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북 발간 제안이 왔던 2020년도에 저는 절필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떻게 다시 글을 다시 잡았냐고 한다면, 좀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브릿G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특별 코너 ‘브릿G 숏터뷰’의 일곱 번째 게스트, 이번에는 지야 작가님의 이야기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최근 브릿G 6주년을 기념한 소일장 특집 앤솔러지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어 각 서점에서 무료로 만나 보실 수 있는데요.(이벤트 자세히 보기↗) Mik(지야) 작가님은 매달 흥미로운 첫 문장 규칙으로 일명 ‘월간 소일장’을 꾸준히 개최하며 다양한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 기획자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2019년~2020년 무렵에는 브릿G에 규칙괴담 열풍을 불러온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뿐만 아니라 작년 2월부터 작가님께서 매달 꾸려 주시는 소일장을 함께 보면서 편집부에서도 자연스레 이를 활용한 콘텐츠를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그 뜻깊은 결과물의 공개를 기념하며 Mik(지야) 작가님과 본격 숏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그간 궁금했던 이야기들에 대한 풍성하고 섬세한 답변이 담겨 있으니, 이번 숏터뷰도 모쪼록 재밌게 읽어 주시고 많은 격려와 응원 보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숏터뷰 하단에 마련된 이벤트까지 꼭 체크해 주세요!
Q. 2017년 10월 「완고한 당신의 세계를」이라는 작품을 공개하며 브릿G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하셨어요. 당시 자유게시판을 통해 진행되었던 ‘초능력자’, ‘서울역’, ‘방화’, ‘미치광이’, ‘보름달’이라는 공통 소재를 활용한 글쓰기 이벤트인 소일장에 참여한 작품인데요, 이 소일장 소식이 작가님께서 브릿G에 처음으로 작품을 올리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까요?
A. 벌써 6년 가까이 지난 옛날 작품의 제목을 들으니 쑥스럽네요. 네, 브릿G에 실제로 글을 써서 참가한 것은 그 소일장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어디서 소일장에 대한 정보를 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비슷한 작가 커뮤니티를 구경하다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작가 커뮤니티를 구경하기는 해도 주체적으로 글을 올릴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진 않았거든요. 저에 비하면 온라인 작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실력은 너무 쟁쟁하다고도 생각했고요.
하지만 브릿G에서 소일장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다양한 키워드를 나만의 방식으로 조합해서 한번 써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연휴 동안 고심해서 쓴 것이 「완고한 당신의 세계를」이라는 단편입니다. 사실 길이도 그리 길지 않아서 엽편이라고 봐야 하지요. 당시에는 여러모로 능숙하질 못해서 지금 보면 많이 부끄럽지만 그 작품을 계기로 브릿G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보면 그때 당시 열렸던 소일장과 함께 저의 브릿G 생활에 마중물 역할을 해 준 작품입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보니 역시 미진한 부분이 많이 보여서 민망하네요.
Q. 이후부터 브릿G에 다양한 작품을 공개하며 꾸준한 활동을 해 주고 계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반 판타지 문학 공모전, 무술년 맞이 작가 프로젝트,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ZA 공모전 등 브릿G에서 진행된 다양한 문학상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여러 번의 심사평에 언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소규모 문학상 역시 브릿G에서 계속 활동하게 된 동기에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혹 인상적이었거나 기억에 남는 심사평도 있는지요.
A. 말씀대로 공모전 예선 심사에서 몇 번인가 응모한 작품이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심사평이라면 역시 2017년 제1회 어반판타지 공모전에서 받은 심사평이네요. 당시 너무나 영광스럽게도 본선까지 올라가 이영도 작가님과 이지연 심사위원님의 심사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너무나 귀한 말씀을 해 주셨기에 그 내용은 지금도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저런 행운 앞에서 다소 교만해질 때마다 그 심사평을 읽어 보면 다시 냉정하게 제 글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후의 많은 심사에서 언급이 되긴 하지만, 제 글이 가진 기본적인 문제점은 제1회 어반판타지 공모전 심사평에서 전부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제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었던 유일한 공모전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오랜 시간 개선을 하지 못했던 점은 그만큼 제가 게을렀던 결과겠지요. 지금은 브릿G 공모전에서 본심까지 진출하여 우수작 혹은 당선작에 뽑힐 만한 작품을 쓰는 것이 저의 자그마한(?) 목표입니다.
