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력 트롤리 공모(감상)

대상작품: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시끄러운 삶의 방법. (작가: 배웅,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3시간 전, 조회 22

잘 봤습니다. 이득없는 회귀라고 태그에 적혀 있지만, 회귀가 스토리적으로 가질수 있는 이득을 최대로 굴리는게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회귀의 이득은 무엇일까요? 주인공 입장에서 가지는 장점 말고 이야기에 있어서 회귀가 가지는 진짜 장점이요. 바로 부담없이 주인공을 실패시킬수 있는 장치라는 점이에요.
한번 실패했기 때문에 좀 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미 실패했던, 웹소설의 용어로 표현하면 고구마 구간을 강제 스킵할 수 있는 장치죠.
명백하게 실패한 운명이라는 거대한 고구마를 쥐어주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죠. 그 부분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해요.
작법을 배우다 보면 뭐가 안되면 일단 등장인물을 죽이라는 조언을 받곤 합니다.
그런데 회귀를 하면 주인공을 죽이고 시작할수 있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동력을 얻고 시작하는 것이죠.
이 이야기에서 그렇듯이요. 그렇기에 그 뒤에 나올 이야기적인 미숙함들을 상당부분 가릴수 있었다고 봐요.

다만 트롤리란 무엇일까요? 굳이 굳이 무동력이라고 말한 까닭은, 이야기가 최초에 회귀를 통해 출발한 이후 단순히 쭉 낙하하기만 한다는 인상이 강해서 그래요. 고요한은 시한부라는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지만,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한 삶으로 한번 낭비해요. 그래서 회귀를 통해 얻은 두번째 기회를 자신의 후회스러운 전 무대를 덮어쓰기 위해 쓰기로 결정하고, 해운대 무대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주인공의 동기는 명확합니다. 어차피 뒤질 인생. 후회없는 무대에 서고 싶다. 좋죠. 그걸 못해서 회귀까지 했으니까요.
하민, 한결, 해진의 동기는요?

무대에 다시 서기 위해 시한부와 회귀까지 필요했던 요한에 비해 하민, 한결, 해진의 동기는 애매하다고 평하기도 뭐하고 언급조차 없는거 같네요. 이게 밴드임에도 불구하고요.

아 물론 락 스피릿이란 우주를 관통하는 삶의 원리이며 락스타가 되자는 제안은 누구나 가슴속 깊숙히 감추고 있는 꿈이기 때문에 옛날에 밴드했던 친구가 다시 밴드 하자고 제안을 하면 거부할수 없는게 당연하죠.

반쯤은 진심입니다. 청춘은 그 자체로 찬란하고, 락은 아름답죠. 좋아요. 하지만 놀이동산에 갔다고 생각을 해 볼까요? 단 한번의 상승과 하강으로 완료되는 트롤리도 재미는 있지만, 더 많은 덜컹거림, 더 많은 상승과 하강이 있는 트롤리가 더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 평가받는건 당연하겠죠.
‘덜컹거림’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민, 하결, 해진이 단 하나의 불협화음없이 밴드에 들어온 것, 그리고 해운대 무대에 서기 위한 자격조건이 명시되지 않은것. 일단 이 두가지가 되게 어색하게 느껴지네요.
드라마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뭘 하려고 하는데 대단히 어렵다. 이 대단히 어려운 것을 극복할때 드라마가 생성됩니다. 작법서마다 이 대단히 어려운것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말들을 동원하는데요, 밴드물에서 대단히 어려운건 당연히 밴드를 재결성 할때 사람들이 내거는 조건이겠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작중에서 요한은 보컬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은비를 영입합니다. 은비는 돼지 오빠와 같이 밴드할 이유를 찾지 못하지만, 시한부라는 것을 알고 합류하죠. 다른 밴드 구성원들이 이정도의 이야기도 없는거 같아 좀 미묘하네요. 물론 락 스피릿이란 어쩌구, 밴드 다시 하자는 제안은 저쩌구…

과거의 한 지점은 결국 상태에 불과합니다. 이런 속성들이 사건들을 통해 인과로 나열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줘야 하는데 그게 없이 속성들로만 존재하는거 같네요. 잘 나가는데 싱어송라이터가 굳이 학생밴드를 할 이유가? 여장이 취미라면 공개적인 활동 하는것 자체가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하민은… 너무 편의적으로 만들어낸 케릭터라 굳이 고요한과 분리할 이유가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굳이 달아주자면 이미 부자니까 밴드같은 헛짓거리를 그만두고 가족사업에 집중하라거나? 특이한 케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밴드하지 않을 이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밴드를 하는 이야기가 없어 조금 아쉽네요.
같은 이유로 마지막 해운대 무대자체는 맥거핀으로 묘사하지 않아도 되지만, 평소에 그 해운대 무대에 서지 못하는 까닭이 더 명확했다면 어떨까 싶네요. 해운대 무대 다시 서고 싶어서 버스킹 몇번 하고 해운대 무대에 섰다고 하면 이게 강렬한 드라마로 와닿지 않아요. 단순하게 예를 들면 밴드 sns 좋아요 수 등의 흥행성이 필요하다거나, 이제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니 무대 슬롯은 하나라 경쟁을 해야 한다거나 혹은 이런 모든걸 받아들이고 준비된 무대 아래에서 연 버스킹이 무대를 잡아먹거나 같은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극복을 통해 독자에게 드라마적 쾌감을 줄 수 있는 장애물이 있다면 좋을거 같네요. 그렇게 덜컹거림을 쌓아간다면 좀 더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요.

회귀가 주는 강렬한 에너지, 라고 했지만 덜컹거리지도 않는 무동력 트롤리에서는 언제든지 내릴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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