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원숭이가 원숭이들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쳤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신입사원 – 하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보네토, 17년 4월, 조회 179

================스포일러를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이 아래엔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마리오네트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설정 속에서 태어났다. 우리의 존재는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갓된 상태로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 절대자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존재이다. 우리는, 그저, 깨어나면 사라지는 꿈속의 존재들이다-

 

—흔한 상상 아닌가? 인류 역사 이래 주욱 등장한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라도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갔을 것 같은 그런 이야기. 오죽하면 데카르트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며, 자기 존재에 대해 못을 박고 지나갔다. 아마 데카르트도 자기 존재의 부정확성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었나 보다. 그러니 그렇게 단호하게 선언했겠지.

생각하는 나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지 마라, Cogito ergo Sum!

 

여기 의심스러운 회사에 본의 아니게 입사한 한 청년이 있다. 어쩔 수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환 중이다.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선 당연히 금전이 필요하다. 세일은 취직을 원했고, 회사는 세일의 손을 잡았다. …비록 그곳이 수상한 회사지만 말이다.

그놈의 회사란 게 얼마나 수상하냐고? 입사를 위한 면담에, 자기 어필도 필요 없고 회사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내 코가 석자인 금전 상황 위에선 병원비가 나팔을 부는데, 벤츠 타령이나 하는 수상한 노인네만 있다. 명함마저 수상하기 그지없는데, 그 생김새란 것이 아무런 무늬 없는 검은 색 일색이다. 오로지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는 명함. 세일은 역시 이 회사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세상이 세일을 그렇게 두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건 그 회사 뿐이다. 어쩌겠는가, 사람이 먹고 살아야지.

결국 입사 과정을 밟고, 일 적합성 판별을 위해 세일은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다. 신체검사는 평범하나 정신검사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여기에서 세일은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은 작품 전체를 꿰뚫는 화두였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 입? 바라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본 눈?

-전임자의 얼굴 반절은 찌그러졌고, 노인은 스스로 눈을 뽑는다.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문명은 꿈꾸는 자의 꿈의 파생물인가?

-꿈꾸는 자가 깨어날 때, 문명이 파괴되는 건 확실해진다. 그렇다면 인류의 문명은 그냥 허상처럼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거창하게 파괴될 것인가?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동시에 호수에 빠졌다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백만명을 죽여 천만명을 살릴 수 있다면 백만명을 희생시킬 것인가?

-일이란 건 봉인이라 적힌 손잡이를 당기는 것뿐이다. 천만의 원숭이들을 살리기 위해, 백만의 관계자들을 죽일 것인가? 봉인의 손잡이를 당기면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강림인가, 침강인가? 확실히 예상가능한 건, 그 백만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경험을 갖게 되고, 바라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아마 녹아내려 죽는 엔딩이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절대적 공포의 앞에서 어미가 자식의 눈을 뽑고, 아비가 자식을 집어 삼키려 하는 생지옥이 펼쳐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꿈꾸는 자의 꿈의 파생물을 지키려 하려는 자들이 있음이다.

 

자아, 이 모든 건 단지 가능성이다. 세일은 그저 지상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시계의 시간을 본다. 3시가 되면 무언가 일이 생긴다- 하지만 3시가 되는 일은 없다. 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없던 여자친구가 생겨 결혼을 하고, 집이 생기고, 벤츠가 생겼다. 그저 시간을 봤을 뿐인데. 그는 원숭이들의 법칙이 지배하는 원숭이 나라의 왕의 반열에 올라 버렸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리고, 비슷비슷한 내용의 꿈을 꾼다. 초조하게도 꿈을 꾸었다.

친절했던 이노인은 미쳐버려 눈을 뽑았다.

이노인은 어머니 옆에 입원했다.

이노인이 자살했다.

이노인의 자살과 맞물리기라도 한 듯, 종말의 시계는 3시가 되었다. 노인들은 녹아내리고, 세일에게 손잡이를 당기라고 했다. 머릿속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말한다. 말하고, 또 말한다.

 

꿈이 유지되는 기제는 무엇일까? 아기가 깨어나려 하면, 부모는 아기를 토닥인다. 어른이 깨어나려 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은 그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아니면 한 마디 속삭일 것이다. “더 자.”

손잡이를 당기면, 일부의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세일은 그곳이 과천이라 믿었다) 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꿈꾸는 자의 자장가라면, 맙소사, 꿈꾸는 자의 다정한 언어는 그저 잔인하고 끔찍하고 기괴하며, 오로지 피비린내와 비명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세일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얻어낼 현상의 유지가.

다시금 노인들이 녹아내리고, 무너져 바닥이 된다.

 

노인들은 스스로를 꿈꾸는 자의 종복, 꿈꾸는 자의 파수꾼이라고 했다.

 

자아- 파수꾼으로 선택받은 원숭이가,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올라타 있는 원숭이들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쳤다.

 

세일의 성공과 실패를 우리는 감히 재단할 수 없다. 하지만 확언할 수는 있는데, 그는 분명 실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리뷰를 읽는 당신이, 이 리뷰를 쓰는 내가 분명히 여기 살아있다. 꿈꾸는 자가 눈을 떴을 때 그 꿈에서 파생된 우리의 존재가 전부 사라지는 게 확실하다면, 아직도 살아서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잠깐, 정말로 “나”는 살아있는 게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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