Q. 무엇보다 작가님께서는 2019년 무렵 브릿G에 몰아닥친(?) 엄청난 규칙괴담 열풍을 불러온 장본인이라 할 수 있지요! 그렇게 처음 등록해 주신 「[꿀팁]반드시 붙을 수 있는 자소서 작성법」을 필두로 ‘한빛동’이라는 가상의 동네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규칙괴담 시리즈를 올려주셨는데, 이후 폭발적으로 다채로운 매뉴얼괴담이 증가하며 브릿G의 상위 검색 키워드에 꽤 오랫동안 규칙괴담, 나폴리탄괴담 등의 검색어가 머물러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작가님의 규칙괴담은 연속성이 느껴지는 시리즈 내에서 서로 상반되는 규칙이 등장하면서 오싹함이 더욱 증폭되는 매력이 있었는데요, 당시 SNS에서 유행하던 이런 흐름을 포착하여 직접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부분에서 규칙괴담에 흥미를 느끼게 되셨나요?
A. 당시 SNS에서는 ‘놀이공원 안내사항’이라거나 ‘워터파크 주의사항’과 같은 규칙괴담을 흔히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안내사항으로 보이지만, 읽다 보면 어떤 구절부터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그 위화감은 항목을 읽어갈수록 점차 기이해지면서 읽는 사람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 결코 속 시원하게 규명되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 규칙괴담을 접했을 때 이러한 부분이 ‘나폴리탄괴담’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나폴리탄괴담과 규칙괴담이라는 표현을 같이 썼습니다. 다만 이후 어떤 브릿G 회원님께서 두 괴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써 주신 글을 보고 이를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규칙괴담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제가 규칙괴담의 특성에 감명받아 처음 쓴 글이 「[꿀팁]반드시 붙을 수 있는 자소서 작성법」이었던 것은 당시 저의 상황과 아주 무관하지 않습니다. 당시 백수였던 저는 무엇을 하더라도 구직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거든요. ‘만약 이런 상황에서, 그저 따르기만 하면 취직이 보장되는 규칙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그 규칙이 뒤로 갈수록 점점 기이해진다면 어떨까?’ 저는 그 생각을 규칙괴담의 형태로 옮겨 보았고, 내친 김에 도서관 안내 수칙의 형태로도 작성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셔서 무척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벼운 기분으로 써 본 괴담이었으니까요.(물론 가벼운 기분이란 것이 규칙 괴담을 쉽게 보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괴담을 정말 무서워합니다.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읽는 것도 뭔가를 끌어들일까 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자소서 작성법’이나 ‘한빛동 시리즈’를 쓸 생각을 할 수 있었냐면, 규칙 괴담은 여백을 통해 공포를 전파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규칙괴담은 아무 것도 밝혀 주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단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대처법만이 스산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독자는 눈앞에 존재하는 문장 너머의 맥락을 상상해 보려다, 그 너머에 터무니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단지 문장을 쓰는 것으로 이러한 공포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균형을 잘못 잡으면 삼류 공갈 협박처럼 되어 버리니 조심해야 했지만요.
‘한빛동 시리즈’에 대해서도 첨언하자면, A라는 장소의 규칙에서 언급된 장소 B가 있고, 장소 B의 규칙에서도 장소 A가 언급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 사이에 어긋남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세계관이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A의 규칙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B에서는 A의 규칙을 일부 부정한다면? 무척 혼란스럽지요.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한빛 성당 내부 공문」입니다만 현재 브릿G에는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괴담을 읽어 보고 싶으시다면 매뉴얼 규칙괴담 단편집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지침서』를 검색해 주세요.(틈새 홍보)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 지침서> 전자책 보기→
Q. 사실은 이러한 규칙괴담 열풍 덕에 황금가지의 전자책 브랜드인 ‘구구단편서가’가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전자책 기획과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다채로운 브릿G의 규칙괴담을 선별해 출간하고자 하는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출간하게 된 규칙괴담 단편집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 지침서』 덕분에 브릿G의 실험적이고도 참신한 장르 단편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도 계속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출간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으며 여전히 구구단편서가를 대표하고 있는 대표작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에 ‘지야’라는 필명으로 참여하고 출간하게 되었을 때 소회가 어떠셨는지요.
