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디자인 비하인드 스토리

2017.11.2

브릿G에서 나온 첫 번째 작품집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도서 디자인을 담당해주신 김나연 디자이너와 황금가지 미술부를 총괄하는 김다희 디자이너와 함께 간단히 작업 후기를 나누었습니다. 표지 작업 과정과 B컷 시안까지, 여러 고민과 과정을 지난 작업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브릿G팀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표지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저도 처음 봤을 때부터 이미지 요소들이나 색감이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았는데, 표지에 있는 그림들을 직접 그리신 거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작업을 하게 되셨나요?

김나연 사실 이미지 배열을 지금 표지처럼 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또 이렇게 열 작품을 전부 그림으로 그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몇몇 작품만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요소를 맞추느라 하나씩 그리다 보니 결국 전체를 다 그리게 되었어요. :roll:

브릿G팀 그려주신 일러스트 그림을 하나씩 뜯어 보면 작품들을 읽어야 캐치할 수 있는 이미지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수록작 10편을 전부 읽고 작업을 하신 건가요?

김나연 네, 전부 다 읽었어요. 무엇보다 내용이 재밌었어요. 이전에 중·고등학교 때에도 『나의 식인 룸메이트』 같은 한국공포단편선 시리즈를 읽었던 적이 있거든요.

김다희 평소에 이야기를 해보면 나연씨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요. ‘한공단’ 역시, 짧은 시간 내에 원고를 다 읽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김나연 이전 시리즈 단편선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고어하거나 초현실적인 작품들이 많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단편선은 읽어 보니 굉장히 생활밀착형 이야기들인 거예요. 그래서 몰입도 잘 되고, 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보니 주변에 주제가 되는 것들도 많고 키워드 뽑기도 좋았어요. 또 의성어나 의태어 위주로 키워드를 뽑으려고 했어요. 평범한 사물들이 있는 반면에, 기괴해 보이는 곱창(?!) 느낌의 주름 진 이미지를 그려서 다른 분위기를 내려고도 했고요.

브릿G팀 작품을 한 번의 호흡으로 쭉 읽으셨을 때, 가장 먼저 그리게 된 건 어떤 그림인가요?

김나연 제일 먼저 그렸던 건 「이화령」에 쓰인 그림이에요. 우선은 처음에 다 그릴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roll: ) 밀도 있게 그릴 수 있는 대상을 좀 찾았던 것 같아요. 「이화령」은 산비탈 같은 사선이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이 명확해서 제일 먼저 그리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더 도어」,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이렇게 그렸어요.

김다희 사실 작업하고 있는 걸 제가 보고서는 ‘이거 좋다’고 하면서 좀 더 그려봐도 좋겠단 식으로 푸쉬를 했던 것 같아요.( :smile: )

김나연 또 글자가 비어 보여서 여기다가 넣을 만한 것을 하나씩 그리다 보니, 작품 전체에 대해 그려야겠다는 판단도 들더라고요.

김다희 그리고 표지 콘셉트에 대해 고민하면서 막막했을 때, 편집주간님께서 표지 하나를 보여주셨잖아요.

김나연 네, 약간 와글와글한 그림들이 있는 표지들을 보여주셨어요. 예전에 황금가지에서 나왔던 한국 SF 단편선 『U, ROBOT』하고 『아빠의 우주여행』이었는데, 이렇게 와글와글한 이미지를 그리기는 시간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좀 풍부한 이미지 느낌을 주려고 선을 써서 그림도 그리고, 패턴을 넣은 시안도 만들어보고 했었어요.

김다희 이렇게 하나둘 모인 그림들이 너무 좋으니까 제가 또 책등이나 표4, 각 작품 속표제지에도 넣으면 좋겠다고 해서 점점 더 그리게 되었어요.( :oops: )

패턴을 활용한 시안들

김나연 그래도 작업은 재밌었습니다. ( :smile: )

브릿G팀 작품을 읽으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나요?

김나연 「위탁관리」에 대한 그림을 좀 빨리 그린 편이었고 재밌게 그렸어요. 또 별것 아니긴 하지만, 그림의 빈 공간에 얼굴, 입과 손을 딱 필요한 만큼만 들어가게 그렸어요. 요소가 더 많이 생기면 설명할 게 많아지니까 딱 필요한 만큼만 담았어요.

위탁관리 일러스트

브릿G팀 아! 몰랐는데 말씀해주셔서 알았어요. 이런 부분들은 다른 이미지들이랑 조합했을 때를 고려하셔서 그렇게 작업하신 거지요?

