

Q. 요리 이야기하니 「우리들의 미래」에 “어린애들은 뜨겁고 매운 거 잘 못 먹으니까 라면에 찬 우유 부으면 빨리 식고 매운 것도 덜 하고 고소한 맛도 나고, 계란까지 풀면 영양가도 있고.”라고 맛있게 묘사된 소울 푸드 ‘우유 라면’이 나오더라고요. 실제로 먹어 보신 요리인지, 레시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실제로 제가 어릴 때 저희 집에서 해 주던 음식이에요. 저는 먹던 거니까 맛있는데 남들은 이게 무슨 괴식이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어릴 때는 라면 국물이 짜서 못 먹으니까 물을 정량 부어서 끓이고 물을 반쯤 따라 버린 후 우유를 붓는 식이었어요. 치즈라면에서 치즈의 기름기를 뺀 맛이 나요. 괴식을 좋아한다면 한번 도전해 보세요.  :fire:

소설마다 음식이 하나씩 등장하는 건 큰 이유는 아니고…… 연기 욕심 때문입니다. (웃음) 연기력 없는 사람이 손이 비면 허전해서 어떻게 할 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음식을 먹이든지 해서 붕 뜨는 장면이나 가만히 있는 장면을 없애겠다고 생각했죠. 갑자기 대화를 시작하면 생뚱맞으니까 무언가를 먹으면서 대화하면 자연스럽잖아요. 그래서 분식집 데려가서 먹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어딜 가서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하여간 자꾸 먹이는 거예요. 다짜고짜 대화하려면 너무 어색하니까요. 머릿속으로 제가 연기하기 편하게요. (웃음) 나중에는 전일도가 심리적으로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려고 음식을 먹이고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라고 해석을 덧붙였어요.

 

 

우리에게 전일도란?

Q. 책날개의 자기소개에서 ‘마음속 말을 문학적으로 했다’는 표현을 하셨죠. 유쾌함과 명랑함이 묻어나는 작가님을 뵈니, 전일도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나 웃음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지는 말아야겠지만, 전일도를 보면 작가님의 페르소나 같다는 생각이 왕왕 듭니다. 전일도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독자분들께는 어떤 의미였으면 하시나요?

A. 전일도는…… 말하자면 그런 친구예요. 원래 본성이 선하고 강한 사람이라서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 마음 다칠 걱정 하지 않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친구 있잖아요. 나한테 가끔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같이 험담해 줄 수 있는 친구, 그럴 때면 기운 나게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할 수 있는 친구죠. 어떤 작가분들은 ‘내 작품 내 새끼’라고 아끼고 하시던데 저는 그런 건 없어요. 그런 종류의 애착이 있지는 않아요. 전일도는 제게 있어서 오히려 애증 있는 애인에 가깝죠. (일동 공감)

아마 앞으로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어두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아무리 어두운 세상에서도 내 편이 한 명쯤은 있을 거잖아요. 만약 없더라도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전일도만은 내 편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고, 그게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에 나오는 말처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어. 그냥 의뢰하면 돼.’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두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거죠. 자꾸 세상이 어둡다고 하네요. (웃음) 이 어두운 세상 잘 헤쳐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책을 많이 사 주셔야 2, 3권이 나옵니다.  :!:

 

Q. 제일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네요. 『탐정 전일도 사건집』 전자책도 나왔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미소) 출간 전부터 표지 디자인 관련해 반응이 뜨거웠는데요. 작가님께서는 표지 처음 보셨을 때 어떠셨어요?

A. 정말 좋았어요. ‘인문학자의 뇌에 예술가의 심장을 가진 천재 디자이너’가 아닌가 합니다.  :idea:

제가 홀로그램을 줘서 반짝반짝한 걸 좋아하는데요. 주인공이 무지개색으로 빛나서 실제로 보니 더 예뻐요. 또 주인공인 탐정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의뢰인들도 들어가 있는 게 너무 좋아요. 디자이너분께서 의뢰인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이 있으신 게 느껴져서 너무 고맙고 좋습니다. 표지 안에 인물들이 다 같이 있으니까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함께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요.

인물들의 자세랑 옷이 다 달라서 그리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것도 같아요. 이 구조물도 제가 그렸으면 아파트만 달랑 그렸을 텐데 말이죠. (웃음) 계단이 많은 집이라는 구조가 인물들의 인생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표현한 느낌도 나고요.


독자님들도 다 읽으신 후에 표지를 다시 한 번 보시면서 의뢰인을 찾아보셨으면 좋겠네요. 책등에 숨어 있는 스파게티 괴물과 비둘기도요.

 

한켠

한국에서 산다는 게 고단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사는 게 힘들 때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해결해 달라고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물론 작가 본인은 우아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 소설에서만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한다. ‘아,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 왜 내가 사라지나. 사라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등등의 말을 ‘문학적’으로 하는 것.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사 먹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소설을 쓰면서 아무 때나 만나서 툭툭거리고 낄낄대고 “이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뒷담화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얻었다. 이 책의 인물들이 독자들에게도 재미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뭔가 안 풀릴 때 “네 잘못 아니야.”하고 말해줄 수 있는 친구.


  • 앞서 공개된 『탐정 전일도 사건집』 디자인 작업기도 함께 만나 보세요!

‘탐정 전일도 사건집’ 디자인 작업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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