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못지 않아! 진하고 애절한 혹은 비뚤어진 부성애를 다룬 작품

대상작품: <호식총을 찾아 우니> 외 7개 작품
큐레이터: 사피엔스, 21년 12월, 조회 238

원래 어버이날 즈음에 올리려고 한 큐레이션인데 미루고 미루다 연말이 되어 버렸네요. 그냥 내년 어버이날에 올릴까 하다가 마침 이벤트를 하길래 올려봅니다. 부성애를 다룬 일곱 작품입니다.

모성에 관해서는 본능이나 학습의 결과나 논란이 많은데 부성에 관해서는 어째 토론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 여러 연구에 의해 모성이 본능보다는 학습의 결과라는 걸 우리는 알게 되었는데요. https://kiss7.tistory.com/1269 해리 할로우라는 심리학자의 유명한 실험입니다. 아기 원숭이를 이용(사실상 학대)한 헝겊엄마 철사엄마 실험인데요. (헝겊엄마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이 너무 가엽지 않나요? ㅠㅠㅠㅠ 제가 데리고 와서 키우고 싶어요. ㅜㅜㅜㅜ ) 이 실험을 통해서 접촉위안이라는 게 참으로 중요하구나 하는 걸 깨달았는데, 슬픈 뒷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 실험에 이용된 아기 원숭이가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무리에 잘 섞이지 못 했고 우울증을 앓았으며 심지어 새끼를 낳고도 전혀 돌보지 않았다고 해요. 단순히 어린시절이 불우해서일 수도 있지만 모성이라는 건 학습에 의해 습득하는 거라는 증거라고도 볼 수가 있겠죠. 저 헝겊엄마는 최소한의 접촉위안을 주긴 했어도 적극적으로 자식을 돌보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니까요.

다행인 것은 엄마에게 방치당한 새끼 원숭이들이 아빠 원숭이가 잘 보살펴 주면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연구가 있다고 하네요. 아이가 애착을 느끼는 대상은 꼭 엄마가 아니어도 된다는 거죠. 대다수의 동물 수컷들이 교미 후에 암컷을 떠나고 암컷 홀로 새끼를 키우는데 수컷도 육아에 참여하는 종이 존재하고 그 중 하나가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라고 하네요. 옛날엔 돈 벌어오면 아빠 노릇 끝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요즘은 엄청 살뜰하게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이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죠? 평균적으로 봤을 때 육아 노동은 여전히 엄마들이 더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육아에 소극적인 아빠들에게 롤모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성애도 학습의 결과라면요.

얼마 전에 수전 블랙모어의 ‘밈’이라는 책을 읽고 인간 사회의 여러 현상을 밈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는데요. 모성 신화가 밈의 하나라면 부성 신화도 밈의 확산이라는 방법으로 머리에 각인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부성애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고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을 모아봤습니다. 모두 굉장히 재밌고 여운이 많이 남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빠들이 부성애의 적절한 롤모델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이런 무책임한 큐레이션???)

 

1. 호식총을 찾아 우니

수찬은 전국을 떠돌며 사는 도망자입니다. 어느날 초면의 총각과 함께 호랑이가 나온다는 산을 넘게 됩니다. 실수로 호식총(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의 영혼이 창귀가 되지 않게 가둬놓는 무덤)을 부순 뒤 총각에게 타박을 듣다가 산을 홀로 헤매는 한 여자아이를 만납니다. 총각은 그 여자아이가 산적의 딸이거나 창귀일 거라 욕하지만 수찬은 어쩐지 아이를 따라가고만 싶어집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되고, 옛 기억에 사로잡히는데요. 과거 수찬은 혜랑이라는 기생을 사랑했는데, 기생이 어느 대감의 첩으로 들어가 낳은 딸인 난아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수찬은 혜랑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과 난아에 대한 모호한 애착으로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뒤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었는데요.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산속의 아이와 난아는 서로 어떤 관계이고 수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부성애와 집착과 죄책감을 오가는 수찬의 심리가 돋보입니다. 짠하고 처절한 결말을 느껴보세요.

 

2. 당신은 누구의 꿈을 꾸나요?

영국은 병으로 아내를 잃고 힘겹게 두 딸을 키우는 싱글대디입니다. 청소대행과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대리수면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남의 잠을 대신 자 주고 돈을 받는 것이죠. 몸에 무리가 오므로 일정 시간 이상 할 수가 없지만 영국은 사고로 몸을 다쳐 이 일 말고는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탁가정에 맡긴 채 불법 대리 수면을 하게 되고 결국엔 환각을 보게 되죠. 아이들과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꿈이었는데요. 영국은 이것이 자신의 꿈인지 남의 꿈을 대신 꾸는 것인지 혼란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었을 텐데 아빠는 돈을 버느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돈이 있어야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울 수가 있으니까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주지 않는 사회, 육아 부담을 각 가정에 전가하는 사회에서는 육아란 이렇게 힘든 것일 수밖에 없네요. 아빠와 놀고 싶다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소망조차 사치가 되는 사회입니다. 영국의 처지가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우리 누구나 저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하고 우울하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3. 완벽한 죽음을 팝니다

태호는 역시나 아내를 병으로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대디입니다. 헌데 그 딸마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태호는 엄청난 병원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매일 죽기만을 기도합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마몬(Mammon 탐욕을 상징하는 악마)이 나타나 원하는 대로 죽여주겠다고 합니다. 대신 대가를 받고요. 그 대가란 태호가 가입한 보험에서 나오는 보험금이죠. 죽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정작 죽여준다니 고민에 빠진 태호는 마침내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죽어 나오는 보험금 일부를 딸에게 돌려주고 딸을 그렇게 만든 뺑소니범을 단죄해 준다는 조건으로요.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딸을 보겠다는 심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던 태호는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합니다. 과연 태호는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까요? 그리고 아버지 없이 홀로 남게 된 그의 딸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당신은 누구의 꿈을 꾸나요?’와 유사한 상황에 놓인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야만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죠. 그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와, 아무리 발버둥쳐도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4. 프로파일러

소설의 첫 문장이 ‘나는 아동성애자다.’입니다. 계속 읽을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읽어봤는데, 와우,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어요.