김나연 네, 넣었을 때 각도나 여백들이 애매하게 남는 것을 고려해서 배치했어요.

브릿G팀 그리고 출간 전부터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표지를 두고 일명 ‘초호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었는데, 그와 별개로 전 강렬히 대비되는 색감이 정말 좋았거든요. 어떻게 주 색상을 선택하시게 되었나요?

김나연 우선 배경은 검정색이나 어두운 색으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일단 작품집 제목에 ‘밤’이 들어가니까 그렇게 정해두었는데, 제일 잘 눈에 들어오면서 배경색과 동떨어져 보이는 색을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할로윈 생각도 좀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주황색을 넣으면 너무 밝아질 것 같더라고요. 다른 표지 작업에서 제가 푸른색 계열을 많이 쓰기도 했고, 파랑색은 너무 차가운 느낌도 들었고요. 게다가 파랑색이나 빨강색을 쓰면 좀 직접적으로 공포를 드러내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어요.

김다희 그런데 막상 나연 씨가 표지 인쇄 감리를 갔는데 형광 연두색이 정말 안 나온다고 해서 걱정을 좀 했었어요.

김나연 교정지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쨍한 느낌의 형광이었고 그런 느낌을 의도한 건데, 막상 현장에 가니까 형광색이 훨씬 안 나오는 거예요. 너무 탁한 초록색이 나오고, 형광색을 계속 섞는데도 기장님이 색깔이 더 안 올라오신다고 하셨어요.

김다희 이 책이 ‘밤’의 느낌을 주니까 배경을 어둡게 하고 형광을 포인트로 해야 표지가 살아나는데, 도드라져야 할 부분이 그냥 연두색으로 나오니까 그것 때문에 다시 조색을 해야 했어요.

브릿G팀 조색은 어떤 과정인가요?

김다희 잉크를 섞는 작업이에요. 잉크를 섞어서 다시 괴는 작업을 대여섯 번 정도 했어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사장님께서 표지 시안을 보시면서 농담조로 ‘황금가지’가 아니라 ‘검은가지’냐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 출간된 로스 맥도널드의 『블랙머니』에 이어 이 책도 어두운 계열이라 그러셨던 것 같아요. 웃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래도 일단 진한 보라색으로 같은 디자인을 만들어보기도 했었어요.

 

작업 시안

김나연 그렇게 진보라색으로 다시 작업을 해서 보여드렸더니 결국 지금의 표지가 좋다고 하셨어요.( :eek: )

브릿G팀 그렇군요.( :cool: ) 그럼 반대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도 있나요?

허수아비 일러스트

김나연 「허수아비」가 좀 어려웠어요. 작품에서 뽑아낼 수 있는 요소가 많았어요. 강이나 노인, 허수아비가 다 나오는데, 어떤 걸 키워드로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캐주얼했는데 이 작품만 확연하게 시골 배경이잖아요. 논두렁을 그려도 어색할 것 같고 허수아비가 전체적으로 서 있는 풍경을 그리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맨 처음 등장할 때의 장면에 주목했어요. 마치 사람 목을 조르는 것처럼 허수아비 목을 묶는 걸 보고 주인공이 공포감을 느끼잖아요.

김다희 천재다! 그걸 그렸다고는 정말 생각 못 했어요.

브릿G팀 저도요! 이렇게 알고 나니 또 새롭게 보이네요. 처음 노인과 만나는 장면을 담으신 거군요. ( :shock: )

김나연 맞아요, 그래서 이 작품의 그림을 제일 마지막으로 그리게 되었어요.

“노인의 주름지고 깡마른 두 손이 붙든 새끼줄이 눈에 밟혔다. 파르르 떠는 두 팔의 근육은 나의 등장에도 멈추지 않았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축 늘어진 사람의 두 다리에 시선이 박혔다. 노인이 손을 털었다.”

―배명은, 「허수아비」 중에서 

브릿G팀 그림을 직접 그리신 작품이 꽤 있어요. 『낙원남녀』 표지 디자인은 물론 그림도 직접 그려주셨고 스티븐 킹의 ‘그것’에 나오는 페니와이즈의 이미지도 이전에 보여주셨을 때 굉장히 강렬했거든요. 그림은 일러스트로 그리시나요?

일러스트 작업 화면

김나연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을 이용해서 그려요. 이번엔 구도가 비슷한 이미지들을 찾아 형태를 따놓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그렸어요.

김나연 디자이너의 작업들

 

다음으로는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저자 10인의 랜덤 인터뷰가 게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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