A. 처음에는 얼떨떨했어요.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처음에는 ‘저요? 저보다는 다른 분을 선정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는 답장을 어떻게 해야 예의 바르게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아냐, 그냥 한번 해 보자!’고 마음을 바꿔먹었지요. 정식으로 출판사를 통해 결과물을 내 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만 담당자께서 무척 친절하게 이끌어주셔서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전자책이 나온 결과물을 받았을 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몇 번이고 이북을 열어 본 기억이 나네요.
사실 이북 발간 제안이 왔던 2020년도에 저는 절필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20년도 3월 이후로는 글을 전혀 쓰지 않았어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만 제일 큰 이유는 역시 지쳤기 때문이었지요.(‘이제 됐어. 혹시나 하고 매달리는 것도 질렸어. 눈앞의 현실을 봐야지. 글쓰기는 전부 다 끝이야!’) 이북 제안을 받았을 때 제안을 저어했던 것도, 절필한 주제에 뭔가에 참여한다는 게 주제넘은 짓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꿔 이북을 발간한 이후에도 ‘그래, 그나마 뭔가 하나는 만들었네.’ 하고 반쯤 글을 떠나보낸 상태였죠.
그랬던 제가 어떻게 다시 글을 다시 잡았냐고 한다면, 좀 바보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서브컬처의 장르…… 다시 말해 본진을 잡았기 때문입니다.(전문용어로 ‘입덕했다’고 하지요.) 장르명은 죽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만 하여간 거하게 입덕한 저는 다시 미친 듯이 패러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역시 글은 좋은 거구나!’ 하고 시원하게 사고를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뻔뻔한 얼굴로 브릿G에 귀환했죠.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담.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지침서』를 다시 읽다 보면 그때의 쓰디쓴 절망감과, 그 절망감을 우스울 정도로 가볍게 날려 버린 열정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때 당시 적당히 지은 필명도 지금은 애착이 가는 저의 이름 중 하나구요. 세상일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언제까지 등단을 할 수 없다면/이번 공모전에서 뽑히지 않으면 이제 글쓰기는 그만두겠어.’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렇게 비장한 각오를 다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절 보세요. 깔끔하게 실패했어요.
Q. 뿐만 아니라 2019년 ‘만우절 소일장’을 시작으로 ‘6월의 뱀파이어’, ‘운명의 할로윈’ 등 다양한 소일장을 자유게시판에서 직접 개최해 주셨습니다. 이후 2019년 10월 ‘운명의 할로윈’ 소일장 때부터는 첫 문장이 공통으로 고정되는 재미난 규칙을 추가하여 많은 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이러한 첫 문장 고정 규칙은 어떻게 처음 고안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다양한 창작 동기를 자극하는 함축적인 첫 문장은 언제나 새롭고 인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요, 이러한 첫 문장은 보통 어떻게 정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A. 첫 문장 규칙을 고안하게 된 이유는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소설을 쓸 때 첫 문장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그만큼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골몰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여기서 소설의 첫 문장을 아예 고정해 버린다면 이런 고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첫 문장을 각각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시작은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를 정해 각자의 그림을 그려 보듯이, 글을 쓰는 사람들도 하나의 공통된 첫 문장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공통된 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겠지만, 좀 더 소설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형태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싶었거든요. 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이 첫 문장 규칙을 흔쾌히 받아 주셨습니다.
이 규칙은 옛날 어떤 아마추어 창작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무렵 모두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써 보면 어떨지 생각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누구의 글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어 혼란이 빚어질 테니 적당히 절충한 셈이지요.
첫 문장을 정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저 적당한 문장을 몇 개 떠올려 보고, 이야기의 진행에 수월한 형태로 만들 뿐이지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사건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인물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복잡하게 쓰지 않는다’ 등등. 첫 문장 규칙의 기본적인 목적은 이어 가기 쉽고 자유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를테면 ‘흐린 여름날, 철수가 영희를 고발한 사건은 모두의 입을 술렁이게 했다.’보다는 ‘그날 어떤 고발이 있었다.’고 줄이는 편이 이후의 이야기를 만들기 쉽습니다.(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해당 월에 들어가는 명절이나 이벤트에서 착안하여 문장을 만들었는데(‘운명의 할로윈 데이가 다가왔다’, ‘로즈 발렌타인이란 이름은 누가 생각한 걸까’, ‘다소 기괴한 할로윈 한정 음료가 출시되었다’ 등), 해를 거듭하다 보니 예년과 같은 방법을 쓰기 어려워졌습니다. 소일장 주제가 식상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었고요. 그래서 해당 월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문장을 첫 문장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시즌 이벤트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 그 소재는 거의 다 사용했기에 요즘은 ‘1월의 결심’, ‘이별의 2월’, ‘변함없는 3월’이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하다 보니 첫 문장을 다듬는 실력도 늘어난 기분이 듭니다.
