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지. 놓칠까 봐 힘주어 잡고 있었어. 닭을 먹어본 적은 있어도 죽이는 건 처음이었거든. 모가지를 비틀어야 하는데, 죽지 않으려는 닭의 몸부림이 만만치 않았단다. 눈을 질끈 감고 모가지를 꺾으려는데 자꾸 손이 헛돌더라. 닭의 목뼈가 부러지는 뚝 소리가 나야 하는데 겁먹은 닭의 비명만 들렸단다. 한 손으론 눈을 가린 닭을 도마 위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들어 닭의 목을 향해 내리쳤지. 헛칼질을 몇 번 하고 애먼 데를 빗맞혀 닭이 몇 군데 피를 흘리고 나서야 죽일 수 있었단다. 쓸데없이 잔인하게 죽인 꼴이 되었지. 진이 빠지고 손은 피범벅이 되고 내가 이짓을 했구나 싶고 엉망으로 잘린 닭모가지의 단면에서 피와 뼈를 보니 구역질이 나더구나. 급히 부엌 밖으로 뛰쳐나가 쪼그리고서 빈속에 헛구역질을 하는데 누가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었지.
“옥이 아주머니한테 좀 도와달라고 하지 그랬어.”
“내가 해야만 해.”
“오늘밤에 거기 갈 거야? 무슨 꿍꿍이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하지 마.”
“내가 아는 걸 말해볼까? 너 역적의 딸이지?”
“함부로 말하지 마. 아버지는 역적이 아냐. 역적은 이 집 대감이야.”
“임금님은 이 댁 대감이 공신이고 네 아버지가 역적이라고 할 걸. 나야 누가 임금이 되건 누가 역적이고 누가 공신이건 상관없지만.”
“너 같은 천한 것들은 그러겠지.”
“너도 지금은 천것이야. 그 전엔 반가 규수였지만.”
“나를 알고 있었어?”
“얼굴이 희고 손이 고운 걸 보니 험한 일 안 해 봤단 거고, 기생이었으면 첩으로 들어왔지 계집종으로 들어왔을 리 없고, 그럼 며칠 내에 죄인의 여식으로 노비가 되었단 거고. 대감 마님께서 널 보면서 ‘성격이나 얼굴이나 제 아비를 쏙 빼닮았구나’ 하신 걸 보면 대감 마님이 알 정도의 집안이었단 건데, 그런 집안이 처벌을 면하지 못할 정도의 중죄면 반역죄일 거고. 맞지? 곱게 자란 귀한 집 따님이 왜 그렇게 순순히, 널 노비로 삼은 대감 마님이랑 동침하려고 해? 대감 마님이 무서워서?”
“네가 알 필요 없어.”
“내가 널 도와줄 수도 방해할 수도 있어.”
“손에 물 안 묻히고 자랐더니 고생하기 싫어서, 첩이 되어 편하게 살려고 그런다. 됐니?”
“너 그 말을 믿었어? 얼굴 좀 반반한 계집종 있으면 시비로 들인 다음에 손목 잡으면서 ‘내가 어젯밤에 용 나오는 길몽을 꾸었는데, 네 몸에서 옥동자를 얻으려나 보다’ 하는 거? 그거 꼴에 양반이라고 입 터는 거야. 그 놈은 자면서 방귀 뀔 때마다 용꿈 꾼다니까? 옥동자를 낳긴 뭘 낳아, 아침에 똥구멍에서 황룡이나 낳지.”
“이 집안은 종놈들이 감히 뒷담화를 해대는 걸 보니 기강이 엉망이구나.”
“안 보이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는 속담 몰라? 안채 마님더러 문중에서 뭐라는 줄 알아? ‘웃어른에겐 온화하고 아랫것에겐 엄격하여 기강이 바로 잡히고 집안이 평온하다’는데 그게 무슨 뜻이게? 강한 놈한테 강하고 약한 놈에게 약하단 거야. 너 오늘 밤 그 방에 들어가면 내일모레쯤 안채 마님한테 경을 치고 대감마님은 모른 척 하고 너만 당하는 거야. 첩은 얼어 죽을 첩, 그렇게 해서 첩이 될 것 같으면 이 집안 계집종 중에 첩이 수두룩하게?”
