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를 이루는 벽돌은 바르게 쌓아지고 있는가? 공모(비평)

대상작품: 짐승 (작가: 붕붕, 작품정보)
리뷰어: , 17년 3월, 조회 186

지인이 ‘줌바 댄스’를 배우기 위해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나는 ‘줌바’와 ‘댄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에서 탱고나 차차차를 그리고, 발리 댄스를 연상했다. 즉, 나는 줌바 댄스가 뭔지 모르다. ‘댄스’를 마치고 온 지인에게 ‘줌바 댄스’가 뭔지 물어봤다. 지인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스마트폰에 네 글자만 치면 온갖 영상이 다 나오는데 ‘검색’은 해 봤어?” 나는 대꾸 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인과 ‘줌바 댄스’를 주제로 둘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줌바 댄스’가 궁금했는지 스스로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줌바 댄스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즉, 지인의 검색도 안해 봤냐? 라는 말은 적확한 지적이었다. 결국 지인이 손수 검색해서 보여준 ‘줌바 댄스’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댄스였다. 그걸 ‘댄스’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가는 ‘댄스’였다.

 

내가 이 사소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짐승’의 첫 문장 때문이다.

 

‘그녀의 입술은 고양이 발바닥 같다.’라는 이 문장이 나에게 힘든 시련을 주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생각해보자. 작가의 의도가 고양이 발바닥을 통해 입술의 부드러움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였다면 (이 문장이 교집합과 합집합 그리고 등차에 관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술’과 ‘고양이 발바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고양이 발바닥이 여성의 입술만큼 부드럽다면 대부분의 고양이는 절대 걷지 못할 것이다. 고양이는 신발이 없다. 아마도 아스팔트는 오 분도 걷기 힘들 것이다. 나무는 오를 수도 없다. 발바닥이 찢겨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발바닥은 의외로 단단하다. 부드러운 플라스틱 같다고 하는 게 맞는 설명일 것이다. 물론 고양이를 키워서 알고 있는 지식은 아니다. 그저 인터넷에서 지나가는 글로 읽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이 비유가 맞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양이 발바닥을 만질 순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동물 만지는 것이 무섭다. 그래서 동물을 키우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고양이 발바닥과 여성의 입술이 비슷한 느낌인가요?’,

내용은 소설에 이런 비유가 있는데 맞는 말인지 궁금하다.

 

라고 썼다. 내가 올린 글을 308명이 읽었고, 댓글은 세 개가 달렸다.(내가 단 답글은 제외)

 

  1. 어린고양이는 몰캉몰캉 쫀득 합니다.
  2. 여자 입술이 나오는 소설은 어떤 소설 입니까?
  3. 고양이 발바닥은 알겠는데 ㅠ,ㅜ

 

이렇게 세 개가 달렸다.

 

댓글의 개수로 보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소설적 표현에 관심이 없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이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에 일화가 하나 나온다. 20킬로 정도 나가는 가방을 커다란 고무밴드에 묶어서 매달아 놓는 트릭을 구상한 작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20킬로 정도 되는 가방을 만들어 문 위에 매달아 놓고, 고무밴드가 시간당 늘어나는 길이까지 체크했다. 나는 모든 작가가 이렇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정도로 할 생각까지는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짐승’을 쓴 작가 ‘붕붕’님은 그녀의 입술을 고양이 발바닥에 비유할 때 얼마나 많은 문장중에서 이 문장을 골랐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나는 “라면을 시켰는데 다 끓인 라면보다 단무지가 먼저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대부분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그런 상황을 싫어한다. 배만 더 고프게 하고, 정작 집어먹은 단무지는 주린배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짐승’의 1회는 “1회-장근덕(1)” 으로 시작하는데 문장은 0. 프롤로그:오동구(0)로 시작한다. 1회 장근덕 이라는 제목 아래, 0프롤로그를 넣을 때 작가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내가 이 ‘짐승’을 읽게 된 계기는 당연히 ‘브릿G’ 메인에 뜬 편집부의 추천 때문이다. 편집부는 ‘굳이 잘나가는 작품을 편집부가 추천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이 주간 하고 ‘추천 하는게 좋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편집부의 추천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리뷰(내 첫 번째 리뷰는 ‘내가’ 삭제했다.)를 통해 깨달았지만, 기대를 갖고 ‘짐승’을 읽었다. 그리고 리뷰를 쓰기로 결정했다. ‘리뷰 공모’에 당선되면 작가가 지급하는 ‘50골드’가 탐났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리뷰 잘 쓰면 상품권 드립니다.’는 ‘브릿G’의 트윗도 보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잘나가는 작품에 아직 리뷰가 달리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리뷰’는 작품을 팔기에 가장 좋은 ‘흥정’수단이고 ‘브릿G’는 이 부분을 권장한다고 생각한다.(완결되지 않은 작품에 리뷰를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50골드라면 감수할만 하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브릿G’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풀고 가려고 한다. ‘짐승’을 예로 들면 리뷰만 잘 써도 “편집부가 선택한 잘나가는 소설(모든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시간 절약, 양질의 작품선택) + 리뷰에 대한 작가의 골드 지급 + 리뷰에 따른 브릿G의 상품권 지급”이 이루어진다.

