默湖의 꽃과 로맨스와 갈등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묵호의 꽃 (작가: 버터칼,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7년 9월, 조회 217

버터칼 작가의 [묵호의 꽃]을 42화까지 다 읽은 첫 인상은 굉장히 부지런하고 능숙한 소설이란 점이었다. 사건을 단계적으로 계속 배치해 소설이 지루할 틈이 없다. 또 그 과정에서 가상역사(조선이 배경이긴 하다) 동양풍 로설에서 나타나기 쉬운 단점 – 동양풍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오만가지 단어에 한자(漢字) 병기 – 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배테랑인가 싶을 정도로 때로는 과감하게 중요치 않은 단어 한자 병기를 안 하고 진짜 중요한 사람 이름, 단체 이름 등만 한자 병기 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가 독자에게 이 소설에서 진짜 중요한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각인시키기 까지 한다. 이 부분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능숙하다.

 

사건이 부지런히 벌어진다는 점에서 히트 로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묵호의 꽃]은 부지런하다. 단계별로 사건이 발생하고 캐릭터 수도 천천히 늘어난다. 촘촘하고 우왕자왕하지 않는다. 또 양반 자제인 남주가 변장해서는 밤마다 악의 무리 진상을 파헤치려는 부분에서는 얼마전 히트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건을 진행하는 방식에선 전자가, 캐릭터 설정에선 후자가 연상됐다. 차이가 있다면 두 작품은 남장여주 설정인 반면 [묵호의 꽃] 여주 ‘솔이’는 시종 여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가면을 쓸 이유가 없다. 왜냐면 솔이는 보통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초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그녀는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기에 남의 구원을 바라는 수동적인 캐릭터로도 전락하지 않는다. 솔의 고유한 ‘능력’은 계속해서 소설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맨스 소설의 특징으로 흔히 꼽히는 점이 ‘해피엔딩’ 결말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 방해물을 제거하고 맺어지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로맨스 소설, 특히 한국 로설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은 ‘두 주인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부일처제’이다. 장르로서의 로설에서는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가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일부일처제로 결론이 나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로설은 성립될 수 없다. (물론 배테랑 작가가 쓴 로설 중 이 일부일처제란 제한을 부숴버린 책이 있긴 하다만 워낙에 특수하고 충격적인 예라 논외로 한다.) 때문에 [묵호의 꽃]에는 또 하나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가상 역사이긴 하나 우리가 아는 조선이 배경인 한, 천민인 솔과 양반인 남주 사이에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 차이가 존재한다. 이게 현실이라면 솔이 첩으로 들어가면 되나, 앞서 말했듯 로설 철칙인 ‘일부일처제’에서 이 결론은 불가능하다.

 

이 신분 차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주인공 ‘솔이’다. 그녀는 수시로 옆집 오라버니를 ‘나리’로 부르고 양반집 자제들에게 깍듯하게 호칭하고 이들과 싸워봤자 천민인 자신의 밥줄이 끊길 뿐이라고 말한다. 누구보다 솔이가 제일 잘 안다. 소설안에서 솔이가 신분을 자각하는 장면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때문에 솔은 개인적인 비밀을 밝혀야 하고 남캐와의 사랑도 확인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이 신분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는 이름만 양반이더라도 어쨌든 여주도 양반이었다. 세자저하와 천민 여주의 사랑이야기인 [구르미 그린 달빛]은 둘이 여전히 사이좋게 지낸다는 열린 결말을 해결책을 삼았다. 그래서 나는 구르미 경우는 중반에 이미 죽을 고비를 넘긴 세자가 실제론 죽었고 이후 내용은 세자의 꿈이라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납득포기했다.  [묵호의 꽃]이 어떤 방법으로 이를 해결할지는 모르겠다. 왕이 솔이를 면천시켜줄 수도 있겠고, 두 사람이 다 포기하고 청나라 같은 타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고, 아니면 열린 결말일 수도 있겠고….이 갈등을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가 [묵호의 꽃] 결말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열쇠라고 본다.

 

[묵호의 꽃]은 부지런하고 능숙하면서 또 경쾌한 소설이다. 이 부지런함과 능숙함이 간혹 익숙함으로 다가와 클리셰의 답습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반에 성균관과 구르미를 떠올린 것처럼. 그러나 41화에 도달하면 작가는 이 익숙함을 다시 한 번 비틀면서 반전?을 꾀한다. 궁중 로맨스의 향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령 [해를 품은 달]과 같은 궁중 로설의 특징은,

  1. 남주인 왕(혹은 세자, 왕자)의 왕권이 약한 반면 반역 세력의 힘이 큼
  2. 1번 상황이 남녀주인공의 사랑 완성에 강력한 위협이 됨

물론 [묵호의 꽃] 주인공이 왕이나 세자는 아니다만 궁중 로설의 지류랄까 변주를 41화에서 느꼈다. 그래서 상당히 흥분했다.

 

현재 [묵호의 꽃]은 42화까지 올라왔고 아직 한참 연재중이며 앞으로 한참 더 가야한다. 로맨스의 향방은 일찌감치 결정났다만(로설팬이 지루하지 않게 수시로 많이 뿌려줬음) 이를 알면서도 계속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 캐릭터들과 이야기는 강력하다. 완결까지 이 강력한 힘을 계속 유지하길 기대한다.

 

*** 몇 가지 덧붙임

1) 묵호의 꽃이란 제목이 낯설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대신 한자 병기는 하는 게 어떨까 싶다. 딴 게 아니라 네 글자 제목이 짧고 좀 허전한 느낌이다.

2) ‘묵호’라는 호가 난 많이 재밌었다. 크….호부터 야망맨이야 이런 느낌이었다.

3) 난 의식적으로라도 서브 남주한테 마음을 안 주는데 어차피 서브 남주는 서브남주이기에 맘을 줘봤자 나중에 내 마음만 아플 뿐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돌맹이한테도 잘해주는 남자, 그 이름 서브 남주. 하지만 이 소설의 서브들에게는 마음이 많이 기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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