“피할 방책이 없다면 차라리 내 발로 걸어 들어 가야지.”
“내가 도와 줄게.”
“네가 왜?”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지 마.”
“내가 어떻게 도와줄지 궁금하지 않아?”
“하나도 안 궁금해.”
그랬더니 그 애가 부엌으로 성큼 들어갔지. 닭 피를 그릇에 받고 있던 찬비가 그 애를 반갑게 맞았단다.
“오늘은 또 뭐 얻어먹으러 왔누?”
“꿀 조금만요.”
“그거 귀한 건데…오늘은 달달한 게 당기나? 응?”
“딴 데 쓰려고 하는데요. 아이, 제가 오늘 뭐 해 먹일지 고민하지 마시라고 닭 잡으시라고 딱 정해드렸잖아요? 그러니까 꿀 조금만요, 네에?”
“옛다, 아유, 어쩜 이리도 아양을 잘 떠누. 이러니 내가 맘 약해져서 안 챙겨줄 수가 없지. 니네 엄마는 이런 아들 두고 어떻게 눈 감았대니.”
“또 또 울컥하신다. 저는 괜찮은데 아주머니가 왜 맨날 울어요?”
“너도 자식 낳아봐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아서 안쓰럽고 그러지.”
“전 자식 같은 거 안 낳을 건데. 종놈이 자식 낳아봤자 주인댁 재산이나 늘려주는 거 아녜요?”
“사는 게 네 맘대로 되냐. 사람이 한 치 앞도 모르는데.”
“그건 그렇죠. 아주머니도 제가 꿀 달라고 할 줄 몰랐잖아요?”
“어이구, 꿀타령이 어째 그치지를 않누.”
그 애는 닭 피와 꿀을 받아서 나갔단다. 닭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찹쌀을 채워 푹푹 끓이는데 사랑채 마당이 소란스럽더라. 헤실헤실 웃고 다녔던 애가 어찌된 영문인지 머리를 풀어헤치고 뻗대고 앉아서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고 있지 뭐냐.
“네 이 놈! 누가 죽기라도 했느냐! 여기가 어디라고 대성통곡을 하느냐!”
“문득 생각하다 보니 원통하고 절통해서 웁니다. 어미는 달라도 이놈도 도련님처럼 대감마님의 핏줄이거늘 왜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단 말입니까! 어미의 신분으로 양반과 상놈이 정해지고 아비의 핏줄은 아무 상관 없다니 이런 법이 어딨답니까! 한 집안에서 맨날 뵙는 분께 효를 다하지 못하니 이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계집종의 자식이 누구 씨인 줄 어찌 아느냐!”
“이놈의 태몽이 용꿈이랍디다!”
대감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고 노비들은 어금니를 꽉 물고 웃음을 참느라 입꼬리가 씰룩대고 곡하던 애는 그러거나 말거나 방성통곡을 하고…참으로 볼만한 구경거리였단다.
“저 놈이 미친 소리를 해대니 정신 차릴 때까지 몹시 쳐라!”
노비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걷히더라. 그 때 왜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는지 모르겠구나. 대감의 명이 추상 같으니 별 수 있겠느냐. 초노가 마당에 멍석을 펼치고 그 아이를 끌어다가 둘둘 말아 매질을 하는데 어찌나 머뭇거림 하나 없이 착착 진행되는지 이 집에선 이런 일이 예사인가 아니면 미리 준비를 해 둔 건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단다. 장작 패듯이 사람을 치는데 멍석이 붉게 물들고 그 아이가 묶인 몸을 요동치며 어찌나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대는지 저러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무서워 치맛단만 말아 쥐었단다. 내가 제 말을 믿지 않고 기어코 내 뜻대로 하려 하니까 저 같은 얼자를 낳아도 첩은 안 될 거라고 보여주는가 싶어서 미안한 마음을 그칠 수 없었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단다.