 

즉, 좋은 작품을 읽을 수 있고, 리뷰만 잘 써도 간단한 용돈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짐승’에 아무도 ‘리뷰’를 달지 않았다. 여기서 ‘브릿G’는 자신들이 깔아놓은 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브릿G’가 중단편 시장을 살려서 이를 통해 장편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즉, 예전에 티비에서 ‘단막극’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 + 감독 + 연기자”를 키워내듯이 “작가 + 독자 + 리뷰어”를 키워서 “유통” 하는 것이 ‘브릿G’의 미래 구상이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작가 + 독자 + 리뷰어”의 삼박자가 있어야 하는데 잘 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막극’이 티비에서 사라졌듯이 만약 ‘브릿G’가 중단편 시장을 포기한다면… 아니다 아직 beta도 떼지 않은 사이트에서 너무 멀리 나갔다. 옳지 않은 방향으로.

지난 첫 리뷰에서 밝혔듯이 내 리뷰는 ‘서평 쓰는 법 – 이원석’을 근간으로 한다. 이 책의 내용중에 “작품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결정하라”를 기준으로 ‘짐승’을 리뷰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고백하면 난 지금 ‘중간’에 서 있다.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그 자리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1. ‘글’ 과 ‘대화’

 

‘짐승’의 작가 ‘붕붕’은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잘 쓴다는 의미는 ‘퇴고’에 해당한다. 문단을 읽다 보면 문장이 깔끔하지 않다. 우선 작가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 있다. 두 번째는 퇴고할 시간이 없기 때문일 수 있는데, 나는 ‘짐승’이 거의 퇴고 되지 않은 상태로 사이트에 올라온다고 생각한다.(혹시 작가가 많은 퇴고를 한 것이라면 미안하다. 문장을 쓰는 기초에 대해서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춤법 사이트’에 의존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비유가 대부분 ‘관습적’이다. 낯익거나 어설픈 비유는 오히려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방지턱’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짐승’에는 하나하나 열거 할 수 없지만 그런 비유가 상당히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글이 아닌 ‘대화’를 기준으로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짐승’에서 등장인물은 ‘대화’를 통해 살아난다.

 

이 글을 읽고 ‘짐승’의 아무 회차나 골라서 ‘글’이 써있는 부분과 ‘대화’가 써있는 부분을 천천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글’이 있는 부분은 잔가지가 너무 많다. 문장도 너무 길다. 잘라낼 곳이 여러 곳 눈에 보이는데 비해서 ‘대화’를 읽어보면 스크롤이 쭉쭉 내려가며 등장인물의 생동감이 느껴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가 ‘대화’를 참 잘 쓴다. “잘쓴다”와 “못쓴다”의 내 기준은 소설 속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작가’인지 ‘등장인물’인지 구분해 보면 된다. 못 쓰는 소설은 두 사람이 대화 하고 있어도 작가의 말만 보인다. 공감 하는가?