주인공 ‘나’ 척 홀트는 특수부대 출신의 아동성애자 입니다. 한 달 째 경찰에 쫓기고 있죠. 코어 프로파일러 시스템이라는, 원리가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수사 기법이 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경찰을 따돌리려 어느 소도시에 숨어든 척 홀트는 저녁 늦게 찾은 바에서 자신과 굉장히 비슷한 남자를 만납니다. 취향(아동성애라는 취향까지!)과 외모도 같을 뿐더러,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에 이름까지 같네요! 처음엔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듯 즐거워하지만 통성명을 하면서부터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서로를 적대하게 되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저는 도대체 이 소설을 왜 부성애를 다룬 소설로 분류한 걸까요? 결말에서 제대로 뒤통수 맞는, 반전이 엄청난 소설입니다.

 

5. 제3의 남자

이 소설의 주인공은 2명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최대국과 60년대를 살아가는 월출. 두 사람의 시각이 번갈아 이어집니다.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빚더미에 올라 있는 대국에게 어느날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는 대국의 아버지 최희도가 총에 맞았다며 돈을 줄 테니 아버지의 수첩을 찾아달라고 합니다. 대국은 아버지와 연락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 그는 태권도를 잘 해 대회에서 상을 받아올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아버지는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술에 취해 대국의 다리를 부러뜨리기까지 했으니까요. 그 일로 대국은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 것입니다. 단지 돈 때문에 아버지의 수첩을 찾으러 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을 찾은 대국은 아버지의 과거와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데…

한편 월출은 헌책방을 운영하는데 겉보기와 달리 엄청난 비밀을 품고 있는 남자입니다. 김해경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자신의 비밀로 인해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 하죠. 결국 헤어지고 운명의 장난처럼 자꾸 엇갈리던 두 사람은 마침내 어떠한 결실을 맺게 되는데요. 몇 회를 읽다보면 주인공 대국과 월출의 관계를 눈치채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는 가슴 진한 감동이 물밀듯이 덮쳐오죠. 아버지는 도대체 왜 아들의 다리를 부러뜨렸는지를 깨닫게 되면서요.

사랑하는 아들에게 모진 짓을 해야만 했던 아버지는 어떤 비밀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도 감동이었지만 월출과 해경의 로맨스도 무척이나 애틋해서 여운이 길게 남았던 소설이었습니다.

 

6. 야운하시곡

죽은 자의 피가 흐른다 하여 사혈공이라 불리우는 주인공. 냉정하고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무림의 고수입니다. 그의 손에 죽어나간 이가 도대체 몇인지 알수가 없죠. 근데 그런 그에게도 끔찍이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똑똑하면서도 병약한 아들이었죠. 그 아들을 살리려 애써보지만 지난 세월 쌓아놓은 업보 때문에 도와주는 이가 아무도 없네요. 결국 아들은 죽고, 사혈공의 피는 진정으로 죽어버립니다. 다시 강호로 돌아간 사혈공. 얼키고 설킨 인연에 따라 또다시 여러 목숨을 거두며 살아가던 그는 이제 늙었습니다. 한때 아들과 살았던 산장으로 돌아가 아들의 무덤을 찾는데, 그런 그를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찾아온 이는 누구였을까요? 사혈공과 어떤 인연으로 만난 사람일까요?

이 소설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눈물어린 사랑과 그리움이 시종일관 절절히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말이었지만 빼어난 심리 묘사와 맛깔난 문장들 덕분에 전혀 아쉽지가 않았네요. 천하를 떨게 한 무림의 고수도 결국 아들의 앞에서는 나약한 아버지일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그 죄는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7. 콜러스 신드롬

이 큐레이션을 작성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그만큼 충격과 여운이 엄청나서요.

재호는 콜러스 신드롬이라는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딸 윤하를 키우기가 너무 버겁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타임리프 능력을 이용해 아이가 태어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버립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후회하고는, 다시 똑같은 딸을 낳기 위해 타임리프를 반복하며 같은 여자와 결혼하고 출산하기를 반복는데요. 매번 윤하와 다른 아이가 태어납니다. 무려 16번이나 그런 일을 저지르죠. 이쯤 되면 지칠만도 한데 재호는 기어이 윤하를 낳아야만 이 미친 짓을 그만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유슬은 어떤 심정일까요? 물론 자신의 기억에는 없지만, 16번이나 아이를 낳고 잃게 된 걸 알았을 때요. 정말 미쳤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재호의 이 집착은 정말 부성애라 부를 수 있는 걸까요?

저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육아는 정말 인간성의 극한을 볼 수 있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나 자신과 배우자의 면면을 보게 되죠.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여주게 된달까요? 스스로도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어 놀라게 되고요. 따라서 육아는 부모에게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파멸(?)로 이끌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애정과 애착은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뭔가 보상을 바라는 심리일까요? 이 소설에서 재호는 구원와 속죄를 바라지 않았나 싶네요.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그걸 무마하려다 또 다른 죄를 지어버리잖아요. 아내인 유슬이 하는 짓도 미쳤다고 밖엔 안 보이지만 미쳐버릴 만 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소설이었습니다.

 

찾아보면 부성애를 다룬 소설이 더 있겠지요? 아직 다 못 읽어서 소개 못 시켜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다른 분들께서 좋은 작품 더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 독서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