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심사위원 정명섭(소설가)
좀비는 일종의 일탈이지만 문학은 정해진 규칙이 존재합니다. 좀비를 주제로 하는 글쓰기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런 무규칙과 일정한 법칙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근사하고 멋지게 결합하지만 어떤 것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바스러지기도 합니다. 한국은 비교적 근래에 들어서 좀비와 만났고, 급격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ZA문학상은 한국에서 좀비 문학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심사위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작가이자 좀비 매니아로서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노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장편과 중단편으로 구성된 여덟 편의 본선 진출 작들을 읽어보면서 좀비라는 낯선 주제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안착되고 있는 것 같다는 희망과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안타까움이 공존했습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좀비가 등장하는 소설은 장르 소설 중에서도 가장 장르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말 역시 느슨하게 열린 결말 보다는 좀 더 치밀하고 단단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치열한 고민들까지 함께 엿보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장편 <죽음의 섬>은 좀비들에게 쫓긴 일단의 무리가 고립된 섬에 도착하면서 진행 됩니다.이런 식의 진행은 대다수의 좀비 영화나 소설에서 보여주는 방식이지만 BL985-C 바이러스를 실험에서 좀비 사태가 시작되었다는 과학적인 배경 설명은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또한 좀비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등장인물들에 과거에 얽힌 비밀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반전을 잘 구사했습니다. 안개 발생기를 이용해서 유림도에 좀비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몇 가지 문제점들을 꼽아보자면 각 단락들의 연결고리가 너무 느슨합니다. 첫 번째 챕터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를 겪은 김중위가 갑자기 다른 일행들과 요트를 타고 유림도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후반부에 추락 이후 다른 일행과 합류하는 과정이 나옵니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냥 시간순서대로 연결시켜도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배열이 꼬이면서 앞부분을 다시 봐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는 속도감을 중시하는 장르소설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후반부에 너무 많은 비밀들을 한꺼번에 풀어내면서 흐름을 방해합니다. 에일리언 퀸을 연상시키는 소진의 등장 역시 너무 뜬금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마지막 에필로그 역시 이야기와의 연결 고리가 너무나 허약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과 사건의 순서를 정리하고 김중위와 일행이 유림도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깔끔하게 끝냈으면 완성도면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장편 <따라온 손님>의 경우에는 문장 구사력이 뛰어났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에 반해서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개연성 없이 등장합니다. 보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경우에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합류하면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에는 등장인물들이 개별적으로 위기를 겪거나 빠질 뿐입니다. 특히 최초 발생지는 부산의 해운대였는데 갑자기 영천 지역을 봉쇄하는 내용이 나오고, 고속도로에서 이미 좀비들이 대량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킹메이커를 비롯한 지도층들은 너무나 태평하게 사태를 바라봅니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포함해서 따로 따로 쓴 단편들을 단순하게 결합시켰다는 느낌을 줄 만큼 느슨한 연결고리들은 이 작품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천에 투입된 군인들 혹은 강서 정류장의 임수정에게 캐시를 맞춰서 썼다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텐데 매우 아쉽습니다.
중편 <부활>은 사이비 종교집단에 의해 부활된 ‘나사로’를 좀비에 대입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벌어지는 식인을 참혹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판단한 형사들의 추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심사한 여덟 편의 본선 진출 작 중에서 가장 참신한 아이디어이며, 작가의 탄탄한 문장력은 그것을 뒷받침했습니다. 특히 부활한 임사랑의 일기로 진행된 부분은 죽었다 깨어난 나사로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두려움을 잘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위의 두 작품처럼 등장인물들 간의 이야기들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면서 이야기들이 각자 따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특히 한승리와 형사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서 어색함을 남겼습니다. 녹취록 1번 챕터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좀비 사태의 발생의 전조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정작 이후에도 세상이 조용합니다.
차라리 형사들이 새생명교회에서 부활한 나사로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을 연쇄살인범들로 오해하고 추적한다는 내용을 메인으로 하고 나머지 얘기들을 넣었으면 한결 짜임새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좀비 사태와 악플러를 결합시킨 단편 <성벽>의 경우에도 위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신선한 시도입니다. 외국에서는 좀비 혹은 좀비였다가 인간으로 돌아온 이들과 다른 인간들 간의 차별과 갈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시도는 더더욱 반갑습니다. 문장 역시 나쁘지 않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이 탈출하는 과정을 너무 쉽게 묘사했습니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은 장르, 특히 좀비를 다루는 소설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행을 시간대별로 배열하지 않음으로서 흐름이 끊어진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초반의 시위 장면 대신 주인공이 탈출하는 장면에 좀 더 집중하고 결말 부분을 보강했으면 좀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편 <엘리베이터 액션>은 좀비들을 피해 마트에 왔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힌 어느 생존자의 불운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좀비 소설의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지만 주인공의 독백과 코믹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잘 풀어냈습니다.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은 작가의 실력을 짐작케 합니다.
단편 <좀비, 눈 뜨다>는 한의사 출신인 남자가 좀비가 되었다가 우연찮게 인간으로 돌아오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한의사라는 설정답게 혈을 공격하는 장면,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을 한의한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간으로 돌아온 좀비라는 참신함 외에도 가족을 지키고 아들의 복수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서사를 잘 결합시켰습니다.
중편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는 실직당한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떠났다가 좀비 사태를 겪는다는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지나치는 불길한 징후 부분들을 잘 담담하게 잘 묘사했으며 마지막 결말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TV와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너무 쉽게 얻고, 단지 대문을 닫음으로서 좀비들을 막는다는 느슨한 설정들은 좀비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어야 할 긴장감을 떨어뜨렸습니다. 특히 대화 부분이 너무 어색하다는 점도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중편 <악몽>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좀비들을 피해 안전지역인 부산으로 도망치는 생존자들의 여정을 다룬 작품입니다. 단점을 꼽기도 어렵지만 장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작가의 문장력을 생각하면 좀 더 참신한 소재를 찾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지막 터널을 지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런지 별다른 긴장감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좀비가 나타난다면 숨 쉬는 내내 긴장하도록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본심 심사위원 김준혁(황금가지 편집장)
올해 ZA 공모전은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도 줄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줄었다. 그나마 <엘리베이터 액션>과 <좀비, 눈 뜨다>가 술술 읽혔을 뿐이다. <엘리베이터 액션>은 한정된 공간과 아이디어가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좀비, 눈 뜨다>는 묘사나 서술 등이 다소 엉성하지만 이야기 전체의 구성이 살아 있고 아이디어도 빛났기에 두 작품 다 우수작으로 선정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장편소설 세 편이나 본심에 올라와 기대감을 높였으나 <부활>과 <따라온 손님>은 안정적인 문장력이 장점이었으나 독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흡인력 혹은 그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죽음의 섬>은 두 본심위원이 고민했던 작품이다. 문장력이나 전체적인 완성도는 앞에 언급한 두 작품보다는 떨어지는 편이나 흡인력이 있었고 이야기의 전개를 끌어낼 줄 아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도 중반부 이후부터 급격히 하락하며 결국 당선작에 선정되지 못했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안정된 글쓰기가 좋았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역시 흡인력 부족이 문제였고, 는 지나치게 이야기가 진부하고 뻔하게 진행되는 게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성벽>은 중반 이후 갑자기 이야기의 맥이 끊어지며 심사위원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올해는 당선작 없이, 또한 우수작도 2편만을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