Q. 이후 2021년에 진행된 ‘7월에 녹다’ 소일장부터는 첫 문장 고정 규칙에 더해 시간의 주기성을 가지고 거의 매달 소일장을 열어 주셨어요. 특히나 2022년 2월부터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달 소일장을 열어 주셨고, 때마다의 아이디어나 소재 선정도 놀랍지만 그 기획의 규칙성이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졌더랬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난 1년간 함께하는 동안 자연스레 소일장 참여 작품들을 활용한 콘텐츠의 기획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브릿G 6주년을 기념해 구성된 소일장 특집 앤솔러지 전자책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가 최근 각 서점에 출간되어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데요. 브릿G와 소일장 문화 홍보를 위해 무료 전자책으로 기획이 되긴 했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개최해 오셨던 소일장이 다양한 참여 작가님들과 함께 모종의 결과물로 공개된 소감은 어떠셨는지요.
A. 소일장을 진행하다 보니 참여한 작품들이 브릿G 편집부의 추천을 받거나 책으로 발간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기적으로 소일장을 여는 일에 보람을 느끼긴 했지만 설마 아예 소일장을 주제로 삼은 전자책이 나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소일장을 규칙적으로 열었던 이유도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쓸 간단한 원동력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으니까요.(사실 매달 소일장을 열 때마다 이런 돌발행동이 브릿G 편집부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바쁘신 와중에 또 일을 늘리고 말았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 전혀 아닙니다! 덕분에 브릿G 6주년을 기념하는 이야기도 만들어 볼 수 있었는걸요!
브릿G 6주년을 맞이하여 소일장에 참여한 작품들이 한데 모여 책으로 엮인 것을 보니 제가 해 왔던 일이, 그리고 소일장에 참여해 주시고 노력해 주신 작가분들의 마음이 또 다른 형태를 갖추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습니다. 브릿G에서도 소일장을 중요한 콘텐츠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구요. 완성된 교정본이 왔을 때에는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보았을 정도예요. 다소 속물스러운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 책이 나온 것을 통해 다음 소일장에 참여하는 작가분들이 늘어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제가 이렇게 탐욕스럽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다음 소일장도 꾸준히 개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께서 소일장을 개최해 주시는 것도 환영이에요. 소일장의 장점은 누구나 열 수 있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 전자책 보기→
Q. 브릿G 6주년 기념 소일장 앤솔러지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에는 작가님의 작품 2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애캐’의 생일카페에 참석하는 주인공의 성장담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아낸 「새해에는 만나러 갈게」와 마비노기 귀신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오싹한 게임 호러 「잊힌 일곱 번째 영웅과 보라 강물 던전 괴담」 모두 서브컬처 문화를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작품들인데요. 이처럼 매달 소일장을 기획하면서도 작품으로도 함께 참여하신다는 게 언제나 놀랍게 느껴지는데, 각 작품을 쓰게 된 계기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있다면 독자분들께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새해에는 만나러 갈게」와 「잊힌 일곱 번째 영웅과 보라 강물 던전 괴담」은 모두 제가 겪거나 체험한 사건들을 토대로 썼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저는 서브컬처 장르(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를 자주 접하고 즐기는 편인데, 이러한 경험이 저만의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결과지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뿌듯합니다.
「새해에는 만나러 갈게」는 제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간 이후로 계속 구상했던 글입니다. 그때 여행을 갔던 이유는 생일카페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모르는 지역을 여행한 이후로 제 안의 무언가가 한층 더 단단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여행을 갔던 것 자체보다는 제가 제 의지로 행동했던 것에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경험한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은 제 글이 지닌 고질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자아 속에 매몰될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오랜 시간 고민했고, 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처를 가진 인물을 창조했습니다.