 

  1. ‘구성’ 과 ‘한계’

 

12회- 오동구(3)의 마지막에 ‘미셸은 도대체 자기 언니를 왜 죽인거야?’라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이 문장을 통해 작가의 ‘구성’이 한 단락 마무리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시간의 흐름을 속이는 ‘서술트릭’을 쓰려는 것이 아닌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침 작가 코멘트에도 ‘반환점’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짐승’에는 많은 단문 응원이 있는데, 대부분 ‘재미있다’고 말한다. 글을 남긴 사람들의 ‘재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작가의 ‘구성’이 차지 할 것이다.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사건을 조금씩 구성해 나가는 재미가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 소설을 읽게 만든다. ‘그런데 언제까지 독자가 이 놀이에 참여할까?’ 라는 것이 내 질문이다. 이 질문이 ‘짐승’이 갖고 있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체 회차를 살펴보면 회차에 따른 추천수가 줄고 있다.

 

예전에 한 예능에서 릴레이 웹툰을 그릴 때 첫회와 마지막회의 ‘클릭수’와 ‘추천수’는 거의 두배 차이가 났다. 차이가 나버린 이유는 여러 가지 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픈빨’을 얼마나 끌고 가느냐가 장사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짐승’의 오픈빨은 ‘구성’에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끝까지 통할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은 ‘조지 RR 마틴’ 옹 정도 되어야 가능 한 것이다. 그것도 장편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편과 중편은 독자가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과연 ‘붕붕’작가가 어떻게 독자를 이끌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언니를 왜 죽인거야’에서 이 작품이 단편인지 중편인지 결정해야 했고, 독자를 이끌어갈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결정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7회 까지 읽었는데 슬슬 ‘구성’의 한계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1. 캐릭터의 깊이

 

장근덕을 예로 들어보자.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장근덕은 ‘구구단도 못 외울’ 혹은 ‘못 알아 들었으면 알아들을 때 까지 물어 볼’ ‘월세를 낼 정도의 아르바이트는 가능’ ‘사람 구실 못하는’ 이렇게 묘사되었다. 즉, 소설 속에서 모자라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는데 나는 장근덕의 대사나 생각, 행동에서 한 번도 답답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시체를 자르는 부분에서는 놀라기도 했다. (발각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 할지 ‘생각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장근덕이 모자라는 사람, 혹은 구구단도 못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독자가 캐릭터를 어느 정도 위치에 두어야 하는지 작가는 적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장근덕을 보면서 ‘고구마’ 생각이 한 번도 안났다는 것은 내가 ‘장근덕’수준이거나 장근덕이 겉에서 보기에는 모자라지만 머릿속은 나름 잘 굴러가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구구단을 외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작가는 캐릭터의 깊이를 묘사하는데 실패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약간 정신적 절름발이(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로 묘사된다.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고, 집이 싫다고 무작정 뛰쳐나가서 언니를 협박하고, 사랑 때문에 시체를 버릴 생각을 하거나, 우월감 때문에 만나던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눈에는 이 모든 캐릭터가 ‘작가의 분신’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분신’은 많은데 분신 각자의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다. ‘왜 등장인물 중에 제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이 없는가?’ 라는 문제는 작가가 조금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추리와 미스터리는 보통의 사람 속에 있는 특이한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보통의 독자가 누군가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짐승’에서 당신은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가?

  1. 상황 과 줄거리

 

‘짐승’은 주로 상황에 빠진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독자가 ‘짐승’을 읽은 이유는 이런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줄거리는 어떻게 될까? 나는 ‘짐승’이 대충 무슨 이야기 인줄은 알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반환점을 돈 상태라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줄거리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완결되지 않은 작품이기에 여기서 글을 줄이겠다. 하지만 작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짐승’의 ‘줄거리’는 무엇인가? 좋은 작품은 요약이 잘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상이 내가 ‘짐승’을 읽고 난 후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그리고 왜 내가 아직 이 작품을 사랑 하는 쪽과 미워하는 쪽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지 설명하는 글이다. 작가의 계속 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다른 리뷰어의 리뷰를 통해서 내가 ‘짐승’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 받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브릿G’의 추천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그럴지는 나도 모르겠다.

 

-한글에서는 1,2,3,4 인데 여기는 왜 1,1,1,1인지 모르겠다. …. ..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