한참을 그러다가 멍석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으니 매질하던 초노가 코 밑에 손을 대서 숨이 붙어있나 보는데 혼절한 그 아이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 나왔지. 초노가 그 애를 멍석째로 업어 행랑채로 데려갔단다. 상노인 애가 그 지경이니 시비인 내가 김이 오르는 삼계탕을 사랑채에 들고 갔는데, 그 놈은 사람을 그렇게 곤죽을 만들어 놓고도 국물에 찰밥 말아가며 닭죽까지 잘도 처먹더구나.
그 날 밤에 그 애가 기거하는 행랑채에 찾아갔단다. 부녀자가 밤에 외간 사내 거처에 홀로 찾아간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어차피 버릴 몸, 마지막으로 보고 싶더라. 너무 미안해서 그랬지 다른 뜻은 없었단다. 밖에서 귀를 기울이는데 앓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설마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건지 혹시나 죽은 건 아닌지 온갖 흉한 생각이 들어 아주 조금 문을 열어 보았는데 이불 속에서 미동도 하나 없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방이 싸늘하더구나. 놀라서 급히 안으로 달려들어갔는데 이불 속에 베개로 사람 형상만 흉내 냈고 정작 사람은 없지 뭐냐.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가다듬어도 영문을 모르겠더구나. 벌써 송장을 치운 건가 했으나 그렇다면 저 이불 속에 베개들은 다 뭐란 말인가 싶어서 일단 이부자리를 원래대로 해 두고 나왔지. 이대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도 팔자려니 하고 사랑채로 갔단다.
행랑채에 들르느라 예정보다 늦어졌는데 사랑채는 어둡고 섬돌 위엔 신발이 두 켤레였단다. 손 안에 은장도를 만지작거리는데 안에서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 넘어가듯 짧게 으헉 으헉 하는 소리와 뭔가를 두들겨 패는 듯한 소리만 들렸지. 예상했던 상황이 아니라서 밖에서 머뭇거리기만 하고 있는데 으헉 소리가 잠잠해지고 문이 열리더니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계집종 하나가 뛰쳐 나왔지. 그 틈에 내가 은장도를 쥐고 들어가려는데 그 계집종이 내 손목을 낚아채어 안채 쪽으로 달렸단다. 손이 축축했지. 얼결에 같이 달리다가 안채 담을 넘었단다. 안채가 사랑채보다 담이 낮으니까 그런 거였지. 반가의 안채는 바깥 출입이 드문 부녀자들이 바깥 구경을 할 수 있게 지반을 높이고 담을 낮추거든. 집 밖 담벼락에 기대 주저앉은 계집종이 그제야 내 손에 쥔 은장도를 알아차리고 소곤거렸지.
“달거리 중이라 사흘만 기다려달라더니 그게 아니라 달빛 없는 그믐을 기다린 거였구나? 닭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이런 조그만 칼 한 자루로 사람 목을 쉽게 딸 수 있을 줄 알았어? 죽이고 나면, 그 다음은 어쩌려고 했는데?”
멍석말이 당했던 사내종이었단다.
“나도 자결하려고 했지.”
“너무 뒷일을 생각 안 한 거 아냐?”
“아버지를 역적으로 몰아 우리 가문을 멸문시키고, 어머니는 관비가 되기 전에 자결하시고, 나와 우리 집 재산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었던 자에게 희롱 당했으니…부모의 원수는 불구대천이니 저 놈을 죽이고 나서 죽으려고 아직 안 죽었는데…이제 내가 살아서 뭐 해.”
내가 아직도 놀림 당하는데, 아니 그게, 그 때는 목소리 안 내고 소곤거렸으니까, 곱상하니 치마까지 입고 있으니까 사내로 안 느껴져서, 나도 감정이 격해져 있었으니까…내가 끌어 안고 울었지. 그 애가 어린애처럼 같이 울먹였어.
“야아아…울지 마아…나도 엄마의 원수랑 같은 하늘 같은 지붕 아래서 살고 있는데. 죽긴 왜 죽어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에게 사돈 맺자고까지 했던 놈이 이리도 흉악한 놈이었다니…그런데 이렇게 잘 산다니…대체 하늘의 도(道)라는 게 있는 걸까…”
내가 한숨을 쉬니까 그 아이도 따라 쉬며 중얼거렸지.
“고자로 만들어 버렸어야 했어. 밟지만 말고 확실하게 잘라 버렸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