「새해에는 만나러 갈게」 속 주인공은 자기 껍질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한 발짝 바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바깥세상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고난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주인공은 아마 이후로도 자신만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살아가게 될 겁니다. 자신이 사랑한 존재를 계속 추억하면서요. 처음에는 다소 식상한 여행담이었으나, 글을 다듬어 나가다 보니 상실된 존재라도 그를 계속 기억하고 나아간다면 그 존재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잊힌 일곱 번째 영웅과 보라 강물 던전 괴담」은 브릿G 측에서도 적어주셨다시피 2004년에 발생한 마비노기 귀신 사건에서 착안한 작품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걸 모르는 사람들도 생긴 것 같더군요. 그때 옛날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행여나 표절이 되지 않도록 몇 번이고 심사숙고했던 기억이 있네요.
「새해에는 만나러 갈게」처럼 서브컬처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전자가 감동적인 드라마라면 이쪽은 고요한 호러죠. 본래 소일장에 참여했을 때에는 주인공이 ‘잊힌 일곱 번째 영웅’에게서 라일락을 받고 꽃말을 알아내자마자 컴퓨터를 강제 종료하는 엔딩이었는데 다소 싱거운 결말인 것 같아 출간된 소일장 앤솔로지에서는 좀 더 살을 덧붙였습니다. 물론 브릿G 단편도 수정되어 있으므로 이쪽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Q. 브릿G에 공개된 작가님의 작품 중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가장 추천하고 싶은 ‘나의 작품 BEST5’를 꼽아본다면요? 작가님의 만족도와 취향대로 간단한 이유와 함께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A.
스스로 자기 작품을 추천한다니 어쩐지 쑥스럽지만, 이 기회를 빌어 저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다섯 작품을 골라 보았습니다. 다만 순위는 아니고 제가 브릿G에 올린 순서대로 말씀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미 브릿G와 계약을 맺거나 추천사를 받은 작품 및 20년도 이전의 작품은 고르지 않았습니다.
- 「자살」의 소유권을 당신에게
대학생 무렵에 약 A4 1페이지 정도의 도입부만을 써 놓았다가 후일 그 도입부를 읽고 나머지 부분을 채워 넣은 소설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분위기를 보면 서양 근대 호러 소설 분위기를 내려고 한 티가 적나라합니다. 대학생이라는 까마득하던 시절에 썼던 내용을 찾았던지라 그때의 제가 생각한 분위기나 엔딩을 알 수는 없었으나, 당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공포를 추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엔딩은 편지를 가르는 페이퍼 나이프의 소리를 마지막으로 화면이 완전히 어두워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썼습니다.
- 세이브 미, 플리즈!
정부가 주관하는 가상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각 방송사 대표 아바타를 통해 진행되는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방송작가인 제인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중간 포지션인데, 가상 재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할 아바타의 콘셉트를 짜다가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지요. 엔딩을 향해 갈수록 작위적인 맛이 나는 플롯이지만 그런 부분을 더 도드라지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소설 속 말투에 대해서는 이영도 작가님의 『그림자 자국』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밝혀 둡니다.
- 엔딩 후 히로인 상담소
「새해에는 만나러 갈게」와 「잊힌 일곱 번째 영웅과 보라 강물 던전 괴담」보다 더 깊숙이 서브컬처에 맞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게임이나 만화, 웹소설의 장르 문법에 익숙하신 분들께서는 쉽게 이해되실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엔딩을 맞이했을 때, 더 이상 독자의 시야에 등장하지 못하고 한두 줄의 에필로그로 짧게 정리되는 히로인들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엔딩에서 멈춰 버린 모습보다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쪽이 더 마음이 놓인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 십 년을 크게 빙 돌아 너에게로
‘11월의 취미’ 소일장에 참여한 글입니다. 여러분은 고쳐야 하지만 아무래도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 있으신가요? 저는 의자에 앉을 때 다리 발목을 X자로 교차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게 척추측만증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고치려 열심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만약 시술을 통해 이 습관을 손쉽게 고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간단한 시술을 통해 안 좋은 습관들을 덮어씌우는 일이 일상적인 세계 속에서, 의지할 데 없는 한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썼습니다.
