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밤인 세계

  • 장르: 판타지, 호러 | 태그: #쌍둥이 #악마 #학교
  • 평점×18935 | 분량: 64회, 1,366매 | 성향:
  • 가격: 118 5화 무료
  • 소개: 밤을 증오한 자 밤을 사랑한 자 밤으로부터 추방당한 자 그들의 이야기 더보기

언제나 밤인 세계엔 별조차 보이지 않아요. 공모

리뷰어: 쁘띠캐롯, 19년 4월, 조회 113

**스포일러 있습니다**

 

 

“한 아기는 죽은 채 태어날 운명이고 한 아기는 살아 태어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죽어야 할 아기가 살 아이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그 생명을 나누어가졌다.

오직 살기 위해, 태어나기 위해 그런 흉물스러운 모습이 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한쪽도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형제를 위해 나누어줬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사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저 작은 것들이 말이다.”

(언제나 밤인 세계/ 22화 / 밤의 세례 중)

 

한때 같은 하반신을 공유했던 샴 쌍둥이 에녹과 아길라 남매의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대를 이어간다는 효용성을 가진 아들, 고작해 그런 의미로 윌스턴 남작 부부가 아들 에녹의 목숨을 선택한 건 아니었습니다. 단 한명만을 살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소생할 가능성이 높은 생을 선별했을 뿐.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두 아이를 모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에녹은 아길라가 떨어져나간 자리의 흉터를 빼곤 완벽한 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하반신을 잃은 아길라 또한 놀랍게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호흡했습니다.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며 선택을 강요했던 의사의 확신을 비웃듯 그 밤도 다음 밤도 이후의 밤들에도 주욱 생존했지요.

에녹처럼 숨쉬고 에녹처럼 울고 에녹처럼 웃을 수 있는 건강하지만 하반신이 없는 딸을 보며 부모가 느꼈을 자책이 상상이 가시나요? 나의 딸을, 나의 선택으로, 죽이려 했다….. 달리 선택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부인은 매번 자신의 죄책감을 남편에게 토로했고, 이를 하인들에게 숨기지도 않았으며, 심보 고약한 어느 하인은 또한 제 심술을 억누를 수 없던 날에 이를 아길라에게 알려줍니다.

 

 “아가씨는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는 거 아세요?” (언제나 밤인 세계/ 1화/ 샴쌍둥이 중)

 

부모에 대한 배신감, 완전한 몸을 가진 동생에 대한 질투, 끓어오르는 살의는 방화와 폭력, 악마적 주술 행위로 표출됩니다. 아길라를 동정하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요. 마음을 가진 이라면 모두가 아길라를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내가 확률의 싸움에 져서 죽임 당할 뻔 했다니. 내 부모의 선택으로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게 되었다니. 그러나 그 모든 걸 감안하고도 아길라의 행위는 정상범주를 넘어섰어요. 운명 앞에 약자였을 뿐인 부모와 형제에게 아길라는 거침없이 복수합니다. 아버지의 서재에 불을 지르고 어머니의 눈을 바늘로 찌르는 폐륜을 보란 듯이 벌여요. 이제 남작저의 어디서도 불씨 따윈 볼 수 없으며 불쏘시개가 될지 모를 책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남작은 화상흉터를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머플러를 얼굴에 감고 있고 휠체어는 이제 아길라뿐 아니라 남작 부인의 것이기도 합니다. 본래는 내것이었을 동생의 육체가 저한테서 멀어지는 것도 견딜 수 없습니다. 에녹은 학교조차 가지 못해요. 놀라운건요. 그런 와중에 누구 한명 아길라를 바로잡지 않는다는 거에요. 아길라를 혼내는 이도 가르치는 이도 탓하는 이도 없습니다. 가족이라고 존재하는 모두가 죄책감에 좀먹혀 무기력해요. 그들은 에놀라를 사랑한다지만은 이게 진정 사랑이 맞는 걸까요? 이토록 파괴적이고 이토록 방관적인 것이?

이제 아길라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주술을 실행하려 합니다. “나의 다리를 복원할거야, 네 도움이 필요해, 네가 한번만 더 나를 도와준다면 네가 기억하는 예전의 착한 나로 돌아가겠어.” 아길라의 길고 긴 설득을 줄이면 이 정도가 되겠죠. 예전의 착했던 아길라.. 모두가 행복했던 마법 같았던 옛시간… 그때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에녹이여ㅠㅠㅠㅠ 에녹이 한밤중 누이의 욕실로 숨어들었던 그 밤. 그전까지는 캄캄한 밤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고 달아날 구멍이 있었던 그때에는 절망에도 빛은 있으리라 믿을 수 있었으니까요. 발가벗은 남매가 욕조에 들어가 악마를 부르며 이마를 맞대었을 때야말로, 아길라가 에녹의 얼굴을 쥐고 진득하게 키스한 미로의 날로부터 진정한 밤의 세계가 시작된 것인지도요.

옛 고전들 속 비극처럼 우아한 맛이 있습니다. 탐욕적인 아길라의 욕망은 그녀 자신의 마법 같은 힘 때문일까요. 혐오적이기보다 매혹적이구요. 천사처럼 아름답지만 연약한 에녹의 좌절은 죄악감과 가학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켜요. 샴썅둥이, 악마, 주술, 미로가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공포도 무시할 수 없구요. 함께 살기 위해 기꺼이 육체를 나누었던 뱃속의 어린 영혼들이 회생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이제 23편을 향해 달려갑니다. 남작저를 떠나 마주할 학교와 미지의 인물이 안길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미로의 시간에 두려워하며. <언제나 밤인 세계>를 충분히 즐기고 싶은데 주말이 너무 빨리 끝날까 겁이 나네요.