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이 작품을 접하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작가님의 전작이자 출간까지 된 ‘얼음나무 숲’을 찾아보는 일이었습니다.
두 작품 사이의 시간 간격이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제가 보기엔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물론 이 글은 하 지은 작가님의 ‘언제나 밤인 세계’ 에 대한 감상글입니다만 역시나 작가님의 명작인 전작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가정의 달에 그 작품 또한 제 팬심 담긴 횡설 수설을 벗어나지 못 할 것 같아 미리 작가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옳은 순서는 아니지만 ‘언제나 밤인 세계’를 먼저 읽고 난 후에 본 ‘얼음나무 숲’에는 작가님의 글을 대하는 마음의 변화가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작에서는 한 천재가 일필휘지로 그려나간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었다면 ‘언제나 밤인 세계’에서는 좀 더 원숙해지고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시려는 듯한 시도가 보인다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작가님 특유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글의 분위기는 전혀 잃지 않으셨으니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아주 감사할 따름이고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이 작품이 어떻게 쓰여져나갈 지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큽니다.
전작에서는 유려하고 아름답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을 멋지게 연주해내셨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친숙한 ‘어둠’을 주제로 밤 세계의 문을 열어버리셨더군요.
자꾸 전작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그만큼 이번 작품에서 작가님의 변화가 제게는 꽤나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전작에 비해 글이 눈으로 머리로 착착 감겨옵니다.
단어가, 표현이 가벼워져서? 더 쉬운 소재와 이야기 거리를 끌어오셔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짧은 저의 식견으로 보기엔 이건 작가님의 노력의 결과로 보입니다.
특히나 장르 문학의 경우 어떤 표현을 쓰던 중요한 건 독자의 머리 속에 쉽게 이해되면서 오래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에는 그런 부분에서 독자분들이 작품에 더 가까이 몰입할 수 있도록 표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신경쓰신 부분이 보였습니다.
덕분에 너무나 즐겁게 한 화 한 화에 즐겁게 몰입하고 또 다음 내용에 대한 궁금증으로 신이 나서 스크롤을 내리게 되더라구요.
일단 완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이 작품의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밤의 일족’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의 초반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주인공 남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등장인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읽다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작가님이 그려 놓으신 큰 그림의 일부가 서서히 보이면서 작품의 예사롭지 않은 스케일에 감탄하시는 독자분들이 분명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불행한 운명을 가졌던 쌍동이. 그들의 부모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기 좋은 것만 보고 흉한 것은 피하려 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본성을 보여주면서 두 아이의 운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짓습니다. 그들은 불행을 반씩 나누기보단 한 아이에게 축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 하지만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인지 아이들은 아름다운 부분만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흉한 모습 또한 세상에 드러내게 되지요. 그리고 그것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거대하고 어두운 힘의 비호 아래 벌어진 일이라는 복선이 여기 저기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초반에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중심축은 아길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처음부터 저주하진 않았으나 어떻게 돌아가던 결국 그녀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갈망과 분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을 비운의 캐릭터입니다. 중반부 이후로는 아길라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에녹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에녹이라는 캐릭터가 계속 머리 속에 남았습니다. 잠시였지만 신학에 몸을 담았던 때가 있었기에 ‘에녹’이라는 이름이 가진 이중성이 이 글과 어울리는 매력적인 요소라는 생각에 에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창세기에 두 번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한 사람은 하나님께 넘치는 축복을 받아 죽음의 과정 없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창세기 최고의 장수 인물인 므두셀라의 아비이고, 다른 한 명은 성경을 펼쳐 보신 적이 없는 분이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을 성경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아들입니다. 성경에서는 전자 에녹이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 그런 넘치는 축복을 받았는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타고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품 속의 에녹처럼요. 그에 반해 카인의 아들이었던 에녹은 태어나면서부터 ‘인류 최초 살인자의 아들’ 이라는 멍에를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낙인과도 같은 저주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에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상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작가님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제가 알 수 없으나 아주 멋진 작명 센스라고 생각이 되는 이유입니다. 작품에서는 티 없는 순수의 상징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존재인 에녹은 형제인 아길라에게 버림을 받고 크나큰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애정과 구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박해를 당하면서도 모두를 구원하려 하는 성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후반부로 들어서면서는 형제애 대한 배신감과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바뀌어진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 복수심을 보이기도 하면서 내면부터 약간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아길라의 경우 중반부를 지나면서는 약간 평면적인 캐릭터로 변하는 아쉬움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룰 중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고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 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그 녀의 모습은 전작인 ‘얼음나무 숲’ 의 아나토제 바옐의 그것과도 닮아 있어서 후반부에 보여줄 그녀의 광기에 더욱 기대를 갖게 됩니다. 에녹과 아길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핵심인물로 등장하는 ‘모리세이 칼마’는 한 마디로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에 딱 맞는 캐릭터를 작가님이 만들어내셨다고 할 만한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밤의 일족이라는 존재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능력과 끊임없는 고행속에서 길을 찾는 구도자와도 같은 행적을 뒤따르다보면 ‘이 사람의 이야기를 더 보고싶다.’ 라는 욕구가 머리 속에 가득차게 되는 경험을 많은 분들이 하시게 될거라고 확신합니다. 바로 저처럼요. 작가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는지, 후반부에는 모리세이 칼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에녹, 아길라와의 접점 또한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이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저는 이제 앞으로 에녹과 아길라, 모리세이 칼마 사이에 어떤 운명의 바람이 휘몰아칠 지 즐겁게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큰 전환점이 되어 줄 밤의 일족 이야기 또한 다음 연재를 기다리는 커다란 즐거움이 되어 줄 것입니다.
프로 스포츠를 보면 ‘노력하는 천재’ 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까지 게을리 하지 않는 경우에 사람들은 약간의 부러움과 시기를 담아 이미 가진 것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 채워넣는 그들에게 그런 수식어를 달곤 하지요.
하 지은 작가님의 전작에서 비범한 글솜씨를 가진 천재의 그것이 보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로서 조금 더 독자들에게 다가서려는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 새내기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와 응원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에 대해 한 마디를 남기자면 뛰어난 글솜씨를 가진 프로 작가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라 감히 평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히 연재 즐겁게 마치시길 작가님께 진심으로 기원드리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임…. 이 책이 단행본으로 나올 땐 가능하다면 양장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꽂아 놓으면 흐뭇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