- 2월과 원한과 나의 아름다운 생활
‘이별의 2월’ 소일장에 참여한 글입니다. 여러분은 적금을 자주 드시나요? 저는 목돈을 묶어 둘 요량으로 이런저런 적금을 구경하곤 하는데, 이렇게 쳐다보는 은행 어플 속에 기이한 존재가 숨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등장하는 이들이 너무 뻔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 진부한 흐름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퍽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출은 신중하게 받도록 합시다.
Q. 한편, 작가님께서 브릿G에서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거나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A.
-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
제목부터 충격적인 그린레보 작가님의 소설입니다. 제목만 보면 남성 화자의 이야기인가 생각하기 쉽지만, 이럴 수가, 발기부전의 위험은 여성에게도 덮쳐 옵니다! 정확히는 담뱃갑의 경고 이미지와 같은 모습을 한 발기부전의 요정이 찾아옵니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너무 웃기고 절절히 공감되는 바람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을 못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흡인력이 강하고 멋진 색채를 가진 소설을 쓰시는 작가님입니다.
- 신의 사탕
HY 작가님의 이 소설이 언제 쓰였는지를 찾아보니 17년도라고 나오네요.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득문득 제 마음속에서 떠오르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단순한 호러라기엔 서글프고, 서글픈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만약 내 뒤통수에 나보다 더 뛰어나고 아름다운 얼굴이 돋아난다면, 그래서 모두가 그 존재를 나보다 사랑하고 아껴준다면?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걸까? 그 얼굴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를 지닌 존재인 걸까?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 우리의 밤
적사각 작가님의 글은 처음 읽었을 때 글의 구조가 탄탄하게 얽혀 있어 감탄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 작품에서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선명하고 섬세하게 인식하기 위해 스레드 수술이라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려는 주인공과 어쩐 이유인지 그 시술을 차일피일 미루고 반대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무작정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단지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 그리고 소통에 대한 성찰을 전해 주는 방식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 해맑은 당신
촘촘한 묘사와 구성이 무척 인상적인 소금달 작가님의 글입니다. 소개드리는 작품은 어느 폐지 줍는 할머니와 분식집 주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가슴 따뜻하게 이어지는 듯하다가도 뜻밖의 결말이 펼쳐지고 맙니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남을 폄훼하고 때로 생계까지 위협하는 수단이 될 때, 그것은 과연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죄라 한다면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목과 더불어 상당히 씁쓸한 맛을 남기는 단편입니다.
Q. 마지막은 고정 질문입니다. 브릿G에 바라는 점(기능적, 제도적 부분 등)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사실 기능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을 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느꼈던 아쉬운 부분이나 제안점에 대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1. 게시판의 페이지 목록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브릿G의 자유게시판을 예시로 들면 총 페이지가 385페이지인데 페이지 목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숫자는 1페이지 기준으로 2페이지까지입니다. 만약 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 하는 경우라면 크게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만약 기간이 상당히 지난 게시물을 찾고자 할 경우에는 다소 번거롭습니다. 적어도 5페이지까지는 한 화면에 뜰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예시 이미지:
2. 브릿G만의 기본 프로필 이미지가 있으면 어떨까요?
현재 브릿G의 기본 프로필 외에, 브릿G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프로필 이미지가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브릿G만의 색깔이나 로고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구요. 저 같은 경우 프로필의 사진을 고르는 것도 필요 이상으로 신중해지고 말기 때문에, 사이트에서 기본 프로필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면 선택의 폭이 생겨서 좋을 것 같습니다.
3. 큐레이션 게시글에 자신의 작품이 등록되었을 때, 이에 대한 알림이 올 수는 없을까요?
브릿G에서는 리뷰어분들이 자체적인 큐레이션을 만들어 작품을 정리해 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리뷰어분들이 큐레이션을 작성해 내부에 작품 링크를 걸어 주셔도 별도의 알람이 오지 않기 때문에 리뷰어분께서 따로 작가명을 언급해 주시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작품이 어디서 언급되었는지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을까요?(프로그래밍 지식이 없어 아이디어를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부디 사이트 운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안해 주신 내용 모두 좋고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개발자님과 상의 후 기능 개편 공지를 통해 소식을 전해드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우선 1번과 3번은 곧바로 논의가 진행 가능할 것 같아 내부적인 일정이 정리되는 대로 개발자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2번은 진행 중인 간편가입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함께 보완해도 좋을 것 같고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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